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이 영화평론가 허지웅이 <국제시장>을 두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한 허지웅의 반박과 TV조선 측의 재반박이 이어지는 등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국제시장> 포스터와 허지웅 트위터.
지난 2014년 대한민국은 영화 <변호인>이 열고 영화 <국제시장>이 닫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호인>이 2014년 첫 1000만 영화로 등극했고 <국제시장>은 500만 관객을 달성한 후 해를 넘겼다. 지금의 흥행 추세라면 1000만 영화 대열 합류가 무난할 전망이다.
2014년 1000만 고지를 넘은 한국 영화는 <변호인>과 <명량>, 두 편이다. 여기에 <국제시장>이 더해진다면 영화 세 편으로 모은 관객이 무려 4000만 명이 넘는 셈이다. 여기에 IPTV와 DVD 등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수요자까지 감안한다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세 영화 중 한 편은 봤다는 단순 계산이 가능하다.
1000만 영화에는 대부분 사회적 의미와 뒤따랐다. 첫 1000만 영화인 <실미도>는 북파공작원, <왕의 얼굴>은 동성애, <괴물>은 반미 등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이슈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슈를 뛰어넘는 정서는 보수 대 진보, 여당과 야당, 영남 대 호남 등의 이념 논쟁이다. <변호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측면에서 진보 진영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개봉 초기에는 영화가 특정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노무현 지지층의 결집은 <변호인>의 흥행을 이끌었다. 출연진 역시 1000만 고지를 밟은 후 2014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현 여당 측은 <변호인>의 인기와 대중의 지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제시장>은 일종의 반격의 기회가 됐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국제시장>은 아버지 세대가 일군 대한민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광부와 간호사 파독, 베트남전 참전, 이산가족 상봉, 계획적 경제발전 등을 다루며 당시의 시대상을 이야기한다. <국제시장>은 그 시대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많은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모으고 있고, 영화를 본 이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호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허지웅은 <국제시장>에 대해 “머리를 잘 썼다.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 수준까지만 해도 괜찮다. 그런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다.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다.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라고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이 그의 발언을 문제 삼자 허지웅은 “남조선 인민공화국 국영 방송 TV조선이 오늘은 또 전파 낭비의 어느 새 지평을 열었을까. 하지도 않은 말에 사진을 붙였다”며 “<국제시장>의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TV조선 김미선 기자는 자신의 SNS를 통해 “‘글쓰는 사람’이라면 대중을 ‘난독증 환자’로 몰아붙이면 안 된다”면서 “허지웅이 발언한 부분 중 싱글 쿼트 안에 있는 문장은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베트남에서 폭발 사고를 당한 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한다. 이걸 어떻게 ‘이런 영화가 토 나온다’고 말한 게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나?”라고 재반박했다.
이런 논쟁은 건강한 평론 대 평론을 넘어 색깔 논쟁으로 옮아가는 분위기다. 그가 광주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문제 삼는 네티즌까지 등장했고 허지웅은 “광주 출신이라 <변호인>은 빨고 <국제시장>은 깐다는데 0. 사실상 서울 토박이고 1. 프로필 놔두는 건 니들 꼴보기 싫어서고 2. <변호인> 빨긴커녕 당시 깠다고 욕먹었고 3. <국제시장>을 선전영화로 소비하는 니들을 까는 거고 4. 난 당신들 중 누구 편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논쟁은 최근 통합진보당 해산 등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과열되는 양상이다. 게다가 새정치민주연합 유력 당권 주자인 문재인 의원이 성탄절을 앞둔 24일 <국제시장>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선택한 것이 기사화되면서 <국제시장>을 더욱 보수 영화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문 의원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바른 지도자상을 다룬 영화 <광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의 관련자들과 함께 <변호인>을 관람하기도 했다.
정작 중요한 건 <국제시장>을 만든 윤제균 감독의 의중이다. 이 영화는 윤 감독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한 영화다. 극중 주인공 덕수와 영자는 실제 윤 감독의 부모님 성함이다. 이 영화의 언론 시사회가 끝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윤 감독은 이 사실을 언급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기도 했다.
게다가 윤제균 감독은 <국제시장>과 정치 이념의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고 디자이너 앙드레김, 가수 남진, 씨름선수 이만기 등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며 빼놓을 수 있는 인물들을 거론했지만 정치인이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영화가 정치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뺐다. 그 외에 경제, 사회, 문화 방면에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을 뽑았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윤 감독의 이런 연출 의도와는 관계없이 <국제시장>은 보수 영화로 분류되는 분위기다. 이런 논쟁이 영화의 흥행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질이 호도되는 것은 옳지 않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윤 감독의 성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국제시장>이 보수적 정치 성향을 보인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며 빼놓을 수 없는 소재를 차용했을 뿐”이라며 “연출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영화가 이념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지는 것은 불편하다”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