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중생의 교복을 강제로 벗기고 집단폭력을 행사하는 등 엽기적인 졸업식 장면을 찍은 동영상들이 포털사이트에 올라오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
문제는 졸업식 뒤풀이가 학창시절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려는 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보기에는 도를 넘어서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막장 졸업식 뒤풀이 풍경이 소개되고 있고, 포털 사이트에도 엽기 뒤풀이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쯤되면 장난이 아닌 범죄수준”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지나친 해방감의 표출로 인해 일그러진 졸업식 뒤풀이 풍경을 들여다봤다.
지난 2월 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여중생 졸업식’이라는 제목의 1분 20초짜리 충격적인 동영상이 퍼졌다. 대낮에 30여 명의 학생이 골목길에서 한 여중생의 교복을 강제로 벗기고 머리에 케첩을 뿌리는 등 집단폭력을 저지르는 내용이었다.
문제의 동영상은 2월 5일 서울 금천구의 한 중학교 졸업식 뒤풀이 장면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결과 가해자들은 동급 학생이 아닌 그 학교 출신 선배들인 고교생으로 파악됐는데 이들은 “학교 전통으로 매년 졸업식마다 반복되는 일”이라고 진술했다.
도를 넘은 졸업식 뒤풀이 풍경은 비단 이 학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졸업식 뒤풀이는 마치 졸업생이라면 으레 치러야 할 ‘의식’처럼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졸업식 뒤풀이의 최대 화두는 단연 ‘노출 퍼포먼스’다. 과거 밀가루를 뿌리고 책을 찢는 선에서 그치던 졸업식 뒤풀이는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이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과격하고 위험해졌다. 교복과 가방 찢기, 밀가루와 계란세례는 말 그대로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는 집단 폭행과 옷 벗기기, 케첩이나 물엿·오물·스프레이 뿌리기, 페인트 칠하기, 소화기 분사, 밧줄로 몸 묶기, 액젓 먹이기, 속옷 찢기, 바닷물에 빠뜨리기 등 새로운 엽기행각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졸업생들끼리 속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거나 아예 알몸으로 뒤엉켜 난동을 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 행위가 단순한 ‘추억 만들기’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해자들은 ‘악의’가 아닌 ‘전통’과 ‘관행’에 의한 순수한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피해자들에 인격모독뿐 아니라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할 정도로 지나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부 졸업생들은 졸업식이 끝난 후 과격한 뒤풀이로 인해 “인대가 늘어났다” “몸살났다” “온몸에서 케첩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몸 곳곳에 멍이 들고 손톱자국 투성이다”라는 식의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자칫하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2월 8일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졸업식을 마친 여중생들이 선배들에 의해 차가운 바닷물 속에 던져지는 일이 벌어졌다. 선배들은 졸업한 후배들을 포구로 끌고가 미리 준비한 가위와 면도칼로 교복과 속옷까지 찢은 뒤 바닷물에 밀어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여중생들은 물질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해녀들에 의해 발견돼 무사히 구조됐다. 가해자들은 ‘학교 전통’을 운운하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피해자들의 학부모들은 “옷을 벗긴 상태로 수영도 못하는 애들을 차가운 바닷물에 밀어넣은 것은 일종의 살인미수나 다름없다”며 분개하고 있다.
2월 10일 청주에서는 길 가던 시민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엽기적인 광경이 벌어졌다. 저녁 7시께 청주시 한 시내 한복판에서는 이날 졸업을 한 남자 중학생 20여 명이 팬티만 입은 채 도로를 20여 분간 행진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열을 맞춘 상태로 도로를 뛰거나 걷기를 반복했다. 선배로 보이는 인솔자 4~5명의 지시에 따라 시내를 활보하던 이들은 구호에 맞춰 엎드려뻗쳐와 양팔 벌려 뛰기를 하기도 했다. 괴성과 고함을 지르며 수십 분간 거리를 점령하고 행보하는 이들의 모습에 시민들은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2월 10일 부산에서도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졸업식 뒤풀이가 벌어졌다. 이날 오후 광안리 해수욕장에는 졸업을 한 남녀 중학생 30여 명이 모여들었다. 잠시 후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또 서로 밀가루와 계란을 집어던지고 옷을 찢는가 하면 반라상태로 소리를 지르며 백사장을 뛰어다녔다. 속옷차림으로 뒤엉켜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주민들의 신고로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출동한 경찰은 ‘미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쫓아다니며 “학생들, 옷 갖춰 입고 집으로 가요”라고 훈계했지만 이들은 경찰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반나체로 춤을 추는 등 약을 올리다가 수십 분 동안 반복된 경찰의 강제해산 명령에 의해 간신히 해산했다.
졸업식 뒤풀이에 심취한 나머지 결국 경찰서행을 하게 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월 13일 새벽 청주 시내 한 주택가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한 10대 4명이 휘발유를 훔쳐 주택가 골목에 불을 지른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 불은 주민의 신고로 신속히 진화됐지만 비닐하우스와 목조건물 등이 있었던 주변 환경으로 볼 때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또 서울 시내 한 고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은 술을 마시고 길 가던 행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했다가 경찰에 입건되는 사건도 있었다.
해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막장 졸업 뒤풀이는 공부에 대한 압박과 절제된 생활로 생긴 스트레스를 졸업을 빌미로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수위를 더해가는 막장 졸업식 뒤풀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야 할 졸업식이 도를 넘어선 뒤풀이로 인해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광란의 졸업파티에 가담한 이들을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보다 못한 주민들의 신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막상 처벌하기는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일단 애들이 나이가 어린 데다가 이들의 행동을 범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을 말리고 해산시키는 수준이다. 특히 가해 학생과 피해학생 양쪽 모두 일종의 놀이로 여기고 있어 훈방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난감해했다. 교육청 관계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그릇된 졸업식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사전예방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졸업식 현장에서 지도 및 감시를 하고 있지만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 막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