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박상열 코치와 미시모토 코치가 정광운 투수에게 투구 동작 등을 조언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은 통역사.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코치는 어떤 일을 하나
수석코치는 코치들의 주장 격이다. 감독의 ‘오른팔’이기도 하다. 감독들이 새 팀에 부임할 때는 기존 코치들과 자신이 영입한 인사들을 적절히 배합하는데, 수석코치 인선만큼은 구단이 전적으로 감독의 의사에 맡긴다. 한 지방구단은 성적이 안 나는 감독을 경질하기 전에 수석코치를 교체했다가 불화설에 기름만 붓고 “감독의 손발을 잘랐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A 코치는 “수석코치는 기본적으로 감독과 코치들,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전달자 역할을 한다. 감독이 하나하나 직접 지시하지 못하는 사항을 대신 전해준다”며 “코치들이나 선수들에게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때도 수석코치를 통해 감독에게 보고한다”고 설명했다.
투수코치와 타격코치는 코치진의 양 기둥이다. 가장 임무가 막중하고, 그만큼 욕먹을 일도 많다. 투수코치는 투수들 전체의 로테이션과 등판 순서, 투구수 등을 관리하고 때로는 경기 중 투수교체에도 목소리를 낸다. 투수들이 기술적인 갈증을 느낄 때 가장 먼저 상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타격코치 역시 타자들 전체의 컨디션을 살펴 매 경기 감독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선수가 직접 발견하기 어려운 타격의 문제점을 함께 해결해 나간다. A 코치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감독이 선수 교체의 전권을 쥐고 있는 일이 많아서 투수코치나 타격코치가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크지 않다”면서도 “다만 감독님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하고 올바른 메뉴를 제시하는 게 투·타 코치의 역할이다. 머리 속에 축적된 데이터가 많아야 한다”고 했다.
수비코치는 대부분 내야 수비코치들을 통칭한다. 최근에는 내야와 외야 수비코치를 따로 두는 팀들도 많은데, 외야 수비코치들은 대부분 작전이나 주루 코치를 겸업한다. 투수코치와 타격코치는 경기 도중 주로 더그아웃에서 감독 곁을 지키지만, 작전과 주루 코치들은 1루와 3루를 지키면서 벤치의 사인을 전달하고 선수들을 독려한다. 배터리 코치는 당연히 포수 출신 지도자들이 맡아 포수들을 관리한다. 불펜 코치는 투수코치를 보조하는 역할. 경기 때 불펜에서 감독이나 투수코치의 지시에 따라 투수들을 적절하게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B 코치는 “투수와 타격 이외의 코치들은 대부분 기술적인 부분을 서포트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며 “코치는 잘 하면 빛이 별로 안 나지만 잘 못 하면 티가 나는 한시적인 자리다. 최대한 열정을 쏟아 부어야 코치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산 선수들에게 훈련 내용을 설명하는 전형도 코치.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코치는 선수를 어떻게 다루나
코치는 감독과 선수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다. 그만큼 선수들과의 긴밀한 스킨십이 중요하다. B 코치는 “솔직히 말하면 팀의 10승 투수나 3할 타자는 코치들과의 관계가 덜 바쁘다. 코치들은 그 외의 선수들, 그러니까 10승을 못 해본 투수나 3할을 쳐보지 않은 타자들에게 필요한 존재인 것 같다”며 “선수들마다 특성이 다 달라서 각기 다른 조언이 필요할 때가 많다. 코치들이 그 부분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연애를 하듯 ‘밀고 당기기’도 필요하다. C 감독은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코치가 성질대로 다 질러버리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 물론 꾸짖을 때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아부’하면서 구슬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작은 부상에도 드러눕는 선수들을 보면서 ‘내가 너만할 땐 그것보다 더한 것도 참고 뛰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선수가 경기 때 최대한 편한 마음으로 나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참기도 했다”는 얘기다. C 감독은 “평소 최대한 선수의 개인사에 귀를 기울이면서 상담해주는 것도 선수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1군이냐 2군이냐에 따라 선수를 관리하는 방향도 다르다. 1군 코치는 선수가 실전에서 제 기량을 발휘해 승리에 도움이 되도록 전의를 북돋우고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반면 2군 코치는 선수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언제든 1군으로 올려 보낼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많은 코치들이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1군과 2군, 재활군까지 두루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어느 위치에서든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의 ‘멘탈’을 살피는 일이다. 