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나폴리스는 할리우드 영화인들을 사탄 숭배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종종 무고한 사람을 몰아간다는 데 있었다. 더 나아가 그녀는 그 배후에 사탄의 음모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여기엔 단순히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주술적인 의식이 있다는 것이며, 미국 전역에 거대 지하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이 악마의 조직은 1980년대 초에 생겨났고, 인터넷을 통해 악마 숭배자들을 색출하고 희생자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엄격하게 보호되는 미국에서, 여기까진 그래도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폴리스는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섰다. 악마 숭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협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리학자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도 나폴리스의 표적 중 한 명이었다. 한국에도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라는 책이 출간됐으며, 인간에게 가짜 기억이 이식될 수 있다고 주장한 로프터스를 사탄의 추종자로 점찍은 나폴리스는 이메일을 통해서 수차례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 그녀의 활동은 2000년 여름에 갑자기 중단된다. 그녀는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에서 주로 작업했는데, 캠퍼스 경찰에 의해 사이버 스토킹 죄로 체포된 것. 재판에 넘겨져 형을 살진 않았지만, 더 이상 그곳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이애나 나폴리스에 지속적으로 살해 협박을 당한 스티븐 스필버그(왼쪽)와 제니퍼 러브 휴이트.
그렇다고 멈출 나폴리스가 아니었다. 유독 할리우드를 악마의 소굴로 생각했던 그녀는 두 명의 셀러브리티에게 확신을 가진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그리고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 <이프 온리>(2004) 등의 영화로 유명하며 뮤지션이기도 한 제니퍼 러브 휴이트였다. 나폴리스가 왜 그들에게 주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스토킹은 시작되었다. 2001년 그녀는 스필버그와 그의 가족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했지만, 이미 1997년에 심하게 스토킹을 당한 경험이 있는 스필버그는 보안을 강화하며 완강히 대처했다.
제니퍼 러브 휴이트에겐 집요했다. 이 시기 휴이트는 성룡과 함께 찍은 영화 <턱시도>(2002) 프로모션 중이었다. 9월에 그녀는 라틴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LA의 코닥 씨어터에 도착했는데,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한 구석에 숨어 있던 나폴리스는 소리쳤다. “살인자! 넌 나를 죽이고 있어!” 10월엔 TV쇼에 나온 그녀를 만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 라디오 방송사 밖에서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휴이트의 어머니인 팻 휴이트를 거칠게 밀기도 했다. 11월에 열린 <턱시도> 시사회에선, 휴이트의 일행으로 속여 몰래 들어가려다 적발되었다.
휴이트의 팬 사이트 운영자인 제임스 앨런 믹스에게 보낸 메일은 결정적이었다. “나는 너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고 난 네가 아주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매우 심각하다. 이것은 진짜 살인 협박이다. 경찰이나 FBI에 알리려면 알려라. 나는 그녀의 심장에 총을 겨눠 한 방에 끝낼 것이다. 그녀는 나를 너무 괴롭히고 있다.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고통을 겪고 있다.” 11월 26일, 다이애나 나폴리스는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결국 법정에 섰다.
법정에서 나폴리스는 담담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스필버그와 휴이트가 사이버트로닉 기술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포함한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기 위해 영화를 통해 심리적 조작을 한다는 것이 나폴리스의 주장이었다. 그녀는 스필버그가 자신의 뇌에 ‘소울 캐처’(soul catcher)로 불리는 마이크로칩을 이식했다며, 이 모든 것은 사탄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모든 주장에 대한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재판 과정을 통해 그녀의 이력도 드러났다. 1956년생인 다이애나 나폴리스는 결혼 및 가족 문제 카운슬링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심리 치료사로 일했다. 마지막 직장은 샌디에이고 카운티의 아동보호센터. 그곳에서 1996년까지 조사관으로 일하며 학대당한 아이들의 정신 치료를 했다. 그녀는 10여 년 동안 아동 학대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을 봐 왔고, 동시에 그런 짓을 저지른 어른들이 비난과 형벌을 피하기 위해 했던 수많은 사례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이 모든 일이 사탄의 음모라고 단정 지었다. 어쩌면 치료자라는 이름으로 겪어야 했던 수많은 끔찍한 폭력의 현실들이 그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의 스토킹은 6가지 중범죄가 결합된 행동이었고 최소 6년형을 선고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1년 동안의 정신 치료를 명령했고, 병원에서 나온 후 10년간 스필버그와 휴이트에게 접근금지 판결을 내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