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이 조사를 받기 위해 5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 씨와 조 전 비서관의 진실게임 과정에서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근무 시 ‘문고리 권력 3인방’과의 사이에서 겪었던 갈등을 폭로하는가 하면 특히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 대해서는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작년 10월 말인가 11월 초인가,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1명에 대해 검증을 하다가 ‘부담(스럽다)’ 판정을 내렸다. 쓰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랬더니 안봉근 비서관이 전화해서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은)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 2부속실에서 왜 경찰 인사를 갖고 저러는지 이상했는데, 한 달 뒤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이 다 단수로 찍어서 내려왔다”며 안봉근 비서관이 경찰 인사에 개입했음을 폭로했다.
이를 두고 정계 일각에서는 정 씨 측과 박지만 EG 회장 측의 힘겨루기가 인사에까지 반영되며 소위 ‘자기 사람 심기’나 ‘찍어내기’가 횡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경찰의 한 정보관(IO)은 “안봉근 비서관이 경찰 인사에 개입한다는 소문은 전부터 있었다. 조 전 비서관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사안은 지난해 말에 A 당시 경무관의 청와대 파견 추진 건을 두고 이야기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A 경무관은 승진을 통해 청와대 치안비서관(치안감)으로 가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재산 부분에 있어서 약간 문제가 발생해 누락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A 경무관은 1년이 지나서야 치안감을 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A 경무관은 현재 경찰청에서 국장으로 근무 중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모르겠다.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말했다.
경찰은 이번 문서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겉으론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조용한 분위기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박 경정을 유출자로 사실상 지목한 데 이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까지 압수수색을 당하자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경찰 IO는 “청와대 비선 조직과 대통령 친인척 간 권력 싸움에 경찰이 끼여 곤혹스럽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다. 경찰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이런 사건이 터지면 경찰부터 잡으려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 4일, 문건에서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번 씩 정 씨와 십상시(‘문고리 권력’ 3인방 포함 청와대 관계자 10명)가 회동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 및 인근 식당 2~3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며 식당 사장인 김 아무개 씨에 대한 조사도 마쳤다. 검찰은 쇼핑백 두 개 분량의 예약자 명부, 결제 내역 등 관련 서류와 폐쇄회로TV(CCTV)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당에 모여 정기적인 회동을 했다면 정 씨가 청와대와 국정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문건의 핵심 내용을 뒷받침할 상당한 개연성이 확보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문건에 등장하는 해당 식당은 오픈 키친으로 된 고급 중식 레스토랑으로 별도의 룸 형태 공간이 5개가 있으며 그 중 1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은 1개(12인실)만 존재한다.
정윤회 씨와 ‘십상시’의 회동 장소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강남의 중식당(왼쪽)과 최순실 씨 소유 신사동 건물. 임준선 기자
이런 가운데 기자는 정윤회 씨가 개인적으로는 지난 4일 압수수색을 했던 복수의 식당들에 식사를 하러 가끔 들렀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건에 등장하는 식당은 정 씨가 전처인 최순실 씨(‘최서원’으로 개명)와 이혼 전 같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서울 신사동 주상복합 건물에서 불과 직선으로 50m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다. 3곳 중 한 곳의 식당 관계자는 “정 씨보다 사모님(최순실)을 사모님의 조카(언니 딸)를 통해 먼저 알았다. 그 이후에 자연스레 정 씨도 가족들과 가끔 들렀다. 딸을 끔찍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뒤에 골목에서 오다가다 몇 번 본 적이 있고 가게에 가끔 오시는 손님이라 인사를 했다. 그뿐이다. 단체로 그런 모임을 한 적은 없다. 정 씨의 정체에 대해 최근 이슈가 터지고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취재 과정에서 최순실 씨가 소유자로 돼 있는 서울 신사동 64X-X 건물의 임대차 계약만 따로 전담하는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인근의 D 부동산 관계자는 “그 건물의 임대차 계약은 지난 4월에 마지막으로 이뤄졌다. 계약이 있을 때는 최 사장이나 정 씨가 와서 하지 않고 따로 그 역할만 하는 여성이 와서 한다. 20대 중반의 안 아무개 씨라는 여자인데 특별한 직업은 없는 것 같았다. ‘안 비서’라고 불려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항간의 의혹과 관련, 정윤회 씨와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며칠에 걸쳐 수차례 연락을 취하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 씨가 청와대와 별도로 <세계일보> 기자 3명을 고소하면서 선임한 이경재 변호사는 “(문건 내용 진위 여부에 관해서는) 검찰에 가서 얘기하겠다. 정 씨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개인 사생활 부분이라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