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온 김순심 씨(가명·여·86)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울의 한 주민자치센터를 찾은 것은 지난 2012년 11월이었다. 김 씨는 2006년 사망신고가 된 ‘김달순’(가명)의 이름과 호적이 본래 자신의 것이라며 원상회복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재혼 전 임 씨는 김 씨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왔다. 아직 어린 세 자녀들이 새엄마 밑에서 자란다고 바깥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으니 본래 이름인 ‘김달순’ 대신 죽은 전처의 ‘김순심’으로 살아달라는 것이었다. 임 씨의 간곡한 부탁에 김 씨는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김순심’으로 살게 됐다.
남편 전처의 이름으로 사는 인생이었지만 결혼생활은 평탄했다. 그러던 중 김 씨는 북한에서 온 여성이 남편 임 씨 친척 중 한 명과 사실혼 관계를 맺고 살고 있으면서도 호적이 없어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딱한 사연을 들은 김 씨는 그 여성에게 자신의 본래 이름인 ‘김달순’으로 살도록 허락했다.
김 씨는 남편과 사별한 1992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처의 이름으로 살았지만 죽기 전 언젠가는 본인의 이름을 찾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2012년 고령의 김 씨가 뒤늦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싶다며 동사무소를 찾은 데는 며느리의 도움이 컸다. 김 씨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56년을 살아왔다는 사연을 알게 된 김 씨의 며느리가 김 씨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본명을 찾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동사무소 측은 김 씨가 찾으려 하는 ‘김달순’의 호적이 사망신고가 되어있고 등록된 지문도 김 씨의 지문과는 다르다며 “주민등록 사망말소자에 대해서는 재등록이 안된다”는 처분을 내렸다.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될지도 모르는 ‘본명 찾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씨는 결국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소송을 의뢰했다.
재판부는 “제3자가 ‘김달순’의 주민등록을 도용하면서 자신의 지문을 등록한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피고인 동사무소 측은 김 씨의 지문을 새로 등록해 주민등록증 발급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며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80세가 넘은 노령의 나이에 거동이 힘든 상황에도 자신의 본래 이름을 찾고 싶어 하는 원고의 심정을 헤아려 분쟁을 해결하고자 많은 사람이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