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조폭마누라>의 한 장면. | ||
외간 남자에게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고, 남편에게 폭력까지 휘두른 ‘무서운’ 아내가 제기한 이혼소송에 대해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결혼 30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온 부부 사이. 산전수전을 겪은 이들 부부는 살림이 넉넉해지면서 아내의 외도로 파국을 맞았다. 강씨 부부가 결혼한 것은 지난 72년. 당시 부인 고씨는 을지로 S상가에 위치한 사우나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김씨는 같은 상가 분식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서로 자연스럽게 만나다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탓으로 결혼 후 1남1녀를 낳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특히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남편 강씨는 지난 76년부터 서울 종로구 소재 C식당의 주방장으로 근무하면서 착실히 돈을 모았다.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한 강씨는 2년 만에 자신이 일하던 C식당을 인수하는 쾌거를 올렸다. 강씨의 노력 덕분인지 식당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고씨도 남편을 도와 식당일에 열성을 다했다. 돈을 모은 강씨 부부는 결혼 10년 만인 지난 82년 서울 관악구에 조그만 건물을 매입해 C식당 분점을 내는 등 날로 사업을 번창시켰다.
강씨는 이어 90년에는 인근 건물도 매입해 세 번째 분점을 내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93년에는 당시 노른자위땅이었던 서초구 반포동 K아파트 한 채를 매입했다. 강씨 부부는 어느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강씨 부부 사이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인 고씨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던 것이다. 고씨는 가사와 양육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남편 강씨와 자녀에게 짜증을 내고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때렸다.
식당에서도 친구들을 불러모아 화투놀이로 하루종일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강씨는 울화통이 터졌지만 십 년이 넘도록 식당일과 아이를 키우는 데 지칠 대로 지친 아내를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씨의 탈선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고씨가 지난 99년 한 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상대는 당시 C신문사 사장인 김아무개씨. 고씨는 손님으로 식당을 자주 드나들던 그의 훤칠한 외모와 다정다감한 성격에 빠져 호텔 등에서 그와 정을 통하고 심지어 그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강씨는 아내의 외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엄마의 불륜 행각을 직접 목격하고 말았다. 지난 99년 6월과 2000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들이 안방에서 황급히 옷을 입고 뛰어나가는 김씨와 마주친 것이었다. 엄마에 대한 자녀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으나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부인 고씨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러나 한 번 돌아선 고씨의 마음은 좀처럼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다시 사태가 악화된 것은 내연관계에 있던 김씨의 사업이 IMF사태 이후 자금난에 빠지자 고씨에게 손을 벌린 때문이었다.
어느새 채무가 누적되고 변제가 불가능해지자 고씨는 특단의 조치에 나섰다. 빚 청산을 위해 고씨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이혼과 재산 분할 청구. 고씨의 요구는 위자료 1억원 및 자신이 진 빚의 일부를 갚아주고, 강씨 소유의 부동산 중 절반을 넘기라는 것이었다. 고씨는 이도 모자라 식당 계산대를 장악하고 식당 수입을 모두 가져갔다. 남편 강씨가 이를 제지하자 고씨는 노골적으로 강씨를 무시하며 폭행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막대기, 볼펜 등으로 폭행당해 이마와 다리 부분에 상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고씨의 횡포로 식당 물품 대금 채무가 누적되면서 종업원들의 임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자 자녀들과 상의한 끝에 식당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고씨는 폭력을 행사했다. 견디다 못한 강씨가 파출소에 신고를 했지만 “부부 쌍방 폭행은 남자가 불리하다”고 경찰이 조언하는 바람에 없던 일로 덮기로 했다. 그 후 고씨의 폭행은 더욱 악랄해졌다. 그녀는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조건 휘둘렀다. 남편 강씨는 고씨에게 맞아 팔, 손가락, 다리 등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씨는 더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피하기만 했다.
고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 8개월 동안 ‘적과의 동침’ 같은 생활을 해오던 강씨 부부에게 지난 9월3일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재판장 이강원 부장판사)는 “혼인 파탄의 책임은 식당은 물론, 가사와 양육을 등한시하면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폭행을 행사하고 불륜을 벌이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각을 저지른 고씨에게 있다”고 판결하면서 남편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고씨는 가족의 수입을 임의로 사용, 거액의 빚까지 졌음에도 불구하고 남편, 자녀들과의 관계 회복에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만큼 고씨의 변론과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사유를 덧붙였다.
그러나 고씨는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남편이 식당일을 돌보지 않고 외도를 일삼아 자신이 성병에 걸리기도 했다”며 “지난 85년부터 내가 식당 수입을 빼돌렸다고 의심하고 정신병 운운하며 나를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김씨와의 불륜 사실 여부에 대해서도 고씨는 “남편이 매도한 것이다. 오히려 남편이 내 친구인 이아무개와 몰래 만나 석연치 않은 관계를 맺어 왔다”고 강하게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