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숨진 정종현 군의 생전 모습을 그린 그림. 출처=종현이와 환자안전법 홈페이지
2010년 5월 29일 새벽, 종현이 어머니 김영희 씨(여·39)는 아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 인사를 준비했다. 김 씨는 “많이 힘들었지?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웠어. 정말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아홉 살 종현이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냈다.
만화 <고스트바둑왕>을 좋아했던 종현이는 장래희망도 바둑기사였다. 여섯 살에 바둑을 시작한 종현이는 형들과의 대국에서도 밀리지 않아 ‘바둑신동’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매일 매일을 즐겁게 살자’가 좌우명이라 말했던 종현이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 씩씩한 아이었다.
종현이가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건 지난 2007년이었다. 다행히 종현이는 골수이식 없이 약물치료만으로 90% 이상 완치가 가능한 경우였다. 병과도 좋았다. 2010년 3월에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초등학교에 입학도 했다. 두 달 후인 5월이면 3년간 이어진 항암치료도 끝날 예정이었다. 완치를 앞둔 종현이는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2010년 5월 19일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마지막 주사를 맞은 종현이가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열이 40℃를 웃돌았지만 손발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후 다리부터 손가락 순으로 상행성 마비가 진행됐다. 24시간이 지나자 소변기능을 상실했다. 결국 종현이는 열흘 후인 2010년 5월 29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원 측은 사망 원인이 뇌수막염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종현이 아버지는 “주사가 잘못된 것 같다”며 부인 김 씨에게 부검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김 씨는 고통 속에서 떠난 아들에게 다시 칼을 댈 수 없어 종현이의 장례를 치렀다.
수많은 논문과 국내외 사례를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김 씨는 ‘빈크리스틴 사고’의 예후와 사망 전 종현이의 증상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항암제 빈크리스틴은 반드시 정맥으로 주사돼야 하는데 척수강 내에 잘못 주입될 경우 온몸의 신경이 손상되는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약물이었다. 빈크리스틴 사고 환자의 경우 소변이 막히고 마비가 진행되면서 7~10일 사이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빈크리스틴 사고를 겪은 아이들은 10일 이내에 사망했는데 종현이도 10일 만에 사망했다.
김 씨는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1만 명 문자청원운동을 전개해 국민적 공감을 이끌었다.
의료사고가 명백했다. 김 씨는 “마지막 치료를 앞두고 입원한 다음날 병원에서 외박을 허락할 정도로 종현이는 경과가 좋았다. 백혈병이 중한 것 만큼 항암치료 처음이나 중간단계서 사망했다면 죽음에 의문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종현이는 완치를 앞두고 마지막 치료단계에서 사망했다. 종현이가 떠난 후 인터넷에서 빈크리스틴 사고를 알게 됐는데 사망직전 종현이와 증상이 같았다. 종현이의 죽음이 빈크리스틴 사고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종현이가 떠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종현이라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의료사고임을 확신한 김 씨는 맨 먼저 종현이의 사망원인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씨는 2010년 9월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처벌을 원하지는 않았다. 주사를 놓은 의사의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다시는 종현이 같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나오지 않도록 병원이 환자안전시스템을 마련하기를 바랐다.
소송과정은 쉽지 않았다. 병원은 오히려 종현이 부모를 몰아세우며 ‘의료사고를 증명할 수 있으면 증명해 보라’며 사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종현이에게 마지막으로 주사를 놓았던 레지던트도 김 씨 앞에서 ‘나는 절대 주사를 잘못 놓지 않았다’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의료사고임을 뒷받침 해줄 전문의의 감정결과가 필요했지만 내로라하는 대학병원 의사들은 부담감에 대부분 거절했다.
