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 ||
장물아비 이아무개씨(41)는 문화재 수집상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문화재 전문가로 알려졌다. 또한 이씨의 구속으로 인해 앞에선 문화재 전문가로 나서면서 뒤켠에선 훔친 물건을 거둬들이는 장물아비 노릇을 하는 일명 ‘나까마’ 세계의 한 단면이 드러났다.
이번에 검거된 5인조 문화재 절도단은 지난 2000년부터 고서적을 위주로 문화재를 훔쳐왔다. 경찰 수사 결과 지금까지 이들 일당이 훔친 문화재는 확인된 것만 1천점에 이른다. 이들은 이씨에게 장물을 건네고 그 대가로 지난 1년 동안 5천6백만원 정도를 받았다. 통상 감정가의 10%선에서 장물의 가격이 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씨가 이들 일당으로부터 수집한 문화재의 가치는 최소 5억원은 넘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추정이다.
한 문화재 수집상은 “절도꾼이 한 장물아비만 상대하지 않듯 장물아비 역시 한 절도꾼만 상대하지 않는다. 각각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씨는 근대사 자료를 주로 수집하고 다녔기 때문에 5인조 일당이 훔친 1천점 중 구한말 이후의 문화재를 주로 사들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수집상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서울, 부산, 대구, 진주 등에서 비밀리에 이런 장물들이 거래된다는 것.
이번에 검거된 이씨는 문화재 수집상으로 어느 정도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 그가 취급한 장물은 경찰이 밝힌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상이다.
이씨를 잘 안다는 한 개인 수집가 A씨는 “그는 수집상을 한 지 7~8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좋은 물건을 많이 가져와 단시일내에 이 업계에서 꽤 이름을 알렸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았으니 만큼 자신이 하는 일을 아주 즐거워했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보통의 수집상들이 귀동냥으로 얻은 지식으로 이것저것 아무 물건이나 가지고 오는 반면 이씨는 명문대를 나온 재원에, 독학으로 문화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탓에 꽤 쓸 만한 물건을 많이 끌어왔다고 한다.
이씨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속칭 ‘가이다시’에서 ‘나까마’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가이다시란 일일이 돌아다니며 문화재를 긁어모으는 일종의 고물상에 해당하고, 나까마는 가이다시를 통해 문화재를 사들이는 도매상에 해당한다. 이씨는 그중에서도 꽤 규모를 갖춘 나까마로 통했다.
그는 1년에 절반 이상을 지방에 머물며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수집했다. 그래서 경찰은 이번에 안동에서 검거된 5인조 문화재 전문절도단은 이씨가 접촉한 절도꾼 중 일부로 보고 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초 “김씨가 문화재 절도꾼인지 전혀 몰랐다. 그저 김씨가 안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개인 수집상인지 알았다”고 주장했으나, 최근 범행의 일부를 시인하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한 문화재 수집상은 “안동은 종가(宗家)와 고택(古宅)이 많아 수집상들에게 ‘보물이 묻힌 땅’으로 통한다. 좋은 물건이 많은 만큼 도난사건도 많아 일단 안동에서 올라오는 물건은 대개 장물로 보는 것이 수집상들의 상식이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수집상은 전문 절도꾼을 고용해 ‘어디에 가면 어떤 물건이 있으니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까마와 가이다시의 관계에서 부적절한 절도의 행각도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
경찰 조사 결과 밝혀진 이씨의 문화재 처리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합법적으로 구매한 것은 인사동 청계천 황학동 답십리 등에 유통시키고 장물의 경우는 개인구매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문화재를 판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가 개인구매자의 신상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경찰은 불법으로 유통된 문화재를 회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수사관은 “설사 이씨가 실형을 살더라도 곧 출소해서 또다시 문화재 수집상 노릇을 할 텐데 쉽게 입을 열겠나. 유통과정이 비밀스러운 만큼 이 업종은 신뢰가 생명이다. 자신이 옥살이를 하더라도 물건을 건네준 사람에 대해선 끝까지 보호하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문화재 관련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고 형량이 다소 무거움에도 문화재 도난사건은 끊이질 않고 있다.
안동에서 유교문화전시관을 운영하는 권영록씨(54)는 “현재 모방송국에서 골동품의 진품 여부를 가리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골동품이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90년대 후반부터 문화재 좀도둑들이 들끓었다. 특히, 안동은 종가가 많아 문화재 절도단이 활개 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씨와 같은 수집상들은 문화재 수집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함께 잘만하면 큰돈을 만질 수도 있어 장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고 한다. 인사동에서 3대째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골동품이나 문화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수집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1년에 한두 건만 괜찮은 물건을 거래하면 웬만한 샐러리맨 연봉의 두세 배를 벌 수 있다. 사실 주식이나 부동산보다 골동품이 비용도 적게 들고 큰돈을 벌 수 있어 일부 수집상들이 장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