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대부업체는 교묘한 불법 추심 활동으로 고객들에게 막대한 정신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 사진은 대부업체 홈페이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최근에는 제2금융권이라 불리는 저축은행들도 소비자 신용대출을 늘려가는 추세임을 감안한다면 고금리 위주의 대부업 시장은 해가 갈수록 더욱 커질 전망이다.
문제는 대부업체가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교묘한 추심 행위 등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더욱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합법과 불법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추심을 통해 100%에 가까운 대출금 회수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불법추심행위에 대한 수사 기관의 수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부 사금융 업체들의 편법 추심행위와 감독기관의 조사를 피하기 위한 교묘한 수법을 쫓아가봤다.
저축은행에서 500만 원을 대출받은 직장인 박 아무개 씨. 그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매달 40만 원가량을 상환해 나가고 있었다. 1년 가까이 단 한 차례도 연체가 된 적이 없는 박 씨는 지난해 11월 통장에 잔고가 1만 원가량이 부족해 처음으로 상환이 연체됐다. 입금 액수를 착각했던 박 씨는 은행 콜 센터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잔고가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납입일 이틀 후,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박 씨는 직장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저축은행 콜센터였다.
“박 아무개 씨 계신가요”
“접니다. 누구시죠”
“○○ 저축은행인데요. 대출금이 연체돼서 전화 드렸습니다.”
휴대폰이나 집 전화를 통해서는 단 한 차례도 연체 통보를 받지 못했던 박 씨는 직장으로 직접 추심전화가 왔다는 사실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왜 개인적으로 통보하지 않고 직장으로 통화했냐고 따졌으나 해당 저축은행 측에서는 ‘이미 수차례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안 돼서 직장으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본인이 전화를 받았기에 다행이지 만약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직장 동료들이 전화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저축은행의 추심전화를 받은 적이 없었던 박 씨는 이를 이상히 여겨 통신사 등에 통화기록 조회 등을 요청해 확인해 본 결과, 저축은행은 휴대폰으로 단 한 차례도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통화기록을 바탕으로 저축은행에 따졌고, 불법추심 행위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비로소 저축은행은 박 씨에게 사과를 했다.
부동산 중개소에 사무 보조일을 하며 1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는 20대 중반의 여성 조 아무개 씨. 또래의 여성들처럼 그 역시 한두 개의 명품 가방 및 신발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평소 자신이 버는 돈을 모아 가방과 신발을 사기 위해서는 몇 달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형편을 고려해 충동을 억제했던 그녀는 결국 6개월 전 B 대부업체에서 400만 원을 대출받아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일단 대출을 받아 갖고 싶은 것을 사고 상환은 자신의 월급 중 일부를 떼어 매달 얼마씩 갚아 나가면 된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이 대부업체는 TV 광고로 인해 잘 알려져 있는 만큼 불법 사채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출도 어렵지 않았다.
처음 넉 달은 계획대로 돈을 갚아나갔다. 그러나 그 놈의 성질이 문제였다. 직장 상사와 불화로 인해 사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온 것.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곧바로 다른 직장을 구하면 대출금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동안 모아 둔 돈으로 다섯 달째는 그럭저럭 상환이 가능했으나 여섯 달째는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다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연체한 지 하루째. 오전 9시가 지나자마자 대부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상냥한 목소리였다. 오후에도 한두 번 더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동안은 그렇게 상냥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마냥 상냥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밤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거래업체에서 어떤 남자한테 전화가 왔었다’며 메모를 남겨 놨다. 전화가 온 곳은 대부업체였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버지도 ‘부동산 중개소 다니는 애가 무슨 거래업체에서 전화가 오냐’며 스쳐가듯 말을 던졌다. 다음 날 저녁 집에 들어가자 아버지가 이번에는 ‘아는 오빠한테 전화가 왔었다’고 메모를 남겨주었다.
