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지난 12월 24일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로비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며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곽 전 사장이 2006년 말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자리에 정 대표와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동석한 것으로 밝혀진 데 이어 당시 산자부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정 대표가 현직 제1 야당 대표라는 점에서 수사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도 당시 산자부 장관이었던 정 대표의 역할론에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검찰이 정 대표 측근 등 주변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내사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검찰은 정 대표의 일부 측근들이 곽 전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정황을 잡고 이 돈의 용처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야를 망라하고 거침없는 사정 드라이브를 구사하고 있는 검찰의 날선 칼날이 과연 제1 야당 대표까지 조준할 수 있을까.
정세균 대표가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한 것은 이른바 ‘4자 회동’이 발단이 됐다.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건넸다고 주장하고 있는 곽 전 사장은 당초 2006년 12월 20일 지인들과 함께 총리 공관을 찾아 한 전 총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두 사람이 회동한 자리에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던 정 대표와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이 동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곽영욱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4자 회동’에 참석한 정 대표와 곽 전 사장, 강 전 장관은 동향(전북)으로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관계이고 한 전 총리 역시 곽 전 사장과 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점에서 당시 여권 실세들이 조직적으로 인사 청탁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12월 22일 곽 전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한 전 총리를 불구속 기소한 검찰이 “혐의 입증에 충분한 진술과 물증을 확보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배경에도 ‘4자 회동’이 자리잡고 있다. ‘4자 회동’이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나아가 정 대표가 ‘4자 회동’에 참석한 사실이 밝혀졌고, 당시 산자부가 조직적으로 인사 청탁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정 대표가 모종의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찰이 한 전 총리를 기소하면서 공개한 혐의 내용에도 산자부의 조직적인 인사 로비 정황이 담겨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에너지 담당인 이원걸 산자부 2차관은 2006년 11월 말 곽 전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석탄공사 사장에 지원하라’고 누군가의 뜻을 전했다. 비슷한 시기에 산자부 실무 과장이 곽 전 사장 집을 방문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이때부터 석탄공사 사장 지원을 준비했다. 산자부 차관과 과장이 무슨 이유로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런 일을 했는지는 재판 때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당시 산자부 과장은 “이원걸 차관의 지시로 사장 준비에 도움이 될 만한 내부보고서 등을 곽 전 사장한테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 과장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12월 말 면접에 앞서 약 한 달 전부터 곽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으로 발탁하기 위한 은밀한 작업이 진행된 셈이다. 정치적 입김과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높은 공기업 사장 인사에 차관이나 과장이 일련의 작업을 자발적으로 실행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분명 윗선이나 당시 여권 실세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이 차관 등 부하 직원들이 산하 공기업 사장 인사에 관여한 사실에 미뤄 주무 장관이었던 정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곽 전 사장 인사로비 과정에 정 대표가 모종의 역할을 했는지 여부를 살피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다만 검찰은 제1 야당 대표인 정 대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정세균 역할론’ 등 정 대표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당시 정 장관의 지시가 없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전 총리의 기소 내용과 관련이 없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정 대표가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유력한 정황증거로 부상한 ‘4자 회동’에 참석했고, 당시 산자부의 조직적인 인사 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정 대표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초동 검찰 청사 주변에서는 검찰이 정 대표 측근 등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전 방위적인 내사에 돌입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그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곽 전 사장으로부터 “정 대표의 당시 측근 A 씨에게 2만 달러를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냈으며, A 씨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곽 전 사장은 “정 대표에게 돈이 갈 것으로 생각하고 A 씨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고, 검찰은 A 씨를 상대로 2만 달러를 정 대표에게 전달했는지도 조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A 씨는 “그 돈은 당비로 냈으며 정 대표와는 무관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검찰은 2만 달러의 최종 용처를 찾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보도된 것처럼 A 씨가 실제로 곽 전 사장으로부터 수만 달러를 받았다면 정 대표는 적잖은 도덕적 상처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A 씨가 곽 전 사장으로부터 돈을 수수했고, 그 돈 중 일부가 만에 하나 정 대표 선거 자금 등으로 유입됐을 경우에는 정 대표의 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측근 금품수수 의혹을 통해 ‘정세균 대표 연루설’이 공론화되자 그동안 침묵을 지켜오던 정 대표는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하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정 대표는 지난 24일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측근 금품수수’ 의혹 보도에 대해 “그 내용은 완전히 사실무근이고 날조이고 명예훼손이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를 넘어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인사로비 의혹사건이 바야흐로 신년 정국 최대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검찰이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것처럼 한 전 총리를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 지을지 아니면 새로이 불거진 정 대표 연루설까지 밝혀낼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새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의혹사건을 쳐다보는 국민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