야구는 ‘멘탈 게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앞서의 A 코치는 “한국 야구는 선수 자원이 부족해 ‘즉시 전력’을 만들어 내는 데 코치의 역량을 집중한다. 빨리 선수를 키워서 빨리 실전에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며 “하지만 아무리 훈련 때나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도 정신적인 면에서 준비가 안 되면 1군 경기에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B 코치 역시 “상대와 맞붙어서 이기기 위해서는 대단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실력과 잠재력이 갖춰졌어도 경기 때 찾아오는 중압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며 “메이저리그처럼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분이 구단에 상주한다면, 코치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D 코치는 “경험이 많은 코치일수록 투구폼이나 타격 메커니즘보다 심리적인 부분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타격 훈련을 지도하고 있는 장원진 코치.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코치와 선수의 관계가 운명 가른다
코치와 선수는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선수는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옳은 길로 이끄는 코치를 만났을 때 날개를 달 수 있다. 반대로 코치는 실력과 성실성을 모두 갖춘 선수와 함께 동반 상승하면서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E 선수는 “투수에게는 투수코치, 타자에게는 타격코치와의 호흡이 무척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선수 생활의 중요한 시기를 고생만 하며 흘려보낼 수 있다”고 했다. 선수에 대한 코치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선수들이 가장 잘 안다. E 선수는 “훈련을 많이 시키거나 엄하게 대하는 코치님이 악명이 높은 게 아니다. 정말 나를 생각해서 시키는 훈련은 선수도 고마워한다. 반대로 감독님이나 구단 관계자들 눈앞에서 보여주기 식으로 열심히 하는 척하는 코치님은 선수들도 바로 알아 본다”고 귀띔했다.
모든 선수에게 무작정 똑같은 이론을 강요하는 코치들도 기피 대상. 그러나 때로는 코치들에게도 남모를 사정이 있다. 앞서의 D 코치는 “우리가 보기에도 코치 일을 비즈니스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단에 1년씩 계약직으로 고용되는 입장이니 ‘정치 코치’라는 말도 듣는다”며 “그래도 코치의 보람은 어쨌든 선수다. 선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서 보람을 찾는 좋은 코치들도 많다.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어떤 선배 코치를 만나 무엇을 보고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외국인 코치 전성시대 득실 말은 안 통해도 전문성 ‘한수 위’ 10구단 체제로 출발하는 2015년 프로야구. 외국인 코치도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현재까지 공식 발표된 숫자만 해도 두 자릿수를 넘어선다. 김성근 감독이 새로 부임한 한화가 무려 다섯 명을 보유하고 있다. 김 감독과 고양 원더스부터 함께 했던 아베 오사무 타격코치와 SK 시절 함께 일했던 쇼다 고조 타격코치는 물론, 니시모토 다카시 투수코치, 후루쿠보 겐지 배터리코치, 다테이시 마쓰오 수비코치가 일본에서 새로 왔다. 신생구단 kt도 원더스 코치였던 이시미네 가즈히코 코치가 1군 타격을 지도한다. SK는 역대 최초로 일본인인 세이케 마사카즈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임명했다. 역대 최장수 외국인 코치인 미국인 조 알바레즈 코치도 올해 다시 SK로 돌아왔다. KIA는 하세베 유타카 배터리코치가 SK로 떠나자 지바 롯데에서 나카무라 다케시 배터리코치를 데려와 빈 자리를 채웠다. 코치들의 경력도 화려하다. 한화의 니시모토 코치는 현역 통산 165승을 올린 요미우리 에이스였다. kt 이시미네 코치도 일본 프로야구 타점왕 출신이다. 그야말로 외국인 코치 전성시대다. 한화 쇼다 코조 타격코치가 선수들에게 번트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초창기인 1980년대부터 외국인 코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수가 매우 적었다. 