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공란에 취미를 적을 때, 소개팅 나가서 취미가 화제에 오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난감한 표정부터 짓는다. 딱히 떠오를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일 벌레’ 한국인들은 돈을 버는 데는 익숙해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어떤 용도로 즐겁게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늘 취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궁색하거나, 또는 없다. <일요신문>은 중년남성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와 함께 아저씨들의 취미생활 전반에 대한 조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 시대의 아저씨들은 취미를 즐기고 싶어도 시간과 상황이 여의치 않아 마음 편히 여가도 즐기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다. 조사는 전국에 거주하는 30세 이상 60세 미만의 남성 300명을 대상(세대별 각 100명씩)으로 온라인 패널 조사 형식으로 진행했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5.7%)
[특별취재팀=성기노 취재2팀장, 박민정 기자, 서윤심 기자]
배우자와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들 중 50대가 27.3%로 30, 40대 대비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사진은 발왕산 정상에서 한 부부가 눈꽃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연합뉴스
“평균 2개의 취미생활을 하고 있으며 운동과 등산을 선호함. 한 달 5만 원 미만의 비용으로 일주일 평균 5시간 48분가량 홀로 취미생활을 즐기며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 다만 가족과 보낼 시간이 부족하고 과도한 업무로 인해 취미생활을 마음 편히 할 수 없음.”
대한민국 3050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을 요약해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연령대, 직업, 소득, 지역이 달라도 대체적으로 위의 결과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가지씩 자세히 살펴보면 3050아저씨들은 보통 2개의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취미 개수를 묻는 질문에 ‘2개’를 택한 이들이 전체 응답자 중 49.1%로 가장 높게 조사됐으며 뒤이어 ‘1개’ 35.5%, ‘3개’ 13.4%, ‘5개 이상’ 1.1%, ‘4개’ 0.9%가 차지했다.
모든 연령에서 2개의 취미를 가진 이들이 가장 많았으며 지역별로는 부산·울산·경남만이 ‘1개(45.1%)’라는 답변이 ‘2개(32.5%)’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소득도 취미 개수에 영향을 미쳤는데 4000만 원이 기준이 됐다. 4000만 원보다 높을 경우 취미가 ‘2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낮다고 답한 응답자 중에는 ‘1개’를 가장 많이 택했다. 경제적 여건이 취미의 다양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저씨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취미는 단연 운동(33.2%)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골프 6.3%, 야구 3.9%, 배드민턴 3.4%, 자전거 타기 3.2%, 헬스 2.0%, 수영 1.7%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2위도 활동적인 취미였는데 ‘등산/캠핑/트레킹(23.7%)’이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공연/음악/영화감상’ 7.4%, ‘낚시’는 6.0%, ‘독서’ 4.3%, ‘게임’ 4.1%, ‘인터넷/블로그/동호회’ 3.6%, ‘바둑’ 3.2%, ‘여행’ 3.0% 순으로 조사됐다.
다른 취미보다 비교적 많은 비용이 드는 ‘공연/음악/영화감상’은 6000만 원 이상(10.8%)의 고소득자의 선택이 높았으며, ‘독서’의 경우 2000만 원 미만에서 11.1%의 지지를 받아 다른 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일주일 168시간 중 취미생활을 위해 쓰는 시간은 평균 5시간 48분이었다. 연령대와 소득, 지역에 상관없이 일주일 평균 ‘3~6시간’을 취미생활로 보낸다는 응답이 48.2%로 가장 높았으며 ‘2시간 이하’ 22.3%, ‘7~10시간’ 17.4%, ‘11시간 이상’ 12.1%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대전·충청·세종만이 유일하게 ‘2시간 이하’가 30.8%로 높아 눈길을 끌었다.
취미활동에 투자하는 비용은 한 달 평균 ‘5만 원 이하’라는 응답이 38.0%로 모든 연령대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다만 ‘6만~10만 원’이라는 응답이 23.7%, ‘비용 없음’이 11.9% 등 전체적으로 평균값을 냈을 땐 10만 6000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이가 많을수록 취미생활에 투자하는 비용도 올라갔는데 30대 7만 8000원, 40대 10만 5000원, 50대 13만 6000원이었다. 한 달 평균 ‘20만~30만 원’을 지출하는 응답자 중에서는 골프를 즐기는 중년남성들이 많았으며 ‘31만 원 이상’을 택한 이들의 주된 취미생활은 옛 물건, 앨범 등의 ‘수집’인 것도 특징이었다.
