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 골퍼 배상문이 <골프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오른쪽은 어머니 시옥희 씨. 연합뉴스
대구경북지방병무청은 지난해 12월 30일, 배상문에게 더 이상 국외 여행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전까지만 해도 병무청은 영주권을 취득한 이가 해당 국가에서 1년 이상 거주할 경우 37세까지 1년 단위의 자동 연기가 가능했다. 배상문도 이를 인지하고 2013년 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것이다. 그러나 2년 전 축구선수 박주영이 이런 방식으로 병역 면제를 받는 바람에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고, 병무청은 영주권 취득 후 실제 거주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리며 관련법을 손질했다. 2013년 영주권을 딴 배상문은 자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12월로 비자가 만료된 배상문은 30일 이내인 1월 말까지 귀국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배상문은 <골프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고, 이전까지만 해도 배상문에게 호의적이었던 여론이 이 인터뷰 이후 순식간에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배상문 병역갈등 사태’와 관련해서 골프인들도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무엇보다 배상문의 대응이 잘못됐다는 데 대해 입을 모았다. 배상문의 지인 A 씨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배상문 입장에선 지금의 이런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스스로 일을 크게 만든 면도 있다. 특히 어머니가 아들의 입대 연기를 위해 대구경북지방병무청을 방문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한 사실이 알려졌다. 병무청 입장에선 ‘괘씸죄’를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1월 30일까지 무조건 입국해서 자진 입대하라고 완강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또한 <골프위크>와의 인터뷰는 병무청은 물론 국민들의 정서까지 자극했다. 배상문은 인터뷰가 와전됐다고 말하지만, 인터뷰 전문을 살펴보면 ‘병역 연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귀국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건 사실이다. 배상문으로선 그 보도 후에 ‘아차’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기 어렵다. 여론까지 등진 상태에서 병역 연기를 해결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헤럴드스포츠>의 이강래 기자는 1999년 미국 골프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불거진 박세리 귀화 파동을 예로 들었다. 당시 IMF를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박세리가 <골프다이제스트 우먼>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럽 대항전인 솔하임컵 출전과 관련, “나도 솔하임컵에 출전하고 싶다. 이건 불공평하다. 언젠가는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기사화되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당시 박세리는 미국과 유럽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는 솔하임컵대회와 관련해 ‘불공평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인터뷰를 한 기자가 미국 국적 취득을 마음대로 붙이는 바람에 파장이 거셌다. 졸지에 박세리는 ‘골프 여왕’에서 ‘배신자’로 내몰린 형국이었다. 박세리를 모델로 광고 촬영을 마쳤던 삼성전자는 성난 여론에 놀라 미방영분까지 포함해 박세리가 출연한 모든 광고를 폐기처분해야 했다. 그때 박세리가 내게 전화를 해서 한 말이 기억난다.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였다. 박세리 측의 적극적인 해명으로 인해 여론은 가라앉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을 가장 자극하는 몇 가지 단어가 ‘국적’ ‘귀화’ 그리고 ‘군대’ 문제인데 배상문이 이 금기어에 걸려들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한 관계자는 배상문이 귀국을 서두르는 게 급선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에서 들어오지 않고 행정 소송 운운하면서 시간을 끈다면 여론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만약 한국에서는 변호사가 행정 소송을 하고, 배상문은 계속해서 투어에 출전한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셈이다. 원래는 지난주 미국 PGA투어 현대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를 마치고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군 입대를 하거나 국적을 포기하는 두 가지 방법 외엔 없다. 행정 소송을 하더라도 배상문이 승소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배상문에게 직접 골프를 가르쳤던 임진한 프로는 배상문 주변에 실질적인 조언과 가이드를 해줄 사람이 없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이강래 기자의 설명이다.
“임진한 프로는 배상문을 주니어 시절부터 가르쳤던 스승이다. 배상문과 어머니 시옥희 씨의 은사이다. 누구보다 두 모자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고, 배상문이 PGA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분이라 이번 사태에 대해 걱정과 우려를 나타냈다. 배상문의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영향력은 다양한 분야에 미칠 수밖에 없었다. 두 모자의 관계가 워낙 단단하다 보니 주변에서 그들 사이에 끼어 들 틈이 없고, 어떤 얘기를 해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면이 있다. 이번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배상문은 현재 매니지먼트사가 없다. 배상문 정도의 ‘핫’한 스타플레이어가 그 흔한 매니지먼트사 없이 혼자 투어 생활을 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배상문의 지인 A 씨가 다음과 같은 얘기를 곁들인다.
“배상문과 어머니로부터 협조를 받을 수 있는 매니지먼트사가 없을 것이다. 선수와 매니지먼트사는 조력자가 돼야 하는데, 통제와 협조가 안 되는 상황이라면 그 관계는 쉽게 깨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배상문에 대해선 매니지먼트사들의 관심이 높다. 그러나 세부적인 상황으로 들어가면 손을 들게 된다. ‘엄두가 안 난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배상문은 오는 4월 열리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 대회에는 배상문을 비롯해 노승열, 케빈 나, 아마추어 양건 등 현재까지 4명의 한국(계) 선수 출전이 확정됐다. 마스터스 대회는 배상문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대회이다. 그리고 10월 인천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과 2016리우 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나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이다. 골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가 올 시즌에 걸려 있다 보니 배상문으로선 지금 당장 군에 입대하는 게 ‘도박’을 하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밖에 없다. 국적을 변경하지 않는 한, 배상문은 당장 병역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골프 인생도 이어갈 수 있다.
최근 배상문은 SBS 골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심경을 밝혔다. “마음이 편치 않다. 팬들에게 죄송하다. 법적 조치하는 건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행정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중략) 마스터스 등 큰 대회가 있는데, 없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라 행정적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고 한 것인데…. (중략) 군대를 기피한다, 제2의 누구이다 라고 비난하는 댓글을 봤다. 특혜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다. 프로 선수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
배상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골프인생의 최대 위기를 그가 얼마나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