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 ||
정치권 관계자들은 시기와 장소, 의제 등 구체적인 실무 협의만 남았을 뿐 MB가 임기 내에 어떤 식으로든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보당국 주변에선 여권 핵심부가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오래 전부터 ‘비밀 TF팀’을 가동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TF팀에는 MB의 핵심 측근인 임태희 노동부 장관을 필두로 원세훈 국정원장, 현인택 통일부 장관, 유명환 외교부 장관 등 외교안보라인 수장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TF팀에서는 정상회담 의제와 장소는 물론 추진 시기를 단계적으로 준비하는 등 상황별 로드맵까지 치밀하게 구상하면서 북측과 물밑 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3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여부를 좌우할 핵심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는 ‘비밀 TF팀’의 실체를 들여다 봤다.
정치권 주변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비밀 TF팀’ 가동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초순경부터다. 지난해 8월 4일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북·미 간 화해 모드를 이끌어내는 등 큰 성과를 일궈내자 여권 주변에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소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MB는 취임 이후 줄곧 ‘선 북핵 포기’ 등 대북 강경 노선 기조를 유지해 왔다.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 현 정부 출범 이후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했지만 MB는 대북 강경 소신을 꺾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여권 핵심 실세로 통하는 이상득 의원, 이재오 국민통합위원장, 김덕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등이 ‘대북특사’ 후보로 단골로 거론됐고, 심지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정동영·박지원 의원 등 야권 유력 인사들을 특사로 파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을 넘어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서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을 통해 큰 성과물을 얻어내자 MB도 대북강경책 빗장을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해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여권 내부에서도 ‘통미봉남’(미국과만 대화하고 남한과 대립하는 양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며 “집권 중반기로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도 원활한 국정운영과 한반도 주변국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특단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특단의 결단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중진 의원은 비보도를 전제로 “극도로 악화된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를 주문한 것으로 안다”며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정점으로 한 남북정상회담 TF팀 구성 문제도 이때부터 비밀리에 논의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실제로 정보당국 주변에서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여권 핵심부가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비밀 TF팀’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설득력 있게 나돌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TF팀의 실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 정상회담과 관련한 TF팀의 은밀한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TF팀의 실체가 수면위로 처음 부상한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경이다. MB의 핵심측근인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 등을 극비리에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가 정상회담 실무라인을 진두지휘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실제로 일본 <아사히신문>은 2월 4일자 서울발 보도를 통해 임 장관과 김 부장이 10월 17~18일 양일간 비밀회동을 통해 정상회담 일정을 합의했으나 북핵 문제 등 일부 의제들과 관련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임 장관은 오래 전부터 북측과의 접촉을 준비해 왔으며 입각(10월 1일)하기 전부터 싱가포르 비밀회동을 계획했고, 이상득 의원 측과도 물밑 교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지난해 10월 중순경 임 장관이 비밀리에 싱가포르를 방문할 당시 국가정보원 고위관계자가 동행한 것으로 미뤄 국정원도 TF팀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소식에 정통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2월 3일 기자와 만나 “구체적인 실체는 아직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여권 핵심부가 정상회담 TF팀을 가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며 “당내 정보망을 종합해 볼 때 TF팀에는 이미 신분이 노출된 임태희 장관을 비롯해 원세훈 국정원장, 현인택 통일부 장관, 유명환 외교부 장관 등 외교안보 라인 수장들이 유기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이상득 의원과 류우익 주중대사 등 중진급 실세들도 직간접적으로 비선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MB가 ‘연내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은 TF팀 존재 가능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MB는 1월 30일 미국 CNN과의 회견에서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방안)에 대해 협의할 수 있고,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 제안에 흥미를 가질 것으로 본다”며 “핵을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를 답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 정상회담 추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발언은 우리 정부 측에서 북측에 뭔가를 제안했고, 그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MB가 공식라인이든 비공식라인이든 정상회담 TF팀을 통해 북측과의 물밑 접촉을 강화해 왔고, 조만간 그 가시적인 성과물을 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남북 당국은 정상회담 개최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개성에서 두세 차례 비밀 접촉을 갖고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 회동에는 우리 측에선 통일부 고위관계자가 나섰고, 북측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 합의문 초안을 작성한 인물로 잘 알려진 원동연 실장이 대표로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양측은 북핵 문제를 비롯해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문제, 인도적 지원문제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지만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남북 당국이 비밀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의제 등을 조율하고 있는 정황에 미뤄 MB와 여권 핵심부가 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정상회담이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보당국 일각에선 구체적인 의제 절충과 시기, 장소 등 민감한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남북 당국이 ‘정상회담 성사’라는 큰 틀에는 상호 교감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여권 핵심부 주변에선 TF팀을 중심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남북관계 상황에 대비한 단계적 로드맵이 설정돼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정상회담 시기와 관련해서는 올 상반기(1단계)-연말(2단계)-MB 임기내(3단계) 성사 등 단계적 로드맵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장소는 우리 측이 ‘답방’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있어 북한에서 개최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북측은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을 이유로 평양을 1차 장소로 상정해 놓고 있다는 후문이다. 남북분단 상황을 상징하는 판문점이나 남북 모두 부담감이 덜한 개성이나 금강산이 회담장소로 결정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정상회담 추진 여부와 관련한 각종 소문과 추론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지만 정부와 청와대는 북측과의 비밀접촉 문제를 비롯한 제반 사항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MB 발언 이후 연내 정상회담 개최설이 확산되자 조기 진화에 주력하면서 TF팀 실체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보당국 관계자들 사이에선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상 여권 핵심부가 정상회담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고, 그 정점에 TF팀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여권 내부에서조차 극도의 보안 사항이라는 점에서 TF팀의 실체와 역할 등은 정상회담이 성사될 때까지 여전히 베일에 가려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만 정상회담의 중요성과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남북관계를 감안할 때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TF팀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그 실체 또한 존재할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과연 정상회담 TF팀의 실체와 역할은 무엇일까. 정치권 최대 이슈로 급부상한 정상회담 추진설 논란과 맞물린 TF팀의 정체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