하지만 김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 씨는 대구역에서 2010년부터 꾸준히 시위를 이어갔다. 2010년 10월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빈크리스틴 척수강 내 주사로 인한 의료사고 예방을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김 씨는 투약 매뉴얼을 만들고 지키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제2의 종현이’를 막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김 씨는 의료사고 예방을 위한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김 씨의 노력에 의료계 안팎에서 ‘종현이는 빈크리스틴 사고가 맞다’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정적으로 투약 오류가 의심된다는 병원 내부자의 증언도 확보됐다. 병원 내부자의 증언이 확보된 만큼 병원과 의사를 고소해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 형사처벌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병원과 의사를 고소하지 않기로 했다. 김 씨는 “고소를 할 경우 제보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 뻔했다”며 “또 다른 종현이가 나오지 않으려면 처벌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사를 잘못 놓은 의사가 있었지만 그것은 병원의 시스템으로 막았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환자를 위한 입법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종현이 엄마 김영희 씨. 사진출처=종현이와 환자안전법 홈페이지
결국 2년 뒤인 2012년 10월 병원 측은 사과를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대한의사협회의 도움이 컸다. 병원 측은 과실을 완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실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는 선에서 “본원은 어떠한 이유에도 아까운 한 생명의 죽음 앞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유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고 전해왔다. 종현이가 마지막으로 주사를 맞았던 병원 처치실에는 종현이의 사진과 함께 ‘백혈병치료를 하다가 사망을 했고 우리는 이 사람을 기억하겠다’는 액자가 걸렸다.
2년 만에 얻어낸 병원의 사과였다. 하지만 종현이 어머니 김 씨는 의료사고 환자를 위한 안전법 제정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종현이가 사망하기 전 발생한 3건의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사건들은 유족과 병원이 합의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정보들은 다른 병원들과 공유되지 않았고 예방 차원의 자료로도 사용되지 못했다. 김 씨가 병원의 사과를 받아내고도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김 씨는 운영하던 수학교습소도 정리하고 2012년 8월 18일부터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1만 명 문자청원운동’ 등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대구와 서울을 수차례 오가며 토론회와 전문가 간담회 등을 주최했다. 김 씨는 “문자로 서명 받는 문자청원이 생소한 방법이라 신종 스미싱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환자안전법은 환자안전위원회 운영비 등 들어갈 예산도 만만치 않아 의료계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 의료진의 실수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한 국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며 환자안전법 제정이 곧 예산을 아끼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 씨는 1만 2000여 명의 문자서명을 받아냈다. 이러한 국민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김 씨는 2014년 4월 9일 국회에 환자안전법 제정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각각 ‘환자안전법’을 대표 발의했고 지난 2014년 12월 29일 일명 ‘종현이법’인 환자안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종현이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7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된 환자안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 국회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 씨는 눈물을 훔쳤다. 종현이를 떠나보내고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달려온 1700여 일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김 씨는 “종현이법으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종현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며 “종현이에게 ‘네 죽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고맙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종현이법’이란 의료사고 보고체계 마련…‘생명의 법’ 기대 2010년 의료사고로 숨진 종현이의 이름을 따 ‘종현이법’으로 불리게 된 환자안전법은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한 달 안에 국가환자안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환자의 안전을 권리로 보장하는 내용이다. 의료사고의 경우 유가족과 합의를 하거나 외부에 철저히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아 정보를 모으고 그를 토대로 예방자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환자안전법은 환자와 관련한 안전사고나 이 사실을 알게 된 보건의료인 및 환자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자율적으로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자율적으로 보고하되 이를 토대로 사고원인을 분석하고 예방방법을 마련해 전국 의료진에게 알려 의료사고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환자안전법 원안은 ‘의무보고’와 이를 어길 때 제재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의료계의 반발과 법률의 연착륙을 위해 ‘자율보고’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의료진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환자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적발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보고하라는 내용이다. 대신 보고한 정보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주고 형사처분도 받지 않도록 하게 되어있다. 이렇게까지 보호해주는 이유는 의료사고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다”며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환자안전법은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살리는 ‘생명의 법’으로 앞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