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범죄집단을 흉내낸 여중고생들의 폭력서클 이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 사진은 폭력행위로 붙잡힌 여학생들. | ||
경찰도 최근 단속한 폭력서클 중 절반이 여학생 조직이라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학생들의 폭력은 집단 따돌림, 단순 폭행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행태에서 벗어나 세력과 세력의 다툼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히 일부 여학생 폭력 서클의 경우 집단 성매매에 나서는 한편 지역 전문 범죄 조직에 가담하는 ‘예비 조폭’ 서클도 상당한 수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 9일 경기도 이천경찰서에 폭력 혐의로 붙잡힌 34명의 여학생들은 아직 얼굴에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열여섯 살의 고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경기도 이천, 여주 지역 동창생들이었다. 이들은 경기도 이천과 여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조직한 폭력서클의 멤버로 지난 8월 이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집단 패싸움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친목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안에서 폭력서클을 조직했다. 여주 학생들의 커뮤니티는 ‘양태패거리’, 이천 학생들은 ‘이쁑빠슝(예쁘게 옷을 입는 여학생들의 모임)’이라는 커뮤니티명으로 학생들을 모아 세를 불렸다. 이들 커뮤니티 가입자수는 무려 1천 명이 넘을 정도. 그 중 운영자를 포함한 15∼20여 명 정도가 조직을 이끌어왔다.
두 조직이 맞붙게된 사연과 패싸움 과정은 실제 전문 폭력 조직에게서나 볼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게 경찰의 전언. 양측의 충돌은 이천 ‘이쁑빠슝’ 회원이 여주에 놀러갔다가 여주 ‘양태패거리’ 조직원들에게 흠뻑 두들겨 맞고 온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자존심이 상한 ‘이쁑빠슝’은 복수를 위해 조직원들을 모아 ‘양태패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흥분한 이천 조직원들이 행동을 개시한 것은 지난 8월11일 오후. ‘이쁑빠슝’ 조직원들이 여주군 홍문리의 한 PC방을 찾아가 여주 ‘양태패거리’의 조직원이었던 김아무개양(16)을 납치했다. ‘이쁑빠슝’ 조직원들은 김양을 이천행 좌석버스에 태워 이천 ‘홈그라운드’까지 끌고 갔다. ‘이쁑빠슝’은 여주 ‘양태패거리’에 “너희 조직원을 볼모로 삼고 있으니 이천으로 찾아와 무릎을 꿇어라”고 제안했고 이에 ‘양태패거리’가 그날 저녁 이천으로 찾아가 양측 40여 명이 집단으로 패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이처럼 최근 여학생 폭력조직이 대형화하면서 전문 범죄 조직의 행태를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서너 명이 소규모로 뭉쳐 또래 친구들의 주머닛돈이나 뺏는 차원이 아닌 것. 조직 관리도 철저하다. 같은 나이지만 두목격인 ‘짱’이 있고 부두목, 행동대장 등 서열의 상하 관계가 전문 폭력조직만큼 엄격하다. 학교 내에서도 윗 서열에게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폭력도 과격해지고 잔혹해졌다. 단순히 꼬집고 물어뜯고 따귀를 때리는 것은 고전 수법이 돼버렸다. 요즘엔 쇠파이프는 물론, 칼까지 사용하는 여학생들도 있다. 캔음료에서 뚜껑을 떼내어 손가락에 낀 다음 무차별 안면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S여중에서는 폭력서클 조직원으로부터 구타당한 허아무개양(14)의 어머니 조아무개씨(42)가 가해학생들을 나무라자 이에 앙심을 품은 조직원들이 재차 허양을 불러내 쇠파이프, 각목 등으로 내려쳐 허양의 얼굴 전체 뼈가 함몰된 적이 있다.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7월24일 구속된 여중생 강아무개양(14) 등 세 명은 친구가 생일 파티 후 청소를 하지 않고 평소 거짓말을 자주 했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해 친구를 숨지게 한 바 있다. 폭력서클이라는 사실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조직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실제 폭력조직의 명칭을 따 붙이기도 한다. 경남 K여상의 한 서클의 이름은 ‘양언니파’. 한때 국내 최대 규모의 폭력조직이었던 ‘양은이파’를 모방한 것이다. 일부 폭력서클 여학생은 “전문 폭력조직이 내 뒤를 봐주고 있다”며 동료 친구들과 부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사례도 있다.
전문 범죄조직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폭력만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그룹으로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며 조직원 전원이 수업을 마친 뒤 유흥업소로 출근하는 서클도 있다. 남자 폭력배와 합세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을 ‘앵벌이’로 내세우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지난 7월 경찰에 붙잡힌 서울 S여고 이아무개양(16) 등 여학생 세 명은 H고 김아무개군(16)과 짜고 학교 여학생들을 상습 폭행하며 지하철 등에서 승객에게 돈을 받아 오게 했다. 게다가 이아무개양 등은 친구에게 술을 먹인 뒤 김아무개군에게 ‘일’을 도와준 대가로 친구의 몸을 탐할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주기까지 했다.
이제 여학생들의 폭력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학교측에서도 학급 편성시 폭력서클에 가입된 여학생들을 각 반으로 분산시키는 등 학교 내에서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고 있으나 여전히 휴식 공간과 매점 등을 독점하면서 세를 불려 나가고 있다. 이미 2001년 청소년보호위원회 학교 폭력 조사에서 여중생의 폭력 경험이 남학생보다 높게 나타난 것처럼 여학생들의 일탈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여학생들의 폭력이 남자보다 더욱 잔인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관계자는 “또래 남학생들에 비해 심리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여학생들이 성인들의 폭력을 더욱 정교하게 모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여학생들이 전문 범죄조직을 흉내내기도 하지만 일부 서클은 범죄조직에 흡수되는 경우도 있다”며 “대형 강도나 살인 사건에 어린 여학생들이 연루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