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의 ‘한나라당 골프장 게이트 진상조사특위’ 안민석(가운데 왼쪽), 이종걸(가운데 오른쪽) 의원이 안성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공사현장을 방문해 의혹 조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 ||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여야를 망라한 거물급들이 ‘사정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올 초부터 시작된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정치권이 또 다시 검찰발 ‘사정 태풍’ 가시권에 진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연말을 전후해 정치권 거물급이 검찰 ‘포토 라인’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섣부른 관측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단순한 골프장 비리·비자금 사건을 넘어 거물급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 사건으로 진화하고 있는 검찰발 사정태풍 속으로 들어가 봤다.
여의도 정가를 뒤덮고 있는 검찰발 사정태풍은 여야 모두 가시권에 진입해 있다. 안성 골프장 게이트는 여권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고, 대기업 비자금 사건에는 구 여권 실세들이 사정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태를 불러온 ‘박연차 게이트’ 사건 과정에서 보복·편파 수사 의혹과 함께 형평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던 검찰이 형평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여야 정치권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경기도 안성 소재의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비리 사건은 권력형 비리 형태를 띠며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공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안성시의회 전 의장 김 아무개 씨와 행정안전부 국장 한 아무개 씨 등 2명을 이미 구속했다. 검찰은 골프장 건설 과정에서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들에 대한 로비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여권 정치인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검찰은 골프장 비리 사건과 관련해 실명이 공개된 여권 실세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비롯해 공 씨가 정치활동을 하면서 접촉이 잦았던 한나라당 H 의원과 K 의원 등에 대한 소환 조사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치권 입문의 포부를 갖고 있던 공 씨가 현재 거명되고 있는 여권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공 씨는 지난해 초 한나라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여권과 공식적인 인연을 맺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공 씨의 광범위한 금품 살포는 비단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서 편의를 얻으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정치 입문을 위한 정지작업 포석이 깔려 있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공 씨가 조성한 비자금이 100억 원대에 달한다는 사실에 미뤄 공성진 최고위원을 비롯해 현재 거론되고 있는 정치인들 외에 또 다른 윗선까지 공 씨의 검은 돈이 유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공 씨가 상당한 액수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진 국회 모 연구단체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어 이번 사건이 자칫 국회 전반으로 확전될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스테이트월셔 골프장을 비롯해 신미산·에덴블루 골프장 등 지난 3년 동안 안성 지역 골프장 인·허가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만큼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권력형 비리의 실체가 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정치권은 ‘골프장 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동시에 여차하면 특검 카드까지 꺼내들 태세여서 이번 사건은 연말 정국의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골프장게이트 진상조사특위’를 발족한 민주당은 11월 26일 스테이트월셔 골프장을 현장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골프장 게이트’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특히 민주당은 검찰이 이번 사건을 지자체장들의 비리 선에서 덮으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미 실명이 거론된 공성진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특검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처럼 ‘골프장 게이트’가 여권을 조준하고 있는 반면 대한통운이나 신동아건설 등 대기업 비자금 수사는 구 여권 실세들을 겨냥하고 있다. 일해토건의 신동아건설 인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이뤄졌고,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에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사건 수사의 칼끝은 다분히 구 여권 실세들에게 향할 개연성이 높다.
▲ 공성진 의원 | ||
하지만 검찰은 대한통운 비자금 수사를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이번 사건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던 ‘참여정부 실세 로비’ 의혹을 밝혀내지 못하고 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11월 25일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중 일부를 개인적으로 유용한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과 곽영욱 전 사장 등 3명을 특가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대한통운 지사장 2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또한 컨테이너 하역계약 등을 대가로 대한통운에서 돈을 받아 챙긴 해운사 사장 등 9명도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사장은 2001년 7월부터 부산지사장으로 일하면서 허위 전표를 만들어 비자금 229억 원을 만들어 본사에 상납했고, 2006년 7월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부산지사에서 매월 3000만~8000만 원 정도를 품위유지비로 걷어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곽 전 사장도 2001년 사장 재임 때부터 서울·부산·인천지사 등으로부터 사장 영업 활동비 명목으로 매달 1억~2억 원 정도씩 모두 83억 원을 받아 쓴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곽 전 사장이 거액의 비자금 가운데 일부를 구 정권 실세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란 의혹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권 전 사장이 “참여정부 실세에게 비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검찰이 정치권으로 수사를 확대하지 않은 배경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 소식에 정통한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11월 25일 기자와 만나 “골프장 게이트 사건에 여권 실세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구 여권 실세들에게 먼저 사정 칼날을 들이댈 경우 ‘야당 탄압’ 내지는 ‘표적 수사’ 논란이 거세질 것”이라며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검찰이 더 이상 형평성 논란 등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과 수사 속도를 맞추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치권 주변에선 ‘골프장 게이트’ 사건에 공성진 최고위원 등 몇몇 여권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만큼 구 여권 실세들을 ‘사정 리스트’에 올려 놓고 ‘정치적 빅딜’을 위한 구색 맞추기를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없지 않다.
여야를 망라한 검찰발 사정태풍을 둘러싼 갖가지 관측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검찰 주변에서는 연말연초를 즈음해 정치인을 겨냥한 대대적인 사정 드라이브가 구사될 것이란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여야 거물급들이 ‘사정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 리스트에는 실명이 공개됐거나 언론에 영문 이니셜로 거론된 정치인들 외에도 여권 핵심 실세인 A 의원과 B 씨, 야권 차기 주자인 거물급도 포함돼 있어 리스트가 공개될 경우 정치권 전체가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검찰도 연말 대대적인 사정몰이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은 최근 검찰총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중요 비리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 수사진을 대폭 보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중수부는 골프장 비리 사건과 대기업 비자금 수사 등 정치인 연루 의혹 사건 수사팀에 특수통 검사들을 파견 형식으로 투입한 상태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이후 비난 여론에 밀려 주춤했던 중수부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중요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취임 100일을 맞은 김준규 검찰총장은 11월 26일 비공개 간부회의에서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태 등으로 움츠렸으나 이제는 검찰 본연의 업무인 수사에 매진할 때”라며 강력한 수사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나 재계 등 누구를 막론하고 원칙에 따라 수사를 하라. 외풍은 내가 막아주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복수의 참석자는 전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실추된 검찰 위상과 중수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여야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 연말연초를 전후해 정치권 거물급이 검찰 ‘포토 라인’에 서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여의도 정가를 초긴장 모드로 몰아넣고 있는 검찰발 사정태풍이 언제 어떤 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 정치권의 시선이 서초동 검찰 청사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