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삼성동에서 납치된 하양은 살해된 뒤 경기 도 하남의 검단산 등산로 부근에서 발견됐다. | ||
이윽고 이 부장판사는 준엄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내려 갔다. “장모 윤아무개씨 무기징역, 조카 윤씨와 그의 친구 김아무개씨 징역 20년….” 순간 법정에는 긴 탄식과 울음소리가 흘렀다.
이날 이 법정에서 내려진 판결은 지난 2002년 3월 발생한 E여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하아무개양 피살사건과 관련된 피의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사건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살해 용의자 선상에 하양의 이종사촌 오빠인 현직 판사와 이 판사의 장모가 오른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1년6개월에 걸친 장기 수사 끝에 현직 판사인 K씨의 장모가 윤아무개씨 등 2명에게 하양 살해를 사주한 것으로 경찰과 검찰은 결론짓고 기소했다. 이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도 경찰과 검찰의 기소 내용을 대부분 인정하고 K판사의 장모 윤아무개씨에게 무기징역을, 공범 윤아무개씨 등에게는 각각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1심 판결 후 검찰과 피고인측이 모두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특히 장모 윤씨의 변호인측은 “사건의 정확한 진실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며 1심 판결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아직도 이 사건을 둘러싼 의문들은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1심 판결에서 드러난 이 사건의 의문점은 무엇이고, 또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관련자들을 상대로 다시 한 번 이 사건의 의문점과 핵심을 정리해본다.
▲ 범인들이 하양을 승합차로 납치하는 순간이 찍힌 아파트의 CCTV. | ||
법원의 판결문에 따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장모 윤씨가 사위 K씨와 하양 사이를 처음으로 의심한 것은 지난 99년 11월. 낯선 여자로부터 K씨와 하양이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화를 받은 후였다. 기자가 추적한 결과로는 전화를 건 정체불명의 여인은 K씨가 장모 윤씨의 딸 A씨와 결혼하기 전 6개월간 동거했던 김아무개씨였다.
윤씨가 본격적으로 하양의 뒤를 밟기 시작한 것은 사위 K씨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우연히 사위의 휴대폰 통화를 엿들은 윤씨가 누구인지를 따져 묻자 K씨가 다른 여자와 통화를 했음에도 “하양과 통화했다”고 말해버린 것. 결국 의심이 더욱 커진 윤씨는 조카 윤씨에게 하양의 집과 인상착의 등을 알려주며 미행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윤씨는 2001년 9월까지 하양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추적했다. 직접 자신이 미행에 나서기도 했으며 미행자들에게 하양의 행적이나 구체적인 행동요령까지 알려줬다. 심지어 미행자들이 자신의 지시사항을 똑바로 이행하는지 감시하기도 했다. 특히 하양 미행자 중엔 일선 경찰관도 있었다.
하양 가족들도 미행을 눈치채고 윤씨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 하양의 부친은 지난 2001년 4월 윤씨를 상대로 법원에 “윤씨 또는 제3자가 하양을 미행해서는 안되며 하양 근처 50m 이내 접근을 금한다”는 접근금지가처분 소송을 냈으며, 법원은 하양측 손을 들어줬다.
이에 앙심을 품은 윤씨는 하양과 사위의 불륜관계 증거를 잡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특히 아들의 컴퓨터와 자신의 방 VTR 사이에 영상전송장치를 연결, 가끔씩 집에 들렀던 K씨가 아들의 컴퓨터를 이용해 하양과 이메일을 교환하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씨는 아무런 물증을 잡아내지 못했다. 결국 윤씨는 딸의 행복을 위해서 하양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윤씨는 2001년 8월 강남 청담동 부근 차 안에서 조카 윤씨에게 살해를 지시했다. 조카 윤씨는 고교 동창인 김아무개씨를 포섭하고, 장모 윤씨는 김씨에게 살해대가로 1억7천5백만원을 지불하기로 합의하고 착수금조로 5천만원을 건넸다.
▲ 하양이 생전에 지내던 방.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둔 딸의 방을 하양의 아버지가 둘러보고 있다. | ||
다급해진 윤씨는 이들을 더욱 재촉했다. 추적을 당하지 않으려고 타인 명의로 개설한 세 대의 휴대폰과 공중전화 등을 이용, 조카에게 “왜 죽이지 않느냐. 돈을 도로 내놓든지 아니면 김씨를 독촉해 하루빨리 살해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에 김씨는 2002년 2월9일 인천 H총포사에서 공기총 1발과 실탄 2백 발, 2월25일 서울 목동 부근에서 쌀포대, 노끈 등을 구입해 본격적으로 살해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중 장모 윤씨로부터 하양이 새벽에 수영장을 다닌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조카 윤씨와 김씨는 3월3일 새벽부터 서울 삼성동 소재 하양의 아파트 앞 대로변에 승합차를 세워두고 납치할 기회를 엿보았다. 사흘 간 허탕을 친 이들이 하양을 목격한 것은 그 해 3월6일. 수영장에 가기 위해 집에 나서는 하양을 김씨 일행 세 명이 승합차에 강제로 태웠다.
이후 하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던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 하양은 그 해 3월16일 경기도 하남시 소재 검단산 등산로 부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하양을 직접적으로 살해한 범인은 장모 윤씨의 조카와 그의 친구 김씨로 드러났다. 그러나 풀리지 않은 의문이 몇 가지 남아 있다. 이에 대해 법원측은 사건의 본질을 뒤바꿀 만한 부분은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우선 장모 윤씨가 미행 지시만 했느냐 아니면 살인을 교사했느냐 하는 부분. 경찰과 검찰 조사와 법원의 판결문에서는 장모 윤씨가 2001년 10월8일 청담동 부근에서 처음으로 하양 살해를 지시하면서 착수금조로 5천만원을 건넸으며, 이후에도 타인 명의로 개설한 휴대폰 3대와 공중전화를 이용해 여러 차례 ‘빨리 살해하라’고 압력을 넣은 것으로 명시돼 있다. 또한 2002년 2월에는 조카 윤씨가 공기총까지 보여주면서 ‘하양을 이것으로 살해하겠다’는 뜻을 장모 윤씨에게 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윤씨 변호인측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하양을 직접 살해한 김씨의 진술과 사건 현장 상황, 발견된 증거물의 감식 결과 내용이 어긋나고 있다는 점. 장모 윤씨의 변호인측이 윤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이다. 실제 하양을 살해한 김씨는 하양의 안면을 쌀포대로 감싸고 하양에게서 1m 뒤로 물러나 하양의 얼굴을 하늘쪽으로 향하게 한 후 머리에 총 여섯 발을 쐈다고 진술한 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하양의 후두부 부분에서 두 발의 총알이 발견됐고 하양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쌀포대의 구멍과 총상 부위가 일치하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
세 번째 의문은 범행 장소 및 시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 조카 윤씨와 김씨는 3월6일 하양을 납치, 하남시 검단산 등산로 부근으로 끌고 가 살해했다는 일관된 주장을 폈고 검찰측이 기재한 공소장에도 이같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법원은 1심 판결문에서 하양의 피살장소와 관련, ‘대한민국 내 장소 미상지’라고 추정했다. 하양이 피살된 장소가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하남시 검단산이 아닌 제3의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