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에 수백만원에서 1천여만원씩 입금된 노씨 형수의 계좌. | ||
지난 11월2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울산지방검찰청에 구속된 노아무개씨의 기본 신상이다. 누가 봐도 평범한 공무원의 모습. 정상적인 월급만 받아서는 생활비와 두 딸의 교육비를 대기가 빠듯한 가계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씨의 월급통장과 수당통장에서는 돈이 전혀 인출되지 않았다. 통장에서는 전기요금 등 공과금만이 빠져나갔다. 오히려 노씨와 아내 박아무개씨, 그리고 형수 최아무개씨 명의로 된 총 7개 통장은 잔고가 줄기는커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하루에 두 번씩 2백50만원 가량이 입금된 적도 있었다. 한 달 평균으로 따지면 2천만원은 족히 됐다.
아니나 다를까. 노씨는 공무원 비리를 추적하던 검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노씨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하던 ‘은밀한’ 부분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검찰이 노씨에 대해 수사를 한 뒤 결론을 내린 대목이다.
자신 및 차명 계좌 보유 총 잔액 : 10개 계좌 총 3억3천여만원 (투자신탁, 각종 적금 포함하면 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
매월 계좌로 입금된 돈의 평균 액수 : 2천만원+α?
기타 : 현재 32평 아파트 거주
지난 봄 SM520 신형 승용차, 필립스 47인치 프로젝션TV 등 수입산 가전 제품 다수와 양탄자 및 각종 고급 가구 모두 현금으로 구입.
노씨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알부자였다. 이처럼 평범한 시청 공무원이 어떻게 남부럽지 않은 알부자가 됐을까. 이는 노씨가 형수 등 가족 명의로 된 차명계좌를 이용, 각종 건설업체 공사업자들로부터 수억원대 뇌물을 상납받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결과 노씨는 지난 98년부터 본격적으로 ‘수금’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울산지역은 택지개발과 관급공사가 폭주하던 때였다. 바로 이때 노씨는 시청 주도로 건설한 건물의 전기, 조명 등의 설비 공사를 감독하는 설비계장(울산시종합건설본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수중으로 들어왔다. ‘돈맛’을 본 그는 아예 업자들에게 “인사나 오라”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만약을 대비, 확실하게 몸을 사렸다. 무턱대고 돈을 받지 않았다. ‘수표 노! 은행 송금 노! 현금 예스!’였다.
예외도 있었다. 경남·경북 지역외에 근거지를 둔 업체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에게는 은행 송금을 허락한 것이었다. 서울이나 부산에 근거지를 둔 업체에게는 수표까지 받았다. 노씨는 이들에게 “직접 내가 그곳으로 찾아갈 테니 돈을 준비하라”고 하거나 혹은 “○○은행 XX 계좌로 ○월○일 ○시 송금하라”는 식으로 뇌물 전달 방법을 상세히 일러주기까지 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특수부 유혁 검사에 따른면 노씨는 돈을 나누어서 주려는 업자들에게는 ‘나 이 자리(설비계장)를 오래 지키고 있을 것이니 목돈으로 달라’는 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받은 뇌물은 고스란히 통장으로 들어갔다. 노씨는 뇌물로 받은 현금 중 일부는 생활비에 쓰고 나머지는 형수 최아무개씨 명의로 된 K은행 통장에 입금시켰다. 검찰이 확인한 뇌물 수수 건수만도 1백차례가 넘었다. 노씨가 1999년 4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형수의 K은행 통장에 입급한 금액은 모두 1억4천5백여만원이었다.
노씨는 이 계좌에 있던 돈을 다른 차명 계좌에 분산시켰다. 재테크도 하면서 남의 시선도 피하려는 의도였다. 노씨는 형수 명의 통장에 일정액이 모이면 이를 인출해 투자신탁 및 근로자우대형 적금 등 각종 금융 상품에 분산 예치시켰다. 일종의 ‘돈세탁’이었다. 나머지 돈은 자신의 통장과 아내의 통장, 그리고 두 딸의 계좌에 입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