대부분 취미생활에 그리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저씨들의 취미생활 비용 출처가 대부분 ‘용돈’(소득을 배우자나 타인이 관리하는 경우)이었기 때문이다. 전체의 64%가 용돈을 받아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특히 40대의 경우 75.5%에 달했다. 용돈이 아닌 경우도 ‘거의 비용이 들지 않음’ 12.5%, ‘비자금’ 9.9%, ‘저축’ 9.3%, ‘아르바이트’ 2.1%, ‘대출’ 0.3% 순으로 나타나 아저씨들의 ‘힘겨운’ 취미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취미를 영위할 주된 동력인 ‘자금’을 자신이 직접 컨트롤 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즐기려야 마음껏 즐길 수 없는 아저씨들의 고충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는 ‘가족과 보낼 시간이 부족(25.6%)’과 ‘과다한 업무(23.%)’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과다한 업무를 택한 이들은 다른 응답자들에 비해 취미활동에 더 적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일주일 평균 취미활동 시간은 5시간 21분으로 전체 평균보다 27분이나 적었다. 이외에도 ‘배우자, 육아, 집안일 소홀’ 13.5%, ‘파트너 구하기 어려움’ 13.2%, ‘가족 잔소리’ 10.0%, ‘과다한 취미활동 비용’ 6.5% 등이 취미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꼽혔다.
이렇듯 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은 ‘남의 손’에 의지하는 경제적 여건과 과다한 업무 등으로 힘겹기만 하다. 그리고 그들은 외롭다. 전체 응답자의 33.6%가 홀로 취미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자가 아닌 경우엔 동호회 25.6%, 배우자 16.7%, 친구 16.0%, 직장동료 5.8%, 자녀 2.0%, 내연녀 0.3% 등과 함께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가지 특징은 배우자와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들 중 50대가 27.3%로 40대(11.6%), 30대(11.2%) 대비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누라’가 인생의 영원한 파트너임을 인식, 취미생활도 함께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힘겹고 외롭지만 그래도 취미생활을 이어나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47.4%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오차범위 내에서 건강(37.5%)이라는 응답도 높게 나타났다. 30대와 40대는 스트레스 해소를 더 큰 목적으로 삼은 데 비해 50대는 건강을 중시했다.
특별취재팀
서울역 현장투표 해프닝 “철인3종·건담 수집은 왜 보기에 없는거요?” 여론조사에서 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개인적인 이유나 특이한 사례 등이 궁금했다. 취재팀은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서울역에서 ‘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을 물었다. 지난 23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약 200여 명의 아저씨들로부터 취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12월 23일 서울역에서 200여 명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취미생활 조사를 진행하는 모습. 아저씨들의 취미를 묻는 질문에는 온라인 여론조사와 비슷한 답변이 많았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취미는 운동으로 전체의 28.1%를 차지했다. 이어 공연/음악/영화감상이 18.5%, 여행 15.2%, 등산/캠핑/트레킹 10.7%, 낚시 9.0%, 게임 7.9% 등의 순위로 집계됐다. 같은 취미를 가졌지만 저마다 이유는 다양했다. 운동이나 등산/캠핑/트래킹을 취미로 택한 아저씨들은 건강을 위해서라고 답했는데 40대 직장인은 “늙어서 버림받지 않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니 평일에는 회사 헬스장을 찾고 주말에는 등산을 간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저씨들은 돈이 별로 들지 않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운동이 취미라고 답했다. 취미를 도피처로 활용하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또 다른 40대 직장인은 “주말 하루쯤은 혼자 있고 싶다. 다른 취미를 가지면 아내나 애들이 같이 하자며 달려드는데 등산은 힘들어서 아무도 따라오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등산을 시작했는데 매주 4~5시간씩 보내는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예상과 달리 연령층이 낮을수록 비활동적인 취미를 가진 이들이 많았다. 30대 초반의 직장인은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나면 취미생활을 할 힘이 없다. 