그날 이후로 정체불명의 전화가 매일 저녁마다 집으로 걸려오는데 단 한 번도 ‘대출’ ‘미납’ 등의 단어는 사용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를 이상히 여긴 아버지가 따져 물었고 조 씨는 연체 사실을 아버지께 ‘이실직고’했다.
현행 추심법에 따르면 ‘제3자에게 채무를 알려주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 행위다. 하루에 몇 차례 이상 추심 전화를 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러나 몇몇 대부업체들의 추심 행위는 이런 현행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교묘하고 집요하다.
B 대부업체의 사례와 같이 추심 과정에서 대출과 관련한 어떠한 분위기도 풍기지 않은 채 제3자를 통해 당사자를 압박하는 것은 기본이다.
감독기관 입장에서는 이런 추심 행위에 대해 마땅히 꼬투리를 잡기가 어렵다. 불법 추심으로 인한 피해자는 늘고 있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한 해 대부업체를 이용하다 불법 채권추심이나 불법 이자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는 2008년보다 40%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해 12월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9년 11월까지 ‘사금융 애로 종합지원센터’에 접수된 사금융 피해상담 건수는 모두 5195건으로 2008년 같은 기간에 비해 39.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불법 사금융 행위에 대한 감독을 계속해서 강화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해가 갈수록 피해자가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얼마 전까지 대형 대부업체에 근무했다는 C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대부업체들도 진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첫 번째로 이유로 꼽았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사금융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유명 대부업체를 예를 들었다.
“모든 대부업체는 기본적으로 추심 업무를 지점에서 담당합니다. 은행이나 카드 회사와 같이 본점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아닌 거죠. 다만 추심 이력이 기록된 데이터는 중앙서버에 저장되어 있는데 지점에서는 여기에 접속해 관련 데이터를 볼 수 있을 뿐 다운로드 등은 불가능합니다. 피해자가 금융감독원이나 경찰 등에 신고해서 조사를 나가면 일반적으로 각 지점으로 나가게 되는데 지점 컴퓨터에는 추심 관련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 추심 행위를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중앙 서버를 압수수색해야 하는데 이 서버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회사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가합니다. 일본계 대부업체 같은 경우 일본에 서버가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마저도 확인하기 어렵죠.”
그는 일부 지점에 남아있는 자료 등은 만약의 경우 클릭 한 번에 모두 삭제될 수 있을 만큼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회사 차원에서는 불법 추심 등을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회수율 같은 성과만을 가지고 직원을 압박하기 때문에 직원 스스로가 추심 방법을 고민한다는 것. 가령 B 씨 경우와 같이 밤늦게 추심을 할 때는 퇴근길에 공중전화 등을 이용해 추심 전화를 하기 때문에 기록에는 남지도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어떤 직원은 추심을 위해 따로 ‘대포폰’을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즉 법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추심방법도 진화한다는 주장이다. C 씨는 “지금 자기가 알고 있는 교묘한 추심 방법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고 귀띔했다.
이런 추심 행위 때문인지 지난해 한 대형 대부업체는 98%에서 99% 사이의 기록적인 회수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 위주로 대출을 하는 제1금융권에서도 기록한 적이 없는 높은 회수율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비교적 신뢰한다는 저축은행의 추심행위는 어떨까. 이 관계자는 대부분의 저축은행이 추심은 위탁업체에 맡기기 때문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위탁업체의 경우 회수율이 좋지 않으면 계약이 해지되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추심에 나선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불법추심 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사채시장 종사자들은 이런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한 사채시장 종사자는 “정부가 불법추심 단속을 강화하면 대부업체들은 대출 기준을 강화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즉 대출기준을 강화해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 위주로 대출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불법 추심은 줄어든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면 제도권에서 신용대출 등이 어려운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제3금융권인데 근본적인 대책 없이 불법 추심 단속만 강화한다면 금융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이번에는 불법사채 시장으로 떠밀려 나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부업체에서 근무했다는 한 관계자는 “유명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금융에 대해 문외한인 20대 중후반의 여성들”이라며 “이들은 대부분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소액을 대출받는데 사금융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가 계획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것밖에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