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미니시리즈 <비밀의 문>과 <왕의 얼굴>은 스타들을 캐스팅하고 대대적인 홍보까지 펼쳤지만 대중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높은 시청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던 드라마들 가운데 정작 광고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특히 각 방송사 ‘간판’으로 통하는 밤 10시대 미니시리즈의 성적은 초라하다 못해 충격적인 수준이다. 3사 모두 예외는 없다.
톱스타 한석규와 이제훈이 주연한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은 종영을 두 회 남기고 있지만 시청률은 5~6%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수천만 원의 회당 출연료를 받는 스타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데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극 장르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엄연한 ‘실패’다.
KBS 1TV 수목드라마 <왕의 얼굴>도 비슷하다. 청춘스타 서인국을 주연으로 기용해 이목을 끌었던 <왕의 얼굴>은 촬영에 앞서 영화 <관상>을 표절했다는 분쟁에 휩싸이는 등 유사성 논란이 거셌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저돌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표절 논란을 역으로 활용하며 자신감에 찬 마케팅까지 펼쳤다. 하지만 이런 사전 작업이 무색할 정도로 정작 방송을 시작한 뒤 거둔 시청률은 6~7%에 불과하다. 1~4회까지의 초반 시청률이 사실상 드라마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왕의 얼굴>이 향후 반전의 인기를 얻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약하다.
<내일도 칸타빌레>는 시청률 4.9%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최근 막을 내린 주원 주연의 KBS 2TV 월화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도 비슷한 경우다. 일본의 유명 원작을 옮기는 시도부터 스타 주원의 캐스팅 등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렸지만 정작 이야기가 약하고 주인공들의 개성이 충분히 살지 못하면서 4.9%라는 처참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방송사들도 당황하고 있다. 드라마 성패를 좌우한다고 평가받는 한류스타의 주인공 캐스팅을 비롯해 전략적인 시간대 편성, 높은 제작비를 쏟아 붓고 대대적인 마케팅까지 펼쳤는데도 대중의 반응은 시원찮다. 이를 포기하고 중국 등 한류시장을 공략한다고 해도, 국내 성적이 ‘드라마 수출’에 주요한 기준이란 점에서 이들 드라마의 해외 판매 성적은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물론 이 같은 시청률 하락은 최근 급변하는 방송 환경의 변화와도 맥이 닿아있다. 모바일과 인터넷 다시보기 등의 방식으로 시청자가 분산되면서 지상파 TV의 시청률이 해당 프로그램의 진짜 인기를 증명하는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시청률의 하향평준화가 모든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화려하게 등판한 지상파 드라마 대부분이 시청률에서 참패를 겪고 있지만 반대로 요란하지 않지만 ‘신통방통’할 정도로 의외의 성적을 기록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방송가에서는 이를 ‘알짜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지상파 3사의 아침드라마를 비롯해 KBS 1TV <가요무대>와 <생로병사의 비밀> 등이다.
실제로 KBS 2TV 아침드라마 <TV소설 일편단심 민들레>와 MBC <폭풍의 여자>, SBS <청담동 스캔들> 등의 평균 시청률은 10%를 훨씬 웃돈다. 특히 최정윤 주연의 <청담동 스캔들>은 이제 20% 돌파까지 넘보고 있다. 이미 19%대에 진입해 현재 SBS가 방송하는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성적은 요즘 가장 캐스팅하기 어려운 스타로 꼽히는 박신혜와 이종석을 남녀주연으로 발탁한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의 시청률이 8~9%에 머물고 있는 사실과 비교하면 더욱 눈에 띈다.
방송가에서는 이를 ‘고정시청자의 확보’에 따른 결과로 보고 있다. TV로 드라마 등을 보는 주요 시청층이 40~60대 중·장년층으로 굳어지면서 오랫동안 익숙하고 친숙했던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추세가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MBC의 한 관계자는 “20~30대 시청층이 모바일이나 온라인 다시보기로 TV를 챙겨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중년, 장년의 시청자가 TV의 고정 시청자가 되고 있다”며 “새롭고 신선한 시도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오랫동안 곁에 있던 친근한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는 <가요무대>와 <생로병사의 비밀> 시청률에서도 드러난다. <가요무대>는 매주 시청률이 15~20% 사이를 오간다. <생로병사의 비밀> 역시 1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가요무대>는 1985년 방송을 시작해 30년째 방송중이고 <생로병사의 비밀>도 시작된 지 10년을 훌쩍 넘겼다. 고정 시청자와 오랫동안 쌓은 신뢰 덕분이다.
최근 제작되는 미니시리즈는 대개 중국 등 한류시장까지 겨냥한 기획이 주를 이룬다. 이를 위해 스타 출연자가 필요하고 이미 검증된 유명 제작진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는 환경이 형성된다. 내실보다 외형에 더 치중하면서 정작 드라마의 본질인 ‘이야기’를 놓치는 경우도 잦아진다. 배우도, 제작진도, 장르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던 <비밀의 문>이 시청자에게 외면받은 가장 큰 원인으로 “이야기 부재”가 꼽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우리나라 시청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스토리인데 요즘 지상파 드라마들 중에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찾아볼 수 없다”며 “한류스타를 주인공으로 쓰고, 전문직을 맡긴 뒤 멜로 연기를 주문하는 비슷한 제작 방식에 시청자들도 더 이상 신선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