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 이기식 합참 정보작전처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정치권 관계자들은 천안함 침몰 사건은 북한과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미제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천안함 참사를 둘러싼 ‘4대 미스터리’를 집중 추적해 봤다.
정부당국은 사건 초기 “북한의 개입 가능성은 낮다”고 일축했으나 북한 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특히 사건 당시 북한의 잠수정 또는 반잠수정(이하 잠수정)이 백령도 인근에서 활동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북한 개입설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은 3월 31일 “관계기관에 확인한 결과 북한의 기린도 해군기지에서 잠수정 4척이 움직였다”며 “북한의 잠수정이 움직이는 상황은 국방부가 늘 스크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의 주장대로 군 당국이 북한 잠수정의 이동을 포착했다면 당연히 대북경계작전에 들어갔을 것이고, 천안함이 백령도 가까이에 접근해 잠수정 위치를 찾으려는 초계작전을 펼쳤을 것이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4월 1일 기자와 통화한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은 최근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와 연합야외기동연습인 독수리훈련에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며 “군 당국은 북한이 키리졸브 훈련에 맞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자신의 영해에 기뢰를 설치해 왔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따라서 북한 잠수정이 설치한 기뢰가 남쪽으로 흘러내려와 천안함에 부딪쳤거나 극단적으로 잠수정이 천안함에 접근해 어뢰 공격을 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3월 29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북한 반잠수정은 어뢰 2발을 발사할 수 있다”며 반잠수정에 의한 천안함 피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고 지난 2일에는 국회긴급현안질의에서 “북한 잠수함 2척이 확실히 보이지 않은 바가 있었다. 24일부터 27일까지였다”고 답한 뒤 “기뢰 또는 어뢰 가능성이 다 있지만 어뢰 가능성이 좀 더 실질적이지 않나 싶다”고 발언해 처음으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밝혔다.
김 장관의 발언 자체가 “(암초도 피로파괴도 아니라면) 기뢰나 어뢰 가능성만 남는 게 아니냐”는 범위를 한정시킨 질문을 받고 나온 것이라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군 내부의 시각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군의 판단은 어뢰에 의한 피격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는데,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김 장관의 이번 발언은 군의 판단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 당국은 사고 당시 북한의 잠수정이 실제로 기동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천안함 침몰을 전후해 NLL 인근에서 북한 잠수정의 움직임이 포착됐고, 속초함이 대응사격을 했다는 사실에 미뤄 북한 개입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당국이 사건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교신일지’를 군사기밀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교신일지는 천안함과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속초함 등 일대 함선과 평택 2함대사령부 사이에 오간 통신 내용으로 천안함의 이동 경로 및 속초함의 사격 경위 등 군사작전에 관한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한 자료다. 사고 당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단서인 셈이다.
특히 교신 기록에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이 사고 직후 2함대사령부에 휴대전화로 첫 보고를 할 때 ‘피격당했다’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져 교신일지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 ||
국방부의 교신일지 공개 불가 입장과 달리 여권은 찬반 의견이 나뉘고 있다. 정몽준 대표는 “유언비어와 억측이 퍼지는 상황이 또 다른 염려를 낳고 있다. 유언비어를 방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사실을 차분히 밝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성조 정책위 의장은 “이 사건은 정권을 뛰어넘는 국가 안위와 관련된 사안”이라고 전제한 뒤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출 우려가 있는 국가 안보상 주요사항을 다루는 데 있어서 보안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군 당국은 군사기밀 사항 등은 제외하고 사고 당시 함장의 보고 내용 등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해소시킬 수 있는 내용만 일부 정리해서 공개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은 여당 지도부가 공개론을 펼치고 있는 것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립 서비스’에 불과하고, 분명 교신일지 전부를 공개하지 못할 은밀한 속사정이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부당국의 은폐론 의혹과 맞물려 천안함 침몰이 한미 연합훈련 중 ‘오폭’ 때문이라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돼 또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지난 3월 26일 사고 기간에 백령도 인근에서 한미 양국의 함정들이 ‘독수리 연습’을 실시 중이었고, 천안함도 이 훈련에 참가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폭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한마디 확인도 없이 일종의 유언비어를 의도적으로 쓴 것 같다. 관련 기사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원 대변인은 또 “천안함은 해군2함대 소속 경비함으로 경비임무만을 수행하는 함정인 데다 사고 해역은 훈련구역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합참과 한미연합사도 오폭설을 일축하고 있다.
김 장관은 3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 해군의 이지스함 2척과 한국의 세종대왕함, 최영함, 윤영하함 등이 참가한 한미 합동훈련 중에 초계함이 침몰한 것 아니냐’는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사고 원인이 외부타격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 데다 일부 생존 승조원들의 주장과 사고 당시 약 20분간 함포사격 소리를 들었다는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한미간 합동 훈련 중 오폭으로 인한 침몰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여기에 군 당국이 그동안 천안함 침몰사건이 한미 독수리훈련 기간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점도 오폭설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군 당국이 사고발생 시각을 수차례 번복한 배경을 놓고도 갖가지 추측과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합참은 26일 사고발생 시각을 처음에는 밤 9시 45분으로 발표했다가 다음날(27일) 국회 보고에선 9시 30분으로 정정했다. 이어 김 장관은 29일 국회 국방위에서 다시 9시 25분이라고 앞당겼고, 4월 1일 오후 발표한 ‘천안함 침몰 관련 국방부 입장’에서는 사고발생 시간을 26일 밤 9시 22분께로 수정했다. 사고발생 시각이 수차례에 걸쳐 23분가량 앞당겨진 셈이다. 참사 원인을 규명할 기본 조건인 사고발생 시각을 놓고도 군 당국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배경에는 분명 뭔가를 숨기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군은 최초, 중간, 최종 보고의 절차가 있으며 최초 보고는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을 강조하면서 오차가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일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인명 구조 및 수색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UDT 소속 한주호 준위(52)가 순직하고 수색작업을 벌이던 민간 어선 금양 98호가 침몰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가 잇따라 발생한데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수색작업을 재개한 군은 당일 오후 6시 10분경 함미 부근에서 고 남기훈 상사(36)의 시신을 실종자 중 처음으로 발견했다. 실종자가족협의회는 모든 실종자가 인양될 때까지 장례절차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