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교수 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된 현장인 서울 강남의 교수 자택. 경찰은 아직 범인의 윤곽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주변인물 모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
피살자 나이: 남편 73세, 부인 68세
피살자 직업: S여대 명예교수
사건 추정시간: 9월23일 밤
피살상황: 둔기에 의한 두개골 함몰
피살자 가족관계: 2남3녀
수사상황: 범인 오리무중
유명 대학 노교수 부부 피살 사건이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도록 경찰이 범인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시간이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범행수법이 잔인한 것으로 미뤄 당초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추정됐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전문범이 아닌 쪽으로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는 등 경찰 수사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사건의 수사가 장기화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자칫 미제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강남경찰서는 수사가 답보상태에 빠지자 상당히 당혹해하고 있다. 강력 7개반과 형사 4개반이 특별수사대를 편성해 놓고 철야 수사까지 벌이고 있으나 지금까지 용의자의 윤곽을 압축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9월23일 밤(경찰 추정). S여대 약대 이아무개 명예교수 부부가 이날 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자택 안방에서 잔인하게 피살된 채 발견됐다. 경찰이 이 교수 부부가 피살된 시간을 지난 9월23일 밤으로 추정하는 것은 이 교수 부인인 이아무개씨가 지난 9월23일 오전 셋째 딸과 통화를 했고, 당일 오전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백화점 영수증이 나온 점, 그리고 사건 이튿날인 9월24일 조간신문이 그대로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점 때문이다.
이 교수 부부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둘째아들이었다. 부모의 시신을 처음 목격한 아들 이씨의 당시 상황 설명. “이날(9월24일)이 아버님 생신이라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받지 않아 이날 밤 10시께 집에 들렀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었고,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두들겨도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가보니 안방에 부모님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이씨는 부모의 시신을 확인한 뒤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강남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은 즉시 사건현장에 출동해 시신을 보존하는 한편 사건 현장 보안에 들어갔다. 당시 사건 현장을 수사한 강남경찰서 강력반 소속 형사의 말.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밤 10시20분경이었다. 현장은 방 중앙에 피에 흥건히 젖은 부부의 시체가 나란히 누워 있었고, 비교적 현장 은 깨끗했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이 교수는 러닝셔츠와 골프 반바지 차림으로, 부인은 속옷 차림이었다는 것. 두 사람의 직접적인 사인은 똑같이 두개골 함몰에 의한 과다 출혈.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1차 부검 결과 이 교수는 왼쪽 관자놀이 부분이 심하게 함몰되고 머리 뒷부분이 찢겨져 있었으며, 부인 역시 두개골 좌우가 함몰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경찰은 이 교수 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된 점에 미뤄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했다. 특히 안방에 있던 장롱 등이 열렸던 흔적은 있으나 현금 2백80여만원 등 귀중품이 그대로 있어 원한에 의한 살인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의 수사는 범행동기에 대한 당초의 추정(원한관계)을 확신하지 못한 채 가족내부의 문제, 원한살인, 단순 강도살인 등 다각도로 분산되고 있다. 그나마 사건해결의 실마리로 기대되었던 현장 지문이나 발자국 등이 대부분 이 교수 부부의 것으로 드러나 경찰을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면 범인은 누구일까. 사건 발생 보름을 넘기면서 이 사건의 범인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새삼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피살된 이 교수가 여대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사회 저명 인사인 데다, 보유재산만 1천억원대에 이르는 거부로 알려진 때문이다.
현재 경찰은 앞서 지적한 대로 단순한 강도살인,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 재산을 노린 가족내부인의 소행 등 크게 세 갈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단순강도
경찰이 가장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는 부분. 단순 강도라면 장롱속에 있던 현금이나 귀중품 등을 그대로 두고 갔을 리 없고, 집에 침입했다는 흔적 등도 찾기 어려워 정황상 이 부분은 수사에서 거의 배제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 현장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6개 지문과 장롱에 묻은 손바닥은 모두 사망한 이씨 부부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마루에 묻은 구두 족적도 사건 다음날인 지난 9월24일 집으로 찾아온 둘째아들의 것으로 판명났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3개의 찻잔에서도 별다른 이상 징후를 찾아내지 못한 상태. 이씨의 부인 손에서 발견된 7개의 머리카락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밀 감식중이다. 경찰은 이 머리카락의 분석 결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까지도 경찰은 연일 현장을 수색, 단서가 될 만한 증거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 교수의 부동산 소유 내역과 은행 계좌 역시 추적 작업을 벌였으나 사건과 관련된 혐의점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면식범 소행
현재 경찰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수사를 하고 있는 부분. 경찰은 이씨의 주변 인물 모두를 용의자 선상에 올려 놓고 비밀리에 극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30일 이후 단 한번도 언론에 이 사건의 조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만큼 경찰은 철저하게 외부 보안을 유지한 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측은 이씨 부인의 손에 있던 머리카락의 DNA감식 결과가 나오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쯤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취재기자들 사이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무기한 엠바고(보도자제)를 설정해 놓고 있을 만큼 이번 사건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경찰은 이씨 부부가 잠옷 차림에 차를 마신 흔적도 있고 특히 부인 이씨의 손에 머리카락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부부를 익히 아는 사람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가족과 주변인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일단 재산을 노린 면식범의 범행이라는 점에는 경찰이나 가족들도 이견이 없다. 이 교수가 시가 20억원이 넘는 자택에 24억원 상당의 강원랜드 주식과 원주, 횡성, 청주 등에 임야를 소유한 재력가라는 점이 이 같은 추정의 근거.
이 교수가 막대한 재력가임을 아는 범인이 재산을 노리고 이씨에게 접근, 뜻이 이뤄지지 않자 살해한 것이라는 추정인 것이다. 물론 그 같은 일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냐는 점에 대해서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내부소행
경찰에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일단 경찰은 사건이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 9월23일 밤 동안 이 교수의 두 아들과 세 딸은 모두 각자 집이나 직장에 있었던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 사건에 직계 자식들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는 것이다.
경찰측은 의사인 두 아들과 약사인 딸의 지난 9월23일 진료 기록과 통화 내역을 공개해 달라는 기자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수사에서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이 교수 직계가족을 포함해 모든 친인척의 알리바이를 최종 점검중이다. 이 교수가 막대한 재력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친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 때문. 이 사건의 범행동기가 단순 강도사건이 아니라 재산을 노린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경찰 및 가족의 공통된 판단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이씨가 1천억대 이상의 재력가라는 점과 최근 들어 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자주 표현했다는 주위의 증언. 특히 사회기부 의사를 이 교수가 평소에도 자주 가족들에게 표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로 인해 피해를 볼 사람이 누구냐는 점도 이번 사건의 해결에 주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게 경찰 주변의 얘기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교수가 평소 사회기부를 위해 친한 사람들과 논의해 왔으며, 이날 밤에도 이와 관련된 인물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고,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도 오간다. 실제 경찰은 이 교수의 다섯 자녀들은 물론, 7급 공무원인 이 교수의 남동생 등 직계뿐 아니라 이 교수를 잘 아는 친척, 친구 등 주변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