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납치, 살해한 부녀자를 암매장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올 한 해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던 엽기사건들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사건의 장본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2009년 엽기사건들의 전모와 수사비화, 그 뒷얘기를 따라가봤다.
올 한 해 국민들을 가장 경악케한 것은 유영철과 정남규의 뒤를 잇는 새로운 연쇄살인마의 출현이었다.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 서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8명의 부녀자를 납치·살해한 강호순(40)은 처와 장모 등 2명을 살해한 혐의가 추가돼 연쇄살인마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입을 열기 시작한 강호순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 뭘 하다가 언제 어떻게 죽였고 어디에 매장했는지를 줄줄 말했다. 강 씨는 노래방에서 만난 여성에게는 ‘맛있는 거 사겠다’ ‘대부도에 바람 쐬러 가자’ 는 말로 유인했다. 차량 안에서도 피해 여성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일상적인 얘기부터 시작하다가 ‘사귀자’ ‘연애(섹스)나 한번 하자’는 말을 서슴없이 꺼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여성이 기겁하고 내리려 하면 그는 여성들을 제압하고 거침없이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강 씨는 합의하에 맺은 성관계였건 강간이었건 간에 무조건 살해했다.”
강 씨를 조사한 경기지방경찰청 한춘식 경위의 얘기다. 강 씨는 자신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고 한다. 여자를 잘 다루며 정력도 좋아 여자들이 많이 붙는다는 얘기도 자주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데이트도 하고 그랬으면 앞으로도 잘 만날 것이지 왜 죽였느냐”는 형사의 질문에 강 씨가 남긴 말은 “형사님… 그런 날(살인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가 있습니까”였다. 강 씨는 스타킹을 여성의 목에 칭칭 감아놓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강 씨는 “개를 많이 잡다보니 사람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고 살인욕구를 자제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싫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씨는 증거인멸을 위해 피해여성의 손톱 부위를 전지가위로 도려내는 등 잔혹한 행동을 했다. 강 씨는 유독 건강에 신경을 썼다. 경찰서 단골메뉴인 자장면은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든든한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시켜달라고 해 뚝딱 비웠다. 조사 내내 그는 아주 팔팔했다. 비스듬히 앉아서 “그러니까… 증거를 가져오세요. 증거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번 해보자는 식이었다.
사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강 씨는 언론보도에 극도로 민감한 편인데, 특히 정남규의 자살 이후 심적 동요를 보이고 있어 구치소 측에서도 강 씨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 시민단체 활빈단이 조두순의 엄벌을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 ||
지난해 12월 경기도 안산에서 50대 남성이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이른바 ‘조두순 사건’은 국민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키 132㎝에 몸무게 25㎏의 A 양은 이 사건으로 대장과 생식기의 80%이상이 훼손돼 평생 허리에 배변주머니를 차고 지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국민들을 공분케한 것은 조두순이 심신미약을 이유로 12년이라는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았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A 양이 충격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 직후 범인이 벌 받는 모습을 암울하게 그려냈던 A 양은 이제 만화 캐릭터를 장난스레 그려낼 정도가 됐다. 말도 많아지고 웃음도 되찾았다. 더욱 축하할 일은 A 양이 배변기능 회복 수술을 받게 된 것으로 조만간 배변주머니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 양은 보름에 한 번씩 성폭력피해아동지원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치료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결석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리사가 꿈이었던 A 양의 꿈은 의사로 바뀌었다. 자신이 아파봤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조두순은 지난 10월 청송 제2교도소로 이감됐다. 조 씨는 CCTV가 설치된 독방에 수용돼 TV시청을 제한받고 운동도 혼자 하는 등 중경비시설 수용자 처우를 받고 있다. 조 씨는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자살시도 같은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수갑을 차고 지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씨에게는 한 달에 네 번의 면회가 허용되는데 종교 관계자들이 대부분으로 가족들은 조 씨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언론 취재도 차단되고 있다. 교도소 측은 사건의 민감성이나 조 씨의 상태 등을 감안할 때 수용자 교화프로그램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하고 있다.
◇‘식인귀’ 가짜스님
사회부 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가장 엽기적인 사건 중 하나는 일명 ‘식인귀’ 사건이다. 스님 행색을 한 박 아무개 씨(40)는 영가들과 접신되면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라 지칭하고 다녔다. 7월 2일 자신의 집에서 불에 달군 칼로 왼쪽 귀를 절단해 씹어 먹은 박 씨는 다음날 청담동에 소재한 유명 음식점을 찾아가 “이 집 사장 조상이 내 몸에 접신됐다. 조상 덕에 잘 살고 있으면서 돈을 엉뚱한 데 사용하고 있으니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이르는 대로 돈을 써야 한다”며 사장 면담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박 씨는 다음날인 7월 4일에도 흉측한 몰골로 또다시 그 음식점을 찾아가 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사찰을 지을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절당하자 박 씨는 손님과 종업원 등 5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길이 40cm 식칼로 자신의 오른쪽 귀를 싹둑 잘라 씹어먹었다.
신고를 받은 강남경찰서 강력3팀 형사들이 출동했을 때 식당은 벽면에 피가 난자해 있었고, 눈뜨고 볼 수 없는 엽기적인 광경을 목격한 손님과 종업원들이 혼비백산하는 등 아수라장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박 씨는 귀를 자른 흉기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사장을 불러오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음으로써 조상들의 가르침을 일깨워주겠다”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출동한 형사들도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엽기적인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박 씨는 형사 앞에서 자신의 귀를 질겅질겅 씹었다 빼는 행동을 반복하며 “입에 들어가면 고기요, 빼면 귀니라~”라는 엽기행위를 반복했다.
