▲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자신에게 돈을 줬다고 증언했던 인물들을 위증죄로 고발했다.연합뉴스 | ||
2006년 초여름쯤 검찰은 현대자동차가 (주)위아, 아주금속공업 등 계열사 부채 탕감 목적으로 전방위에 걸쳐 금품 로비를 벌인 정황을 잡고 수사에 돌입했다. 수사를 맡았던 대검 중수부는 현대자동차가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를 매개로 정치권과 금융계에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을 포착했다.
검찰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연원영 전 사장 등 3명을 현대차 계열사 부실 채권 처리와 관련, 김동훈 전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체포했다. 당시 캠코는 산업은행에서 사들인 (주)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실채권을 별다른 이유없이 다시 산업은행에 넘긴 정황이 발견돼 ‘현대차 빚 탕감 로비 의혹’의 한 축으로 의심을 받았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 전 대표는 연 전 사장 등 3명뿐 아니라 채무탕감 로비 명목으로 현대차그룹으로부터 41억 6000만여 원을 받아 6억 원을 사적으로 챙기고 나머지 자금은 채무탕감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대표의 진술로 검찰 수사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13일 변양호 전 국장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 산은 관계자들이 김 대표로부터 부채탕감 청탁과 함께 수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김 대표는 검찰에서 박 전 부총재 등 산은 관계자 4명에게는 16억 2000만여 원을, 변 전 국장에게는 2억 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이후 변 전 국장 등의 현대차 빚 탕감 로비 사건은 법정으로 이어져 치열한 법리전쟁으로 비화됐다. 현대차 계열사 채무탕감 로비를 위해 변 전 국장과 박 전 부총재 등 6명이 실제로 돈을 받았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던 이번 사건은 객관적인 물증이 없었다. 돈을 전달했다는 김동훈 전 대표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가장 엽기적인 뇌물 사건’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돈을 줬다는 김 전 대표와 돈을 받지 않았다는 변 전 국장 등 6명의 진술이 팽팽하게 대립한 데다, 나란히 법정에 선 피고인들이 고위 경제관료와 회계법인 대표 등을 지낸 쟁쟁한 인물들인데 이들 중 누군가가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변 전 국장이 이 사건으로 받은 재판 기간은 무려 3년에 달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변 전 국장은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이후 지난 9월 10일 진행된 고법 최종 재판에서 변 전 국장과 박 전 부총재 외 1심과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관계자 2명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변 전 국장 등에게 돈이 지급된 확실한 증거가 없고 돈을 줬다는 김 전 대표의 진술을 믿을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다고 변 전 국장의 재판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변 전 국장은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과 관련해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지난해 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대차 로비의혹 사건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일단은 한시름을 덜게 된 셈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변 전 국장 등 5명은 재판과정에서 변 전 국장 등이 뇌물을 받았다는 진술을 한 인물들을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17일 변 전 국장, 박 전 부총재, 이성근 전 산은 이사, 이정훈 전 자산관리공사 부장, 김유성 전 대한생명 상근 감사위원 등 5명이 공동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피고소인은 이번 사건의 결정적 증인이었던 김동훈 전 대표, 김원갑 전 위아 부사장, 한근수 위아 재경부장, 최동우 현대자동차 차장 등 총 4명이다. 변 전 국장 등 고발인들은 소장에서 “이들이 공모로 위증을 해 변 전 국장은 292일, 김유성 283일, 이정훈 136일간 구금돼 정신적·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으니 이들을 처벌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검찰에서는 관련 수사 및 공판기록을 검토해 조만간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모두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고소건으로 현대차 및 계열사 인사 상당수가 또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변 전 국장 측에서는 이번 형사고소 외에도 별도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변 전 국장 측에서는 이미 김동훈 전 대표 소유 부동산을 가압류해 놓는 등 손배소송에 대비한 사전 준비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변 전 국장 등의 반격에 현대차 측에서는 몹시 당황해 하는 분위기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변 전 국장이 고발한 인물들 중 다수가 현대차그룹 내부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업 차원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이번 소송 건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당시 사건이 조명될 경우 현대차 이미지가 실추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3년간에 걸친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현대차 부채탕감 로비 의혹 사건은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변 전 국장의 법정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변 전 국장은 이번에는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로 법정에 서는 게 다를 뿐이다.
과연 현대차 부채탕감 로비의혹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의 반격이 어떤 식으로 끝을 맺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