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조폭 보스 출신인 오 씨의 빈소. 도박으로 막대한 재산을 탕진한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선 자살이 아니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도대체 어떤 사람의 장례가 치러졌기에 얼핏 봐도 신분을 알 만한 사내들이 빈소를 오갔던 것일까. 장례의 주인공은 한때 주먹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오 아무개 씨였다. 오 씨는 김태촌 씨가 보스로 있던 폭력조직 범서방파의 행동대장이었으며 강남 일대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주먹’으로 명성을 날렸다. 10여 년 전 주먹계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했던 오 씨의 올해 나이는 54세. 인생을 마감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였던 오 씨는 지난 9일 한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한때 주먹세계를 주름잡던 그가 무슨 이유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지 그 내막을 쫓아가 봤다.
지난 3월 11일 분당경찰서에 따르면 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고층빌딩 밑에 중년 남성이 숨져 있는 것을 빌딩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신원을 확인한 결과 숨진 남성은 한때 유명 조직폭력배로 이름을 날리던 오 아무개 씨였다. 경찰은 오 씨가 이날 오전 10시경 집을 나서면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것과 건물 안에 있는 CCTV에 혼자 올라가는 모습이 찍힌 것으로 보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1956년 광주에서 태어난 오 씨는 한때 지역 건달로 활동하다가 1970년대 서울로 올라와 김태촌 씨가 보스로 있던 범서방파의 행동대장을 맡으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김태촌 씨와 오 씨가 개입했던 사건 중에 잘 알려진 것이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사건’이다. 당시 김 씨와 오 씨는 신민당 비주류 측 정치인들의 사주를 받고 폭력배 수백 명을 이끌고 신민당 당사를 점거해 당시 김영삼 총재 등 주류 측 의원들을 폭행했다. 3일 뒤에 열린 전당대회장에도 난입해 각목을 휘둘렀다. 이 사건은 1970년대 유명한 정치폭력 사건으로 지금도 정치권과 폭력조직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다.
오 씨는 이후 범서방파의 중간 보스로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명을 따서 만든 조직인 ‘쌍택이파’를 따로 만들어 서울 강남 지역 일대를 주름잡았다.
‘쌍택’이란 이름은 듣는 사람들에게 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 가명을 쓰는 조직폭력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쌍택이파’ 보스 오 씨는 가장 유명한 ‘주먹’이었다는 것이 강력계 형사들의 얘기다.
오 씨는 2000년도 초반 주먹계 생활을 접고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카지노 사업을 시작하면서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인 정덕일 씨와 손을 잡았다. 2006년 말 정 씨는 서울 잠실 석촌호수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본인 소유의 호텔 명의로 제주도 신라호텔 카지노를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 신라 카지노는 당시만 해도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이 나는 카지노였다.
오 씨와 정덕진·덕일 형제 양쪽을 잘 알고 있는 인사에 따르면 오 씨는 정덕일 씨가 카지노를 인수할 당시 약 2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10% 정도의 지분을 가지는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사실상 오 씨의 인생은 카지노 사업에 손을 대기 전과 후로 나눠졌다. 오 씨가 주먹세계에 몸을 담을 때만 해도 그는 도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순수한(?) 주먹이었다. 하지만 그는 카지노 사업에 손을 대면서 동시에 도박에도 손을 댔다고 한다. 카지노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카지노 게임의 ‘메커니즘’도 잘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오 씨는 적어도 카지노 세계에서는 주먹계에서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도박게임의 하나인 ‘바카라’(두 장의 카드를 더한 수의 끝자리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카드 게임)에 빠지면서 가지고 있던 재산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오 씨의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많은 현금을 보유한 알짜 부자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지난 1년 동안 서울의 한 카지노에서 10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고 한다. 지인들은 그가 거의 매일 카지노에서 살다시피했다고 전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바카라 한 게임당 최고 베팅액인 5000만 원을 연속으로 70회 정도 걸어 모두 잃기도 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잃었던 그는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사채를 끌어다 쓰기도 했으며 총 30억 원에 이르는 사채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 씨는 자살하기 전날인 8일에도 밤 11시께 집에서 약 11억 원을 들고 마지막으로 카지노로 갔다가 이를 모두 탕진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내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주고 가짜 파라과이 영주권을 만들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카지노 주변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들에게 150만~300만 원만 주면 위조 여권이나, 가짜 외국인 영주권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오 씨의 가족들은 “카지노 측이 오 씨가 가짜 영주권을 가지고 출입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장례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면 카지노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빈소를 찾은 지인들은 오 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빈소에서 만난 오 씨의 한 후배는 “(이 세계에서) 존경할 만한 몇 안 되는 분이었는데 허무하게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몇몇 강력계 형사들은 오 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기자로부터 처음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대문 경찰서의 한 형사는 “자살한 게 정말 쌍택이파의 그 사람이 맞냐”고 물으며 “그가 도박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평소 오 씨와 잘 알고 지냈던 한 지인은 오 씨에 대해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오 씨는 다른 주먹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굉장히 신사적이었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섭도록 냉철하고 사리에 밝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오 씨의 사인이 자살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담당 경찰서에서 재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