퇴근 후 술자리가 없으면 바로 집에 들어와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본다. 친구들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볼 뿐 시간 맞추기도 어렵다”며 “결혼을 안 한 친구들은 보다 활발하게 취미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유부남이 되는 순간 다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기에 내 취미는 없네요.” 사전 온라인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상위권에 속한 취미들만 골라 객관식으로 진행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조각(미술), 철인3종 경기, 영어회화 동호회 등 평범하지 않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 이중에는 스스로를 ‘키덜트’라 칭하는 아저씨들도 포함돼 있었다. 키덜트란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남성은 “피규어(관절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다양한 동작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나 동물 형상의 모형 장난감)를 모으는 게 취미다. 주로 ‘건담’을 모으는데 카페 한쪽에 진열해둔다. 동호회 활동도 하고 있는데 40~50대 아저씨들도 많다”며 “조립을 하고 있으면 잡생각이 안 들어 좋고 완성품을 보면 성취감도 있다. 한정판을 손에 넣을 때 쾌감도 잊지 못한다. 비용이 부담될 때가 있는데 가장 비싼 모델은 80만 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아저씨들의 취미생활 비용 마련 방법은 월급이 49.1%로 압도적이었다. 소득을 직접 관리하는 아저씨들은 ‘월급’에, 경제권이 없는 경우에는 ‘용돈’을 택하도록 했다. 월급 외에는 비자금(17.0%), 용돈(14.5%), 기타(8.5%), 아르바이트(5.5%), 비용 불필요(4.8%), 계(0.6%) 등 다양한 방법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었다. 온라인 여론조사와 달리 자신이 직접 돈을 관리하면서 월급의 일부로 취미생활을 영위한다는 답변이 높은 게 특징이었는데 이를 보고 믿지 않는 아저씨들도 적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는 남의 눈치를 안 보기 때문에 진솔하게 의견을 말했지만 현장조사는 타인을 의식해 솔직하지 못하게 대답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용돈을 택한 50대 직장인은 “남자들이 이렇게 살아. 안타까운 거지”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다가도 “월급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 말이 안 된다.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에게 물어봐도 대부분 아내가 돈 관리를 하면서 용돈을 받고 있는데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 솔직하게 답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곁에 있던 30대 직장인도 “취미에는 관심이 없다”면서도 “자기 월급이 얼마나 입금이 되는지 모르는 남자들도 많은데 뭘 직접 소득을 관리한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아저씨들의 취미생활을 어렵게 하는 점’이었다. 한창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나이라 그런지 과다한 업무라고 답한 아저씨들이 34.5%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부인 또는 자식의 눈치 24.4%였으며 기타 15.5%, 비용압박 14.3%, 파트너 없음 8.3%, 가정에 소홀 3.0% 순이었다. “나이 들어 취미생활 하려면 아내, 자식들 눈치 봐야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50대 남성은 “젊을 때는 일 하느라 취미가 뭔지 모르고 살다가 이제야 낚시의 재미를 알았다. 돈을 벌지 않으니 비용문제도 만만치 않지만 마누라 눈치 보는 게 제일 힘들다. 은퇴 후에는 가정에 충실하기로 약속을 해서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것도 잔소리가 심하다. 주변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좀 더 나이가 들면 밖에 안 나간다고 화를 낸다고 하더라.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수줍은(?) 고백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밖에도 “이 나이 되면 마음 맞는 친구 만나기가 힘들다. 마음 맞는 친구랑 여행하고 싶은데 파트너가 없어” “홀아비라 취미생활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반면 기타에 한 표를 던진 아저씨들 대부분은 “어려운 점은 없다” “당당하다”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다”며 뿌듯함을 숨기지 못했다. 중년남성들의 취미생활을 취재하면서, 한국의 아저씨들은 참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의 취미생활도 사치로 여겨지는 가족, 사회의 분위기가 아저씨들을 더욱 위축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