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은 구리 9단과의 10번기에서 이겨 8억 9000만 원을 받는 등 지난해 상금으로 14억 10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사진은 10번기 시상식.
여자 기사 중에서는 최정 5단이 1억 300만 원으로 1등. 이지현 4단과는 불과 300만 원 차이로 11위다. 최 5단은 지난해 제5회 궁륭산병성배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여자바둑 정상에 올랐다. 신예 5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변상일 3단은 더 간발의 차이로 12위를 차지했고 한국 바둑의 레전드 이창호 9단은 1억 100만 원으로 13위. 여기까지가 억대 수입이다.
프로기사의 수입 랭킹은 곧 실력 랭킹이다. 타이틀을 몇 개 차지했느냐, 승률이 얼마냐, 그런 것들로 따질 수도 있고, 현재 한국기원이 채택하고 있는 정밀한 수학적 통계의 ‘배태일 박사의 랭킹 시스템’을 따를 수도 있지만, 팬들에게 간단명료하게 어필되는 것이 수입 순이다. 물론 우승 상금만을 비교하느냐, 상금에다가 본선 등의 대국료까지 포함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있지만, 대개는 그게 그거다. 본선 대국료만으로 타이틀 상금을 추월할 가능성은 없다. 또 타이틀이 몇 개냐 하는 것보다 제일 큰 타이틀을 차지한 사람을 1등으로 치는 것도 있는데, ‘체감’의 측면에서는 이것도 일리가 있다. 작은 타이틀 여러 개를 합하면 상금 액수에서는 1등이 될 수 있겠지만, 좀 구차하다.
이세돌 9단은 구리 9단과의 10번기에서 이겨 500만 위안(약 8억 9000만원)을 벌었고, 제26회 아시아 TV바둑 선수권전, 제32기 KBS바둑왕전, 제15기 맥심커피배 제패에 지난 연말 ‘렛츠런 파크배’ 초대 우승을 합해 14억1000만 원으로 상금 신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최고였던 2001년 이창호 9단의 10억 2000만 원 기록을 13년 만에 약 4억 원 증액으로 경신한 것. 지난해는 김지석 9단이 연말에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MVP까지 차지했지만, ‘상금 체감’ 1등은 김지석 9단도, 박정환 9단도 아닌 이세돌 9단이었다는 얘기다.
김지석 9단은 지난해 삼성화재배 외에 제4회 초상부동산배 한-중 바둑단체대항전에 출전해 한국 2연패에 기여했고 국내에서는 제19기 GS칼텍스배를 차지해 입단 후 처음으로 상금 5억을 돌파했다. 그에 비해 박정환 9단은 2013년 8억 3000만 원으로 상금 1등이었는데, 지난해는 거꾸로 3억 이상이 줄었다. 김 9단과 박 9단은 5억 안팎이니 이 9단과는 약 10억의 차이, 엄청난 거리다. 그러나 이 9단의 10번기 수입을 빼면 역시 세 사람이 비슷비슷했던 셈이다.
빅3 다음은 또 차이가 벌어져 최철한 9단, 강동윤 9단, 나현 5단, 박영훈 9단 등은 빅3의 절반에서 40% 수준. 최철한 강동윤 박영훈 9단으로서는 평년작 정도지만, 나현 5단은 돋보인다. 제10기 물가정보배 우승했고 제4회 초상부동산 한-중-일 단체전에 우리 대표단에 끼여 우승에 일조한 것이 있다. 차세대 선두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10위 안에 들어온 이지현 4단도 괄목상대. 아직 정상급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르고, 올해 스물셋이니 영재-신진에서는 살짝 벗어난 상태지만, 꾸준한 노력과 뛰어난 승부근성으로 1억을 넘어서 또래 동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었다.
상금 세계기록은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의 2013년 1억 6500만 엔. 1980~90년대 일본 바둑을 석권했던 조치훈 9단은 1996년에 1억 3000만 엔을 기록했다. 현재 환율로는 각각 15억, 12억 원 정도다.
올해 우리 바둑의 상금 판도는 어떨까. 글쎄 10번기를 주최했다가 패한 중국 쪽에서 열을 받아 혹시 이세돌 9단에게 제2의 10번기를 제안한다면 모를까, 이세돌-구리만 한 카드를 다시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고,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처럼 독주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세돌 김지석 박정환의 세 사람이 각축하면서 상금도 나누어 차지할 것이니 큰 변수가 없는 한 10억 돌파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한편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허영호 9단과 윤준상 9단이 상금 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다. 원성진 9단과 홍성진 9단도 조만간 제대한다. 또 2014년 KB리그에서 맹활약한 김정현 5단은 이지현 4단을, 이동훈 4단은 나현 5단을 롤 모델로 삼아 날을 더욱 벼릴 것이다. 2014년의 상금 순위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