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결과 이번 사건의 범인들은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J종교단체의 신도들인 것으로 밝혀져 새삼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고 있다.
이 종교단체는 과거에도 총재 정아무개씨의 성폭행 혐의와 일부 신도들의 폭행 등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종교를 가장한 집단합숙과 진실게임이라는 명목하의 폭행 등 이들이 벌인 범행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엽기적인 일이었다.
보호자 자격으로 따라온 최아무개씨(여·34)와 김아무개씨(여·34)는 “간밤에 외출해 돌아오지 않았고 아침에 깨어보니 어디서 맞고 들어왔는지 이미 죽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들의 진술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곧 끔찍한 이들의 죄상이 밝혀졌다.
현재 이 사건은 최씨 등 J종교단체 소속 여신도 5명이 상해치사 혐의로, 최씨의 남편 이아무개씨(35)는 범인은닉죄로 각각 구속된 상태다.
숨진 손아무개씨(여·31)와 최씨 등 여신도 5명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99년 5월. 손씨가 대학선배인 김씨를 따라 부산에 있는 N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렇다 할 직업도 친구도 없이 외롭게 주변을 겉돌던 손씨는 급속히 이 교회에 빠져들었다.
손씨의 가족측은 “이 즈음부터 딸애가 부쩍 외박이 잦고 며칠씩 집에 안들어오곤 해서 교회를 찾아가 몇 번 끌고 온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합숙생활을 하게 된 것은 최씨 부부가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프랜차이즈 영어교육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 피의자 최씨는 “포항으로 이사 와 영어교사를 구하자니 쉽지 않았다”며 “대학을 나온 교회 후배들을 고용해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해주고 교사로 쓰자고 남편에게 권유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손씨는 홀로 부산에 남게 됐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손씨는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최씨 등 여신도들마저 포항으로 가게 되자 부쩍 외로워했다.
결국 지난해 10월말, 무작정 포항으로 올라온 손씨는 떡집에서 일을 하고 숙식하며 다시 최씨 집을 드나들었다. 주 3∼4회 하던 신앙고백 모임에도 다시 참석하게 됐다. 한 달 후에는 그나마 떡집에서도 쫓겨나자 아예 최씨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됐다.
사회에서 소위 ‘왕따’를 당했던 손씨는 이곳에서도 따돌림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교회생활에 빠져들면서 가족들과의 불화도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던 손씨는 마땅히 갈 데도 없었다.
최씨 등 여신도들은 신앙고백이라는 목적의 이른바 ‘진실게임’을 통해 “거짓말만 일삼는다”며 툭하면 손씨를 폭행했다.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도구는 일회용 옷걸이를 꼬아서 만든 굵은 철사와 각목. 최초 사체를 목격한 경찰들은 “온몸에 멍 자국은 물론 가슴 부위 등에 옷걸이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사체 부검 결과 손씨의 위와 장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봐서 본격적인 폭행이 시작된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측은 “단순 폭행만으로 숨졌다고 볼 수는 없으며 두개골이 완전히 함몰된 것으로 봐서 신도들이 손씨의 머리를 여기저기 마구 부딪히게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자신을 “정아무개 총재님의 J종교단체 신도”라고 밝혔다. 실제 최씨 부부의 아파트에서는 J교단의 교리를 담은 서적은 물론 정 총재의 강연 모습, 생가 사진 등 관련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 확인 결과 이들 5명의 여신도와 최씨의 남편 이씨는 모두 J종교단체의 신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최씨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여신도들은 모두가 결혼 적령기를 훨씬 지난 3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독신이었다.
J종교단체의 경우 배우자감이 같은 교단이 아니면 결혼을 금기시하고 있다는 것이 주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이 교단은 여신도들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독신 여성들이 많다는 것. 최씨 역시 남편 이씨를 이 종교단체에서 만나 결혼했다.
이들이 다니는 부산 N교회는 간판이 ‘○○문화센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역시 J교단의 특징이라는 것이 주변의 설명. 이 교단은 현재도 전국적으로 2백60여 개소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런 식의 ‘문화센터’ ‘국제교류센터’ 등의 간판을 내걸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N교회라는 곳에는 문화센터 간판이 걸려 있을 뿐 목사도 없었고 젊은 여성들만 있었다”고 전했다.
N교회 근처의 한 주민은 “젊은 여자들이 잔뜩 드나들고 밴드 소리에 찬송가 같은 노래 소리가 막 들리곤 해서 뭘 하는 곳인가 궁금했더니 그곳이 교회였느냐?”고 반문했다.
죽은 손씨의 행동 또한 의문이 가기는 마찬가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손씨는 다른 신도들에 의해 감금된 상태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 며칠 전 손씨를 봤다는 한 이웃주민은 “아파트 관리비를 받으러 가보니 얼굴이 얻어맞은 것처럼 부어 있었다”고 밝혔다.
이 주민에 따르면 손씨는 빈 집에 혼자 있는 듯했으며 휴대폰까지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 그는 “어딘가 무척 몸이 불편해 보였지만, 누군가로부터 감금되어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망 직전 그녀의 통화내역을 추적한 담당 형사 역시 “금융사와 몇 군데 서비스 전화만 이용했을 뿐,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흔적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장 보따리를 싸고 나가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손씨가 계속 머무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피의자들의 진술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더해지는 부문이다.
이 같은 손씨의 의문스런 행동에 대해 J종교단체의 안티세력모임 소속 관계자는 “이해가 안 가지만 손씨의 행동은 J단체에 완전히 빠져든 전형적인 케이스로 보인다”고 밝혔다. ‘진실게임’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신앙고백도 역시 이 종교단체의 특징.
하지만 N교회측은 “이번 사건은 교회측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N교회 관계자는 “그런 사건이 있는지도 몰랐고, 설사 있었다 해도 우리 교회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교회의 정체에 대해 질문이 이어지자 “교회 운영에 대해서는 외부에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J종교단체의 신도였다는 K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신앙고백이나 집단합숙 등이 J교단의 정식 지침은 아니며, 다만 젊은 신도들이 많다보니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동아리 활동 비슷한 모임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모임의 일종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포항·부산=양하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