최초의 외국인 코치는 실업야구 시대부터 인연을 맺은 도이 쇼스케.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아마추어 롯데 코치로 김동엽, 박영길 감독을 보좌했다. 1984년부터는 프로 롯데 수석코치직을 맡았다. 1990년 김진영 감독이 해고된 뒤에는 감독대행으로 24경기의 지휘봉을 잡고 8승1무15패의 전적을 올리기도 했다. 총 6년간 한국 야구 코치로 활약했다. 도이 코치에 이어 1985년 OB가 사노 요시유키 수석코치, 1986년 MBC가 미즈다니 노부히사 투수코치를 각각 영입해 2년씩 선수 지도를 맡겼다. 1990년에는 삼성이 최초로 미국인 지도자인 고든 마티 코치와 계약했다. 1991년에는 앞서 언급한 알바레스 코치가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다. 알바레스 코치는 쌍방울(1991~1992년)에 이어 롯데(1993~1996년), LG(1997~1998년)를 거친 뒤 2012년 SK의 부름을 받고 1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해에는 잠시 멕시칸리그에 몸담았다가 올해 다시 SK로 복귀했다. 1990년대에도 일본인 코치들은 꾸준히 한두 명씩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외국인 코치의 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건 김성근 감독이 다시 SK 지휘봉을 잡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선동열 감독도 삼성과 KIA 사령탑 시절 일본인 투수코치와 트레이닝코치를 선호했다. 물론 외국인 코치에 대한 야구계의 입장은 여전히 엇갈린다. 과거 외국인 코치들은 국내 야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마티 코치는 국내에 투심패스트볼과 파워커브를 전수한 인물로 꼽힌다. 김성근 감독은 “일본 코치들은 전문가가 많다. 같은 투수코치라도 잘 가르치는 분야가 세분화돼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지도자들은 “한국 야구 수준도 이제 많이 올라왔다. 선수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에는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인 코치들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는 국내 지도자 육성이 절실한 시기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야구 세계화의 시대에 무작정 “외국인 코치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 야구계에서 “용병 제도처럼 외국인 코치도 팀마다 보유 한도를 주자”는 주장까지 나온 이유다. [은] |
무엇이 코치를 힘들게 하나 언제 목줄이 날아갈지… 프로 선수들은 성적이 곧 몸값이다. 그러나 코치들은 그렇지 않다. 연봉이 5억 원이던 스타플레이어도, 연봉이 5000만 원이던 백업 선수도, 은퇴 후 ‘코치’라는 직업을 갖게 되는 순간 다시 같은 출발선에 선다. 코치들에게는 연봉 협상이 없다. 정해진 금액을 초봉으로 받고, 성과에 관계없이 공무원처럼 일정액이 인상된다. A 코치는 “코치 초봉은 예전에는 4000만~4500만 원, 요즘에는 조금 올라서 5000만 원 정도다. 이후에는 팀 재정 상태나 팀 성적에 따라 500만 원 단위, 많아야 1000만 원 단위로 일정하게 오른다”고 했다. 프로야구 신인 기본 연봉은 2400만 원이지만, 1군에서 뛰는 선수들은 수당으로 5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는다. 코치들의 몸값은 사실상 1군 선수들의 최저 연봉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자리마저 오래 보장되는 게 아니다. 코치는 1년씩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이다. 4대 보험 혜택도 없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운명도 달라지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경질돼도 문제 삼을 수 없다. 팀 성적이 안 좋기라도 하면 ‘분위기 쇄신’이라는 명목으로 가장 먼저 ‘보직 이동’이라는 화살도 맞는다. 코치들은 대부분 특정 감독의 거취에 변동이 생길 때마다 함께 움직이는 ‘사단형 코치’들과 선수 시절 간판스타로 군림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구단에 남아 지도자 생활을 하는 ‘프랜차이즈 코치’들로 나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유형의 코치들도 거취를 안심할 수 없다. D 야구관계자는 “코치들도 매년 자기 자리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멀리 내다보고 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며 “일부 코치들이 이 감독, 저 감독에게 ‘줄 서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매년 “쓸 만한 코치가 없다”, “코치가 부족하다”는 한탄만 할 뿐, 좋은 코치를 육성하고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