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후속 열기는 상당하다. 1990년대 대중음악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고, 이른바 ‘토토가 가수들’은 다시 스타덤에 오르는 분위기다. 여세를 몰아 소찬휘는 새 음반을 냈고, 김현정도 올해 상반기 음반을 발표하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지누션은 소속사 대표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프로듀서를 향해 “음반을 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토토가’ 열풍은 <무한도전> 제작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다. 연출자 김태호 PD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우리도 미처 알지 못했던 대중 심리의 뇌관을 건드린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사실 ‘토토가’의 기획은 우연히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김태호 PD와 <무한도전> 출연자인 박명수, 정준하는 서해안으로 향하는 자동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 당시 <무한도전> 400회 특집 촬영을 위해 이들은 서해로 주꾸미 낚시를 하러 가던 참이었다. 박명수와 정준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1990년대 인기 가요들을 선곡해 들었다. 둘은 모든 노래를 따라 불렀고, 추억에도 잠겼다. 이구동성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다”며 맞장구를 쳤다.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김 PD는 그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90년대 히트곡을 주제로 하는 방송을 기획하자는 생각이었다. 서해에서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그는 유재석, 정형돈 등 나머지 출연진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꺼냈다. 모두 반색했고 이후 일사천리로 기획이 진행됐다. ‘토토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가수들을 선택하고 섭외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제작진은 ‘토토가’에 적합한 가수 후보군을 꼽았고 곧장 섭외에 들어갔다. 보통 출연진 섭외는 PD와 작가가 전담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유재석부터 하하까지 <무한도전> 출연진이 ‘토토가’에 참여할 가수 섭외에 직접 나섰다. 방송 제작 환경에선 흔하지 않은 경우다. 그만큼 ‘토토가’에 가진 출연진의 의욕이 상당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인기 그룹 지누션(위)과 터보가 토토가를 위해 그때 그 의상으로 다시 뭉쳤다.
<무한도전>의 한 제작관계자는 “멤버들이 섭외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가수를 선택하는 게 비교적 수월했다”며 “여건이 맞지 않아 출연할 수 없던 몇몇 가수를 빼고 섭외 대상이었던 가수는 대부분 참여했다”고 밝혔다.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들은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듣고 크게 반겼다. 소찬휘도 그런 경우다. 소찬휘는 “노래방에서 1990년대 가수들의 가창력을 검증하려고 한다는 제작진의 말을 듣고 바로 호기심이 생겼다”며 “장기나 개인기를 보여 달라는 게 아니라 노래방에서 노래로 오디션을 본다는 제안에다가 ‘가창력이 여전한지 확인해야겠다’는 제작진의 설명이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밝혔다.
간간이 방송활동을 하고 음반도 발표했던 소찬휘와 달리 터보의 멤버 김정남은 10년 넘도록 대중 앞에 서지 않았다. 잊힌 존재나 다름없었다. 김정남을 ‘토토가’ 무대에 올린 건 터보의 또 다른 멤버 김종국이다. 그는 ‘토토가’ 기획을 전해 듣고 출연을 제안 받는 자리에서 김정남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터보의 또 다른 멤버인 마이키와는 가끔 전화통화를 하고 지내지만 초기 멤버였던 김정남과는 15년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는 고백이다. 제작진과의 미팅 자리에서 이 사실을 밝힌 김종국은 터보란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면 김정남과 함께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고, 결국 성사됐다.
노래하는 엄정화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던 것도 ‘토토가’가 시청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또 다른 이유였다. ‘배반의 장미’나 ‘포이즌’을 부르는 엄정화는 대중에게 상당한 ‘반가움’과 ‘추억’을 선물했다.
엄정화 역시 <무한도전> 제작진이 1순위로 꼽았던 섭외 대상이었다. 출연 제의를 받은 그도 누구보다 무대에 서길 바랐지만 촬영 중인 영화 <멋진 악몽>의 빠듯한 일정 탓에 결국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출연이 어렵다고 알리고 며칠 뒤, 엄정화는 가수 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가장 빛나던 그 시간을 놓치지 말자”는 션의 설득에 결국 엄정화는 촬영을 미루고 무대에 섰다.
‘토토가’를 소화한 뒤 엄정화는 “모든 게 그때 그대로였다”며 “그때 좋았던 거, 아팠던 기억 힘들었던 것까지 왜 그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무한도전>이 우리에게 추억을 현실로 확인할 시간을 마련해줬다”고 감격해했다.
‘토토가’ 덕분에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이도 있다. 연기자 이본이다. 1990년대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진행자인 그는 5년째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고 두문불출해왔다. 하지만 ‘토토가’를 통해 그의 진가가 다시 드러났고, 오랜 공백을 딛고 새로운 소속사와 전속계약까지 맺고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3주간의 방송은 막을 내렸지만 ‘토토가’로 얽힌 이들의 인연은 계속된다. 출연 가수들과 <무한도전> 출연진은 휴대전화 메신저로 단체 대화방까지 만들고 안부를 나눈다. 방을 개설한 주인공은 정준하, 가장 활발하게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김정남과 션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