박 씨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흉기를 압수한 형사들은 박 씨를 현행범으로 검거했고 피를 많이 흘린 박 씨를 인근 병원으로 긴급후송, 지혈과 봉합수술을 받게 했다. 그런데 박 씨를 치료한 의사는 공교롭게도 이틀 전 박 씨의 왼쪽 귀를 치료한 의사였다. 의사 생활 중 이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 본다는 의사는 “양쪽 귀를 어쩜 이렇게 똑같이 잘랐는지 모르겠다. 기가 막히게 잘랐다”며 혀를 찼다는 후문.
박 씨는 수감 전 자신의 전 재산인 6만 원을 형사에게 인심쓰듯 “올라갈 때 차비나 하라”며 건넸는데 받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박 씨는 자신에게 들어온 영치금이 사라졌다며 난동을 피웠다고 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형사들은 “그 때 쥐어 준 6만 원을 받았다면 나중에 또 뭔 소리를 들었을지 아찔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애인 피 빤 ‘인간 거머리’
간암 말기의 정신지체 장애인에게 거액을 강취하고 살해하려 한 파렴치한도 있었다. 윤 아무개 씨(32)는 9세 정도의 지적 수준을 보이는 정신지체 장애인 A 씨(41)가 가족들로부터 받은 돈이 있고 생명보험까지 가입된 사실을 알고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를 사칭해 접근했다. 당시 A 씨는 간암말기로 약 2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황이었다.
윤 씨는 장애수당과 생계보조금 등을 가로챌 목적으로 2008년 6월 A 씨가 거액을 차용한 것처럼 보이는 허위차용증 2개를 만들어 서명·날인케하고 공증까지 받았다. 또 암을 고칠 수 있는 의사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등의 핑계로 올 5월까지 34회에 걸쳐 A 씨에게 2800만 원을 가로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윤 씨는 또 A 씨가 사망하면 2000만 원을 수령할 수 있는 보험에 가입된 사실을 알고 상속 수령자를 자신으로 바꿔치기 하고, A 씨가 요양 중이던 시골까지 찾아가 간암에 치명적인 수면유도제를 음료수에 타 먹여 A 씨를 11일 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등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악질행각을 벌였다.
사건을 담당한 강남경찰서 임만영 형사는 “죽기 전에 돈이나 원없이 써보라고 가족들이 통장에 넣어준 돈을 노리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불쌍한 암환자를 농락한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앗으려 한 윤 씨의 행각에 분노와 더불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절도범 잡고보니 엽기 살인범
음란물 CD와 여성 속옷 등을 보관해오던 절도용의자가 미제로 남아있던 두 건의 엽기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었다.
지난 9월 말 광진구 화양동 인근을 배회하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이 아무개 씨(37). 타인 명의로 된 여러 개의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던 이 씨는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단순 절도쯤으로 여기고 이 씨를 조사하던 경찰은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씨의 차량 안에 있던 외장형 하드디스크에서 23개의 주민등록증이 촬영된 컴퓨터 파일이 발견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신분증을 확인하던 경찰은 신분증의 주인 중 한 명이 8년 전 변사처리됐던 정 아무개 씨(당시 31)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 하드디스크를 토대로 이 씨를 추궁한 끝에 살인 2건과 7건의 강·절도 행각을 밝혀냈다. 조사결과 이 씨는 2001년 9월 화양동의 한 주택에 침입해 정 씨를 추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 씨는 피해자를 살해한 뒤 음부에 샴푸병을 꽂아 훼손시키고 불을 지른 뒤 달아나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엽기행각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995년 10월 이 씨는 중곡동의 한 약수터에서 ‘왜 약수로 세수를 하느냐’고 따지는 김 아무개 씨(당시 58)도 살해하고 강간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음부에 나뭇가지를 꽂아 훼손시키고 달아난 것으로 밝혀졌다. 주목할 점은 이 씨의 집에서 변태성욕적인 음란물이 담긴 CD 1000여 장과 수십 점의 훔친 여성 속옷 등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이 씨가 어린시절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왜곡된 성의식을 갖게 됐으며 이후 반사회적이고 공격적인 본능과 결합되어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씨가 집에서는 착하고 자상한 가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강하게 범행을 부인하던 이 씨는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은 뒤 “죄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이제 마음의 부담을 털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까지 무차별 성폭행
영암 연쇄살인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1991년 미성년자 약취, 특수강간 등으로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5년 가을 가석방된 이 아무개 씨(43). 이 씨는 지난 5월 자신의 집에서 동거녀의 조카딸 A 양(16)을 성폭행한 후 여행용 가방에 싣고 다녀 질식사하게 만들었다. 그 후 이 씨는 범행은폐를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고 고모부 자격으로 실종신고를 하는가 하면 A 양 명의로 가족들에게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다.
하지만 이 씨의 범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A 양을 살해한 지 1주일 후 이 씨는 의붓딸 B 양(19)을 성폭행한 후 살해하고 동거녀(41)마저 살해했다. 이후에도 이 씨는 처조카(18)와 친딸(22)마저 차례로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범행”이라고 판단, 이 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