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롯데 조성환 은퇴식(위)과 2013년 5월 SK 박재홍 은퇴식.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
#‘발’과 ‘눈’이 가장 먼저 안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선수 자신이 먼저 알아차린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30대 후반의 현역 선수 A는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순발력과 스피드, 파워가 모두 떨어졌다. 어릴 때보다 두 배, 세 배 이상 운동해야 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또 그러다가 무리하면 체력이 떨어져서 부상의 위험이 생긴다”며 “옛날만큼 운동해도 결과가 안 나온다는 느낌이 확 와 닿으면 그라운드에서의 승부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때부터 은퇴에 대한 고민이 시작돼 우울해진다”고 털어 놓았다.
선수들은 무엇보다 가장 먼저 ‘발’에서 변화를 감지한다. 러닝은 야구의 기본이다. 경기 때 치고 달려야 하는 타자들은 물론, 하체를 단련해야 하는 투수들도 그 어떤 훈련보다 러닝을 가장 많이 한다. 김응용 전 감독과 김성근 한화 감독 같은 베테랑 사령탑들이 “선수가 달리기를 싫어하는 순간 끝이 왔다는 의미”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발목 부상은 특히 치명적이다. B 야구인은 “발목을 다친 이후 제대로 뛰지 못하니까 전체적인 순발력이 떨어졌다. 공이 빤히 보이는데도 배트가 따라가지 못해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C 야구인도 왼쪽 발목 수술 후 2년 간 달리는 훈련을 거의 하지 못해 은퇴 시기가 앞당겨졌다.
‘눈’도 달라진다. 야구 선수들의 눈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하다. 움직이는 물체를 식별하는 동체시력이 발달해야 투수가 던지는 빠른 공을 잘 칠 수 있다. 눈이 따라주지 않으면 오랜 시간 쌓아온 타격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D 코치는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구를 더 잘 치는 법을 터득했는데, 어느 날부터 변화구의 각도를 눈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했다. E 해설위원도 눈 근처에 볼을 맞아 광대뼈가 함몰된 이후 눈앞의 물체가 번지는 현상 때문에 몇 년간 애를 먹었다. 안경을 써보기도 하고 라섹 수술로 시력 교정도 해봤지만, 점점 시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자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프로야구 원년 스타인 F도 중심성 망막염이라는 질환 때문에 야구를 그만둬야 했다.
#힘·스피드·순발력, 그리고 정신력이 사라진다
비단 발과 눈만의 문제는 아니다. 몸 전체적으로 총체적 난국이 찾아온다. 모든 선수에게 어느 정도 보편화된 징후도 있다. 일단 홈런 타자들은 타구가 예전보다 덜 뻗어 나간다. 배트 중심에 잘 맞았다 싶었는데도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는 타구가 늘어난다. 예전 같았다면 담장을 넘어가고도 남았을 타구가 마지막 순간 힘을 잃는다. 발 빠른 타자들은 어느 순간 도루가 두려워진다. 2루를 향해 정확한 타이밍으로 스타트를 끊을 자신이 없어진다. 슬라이딩을 잘못 하다 부상이라도 당할까봐 몸을 사린다. 특히 종아리 부상은 누구나 인정하는 은퇴의 위험신호다. 또 투수는 한계투구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한창 때는 100개를 던져도 구속에 전혀 이상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70~80개를 넘어서면 스피드가 잘 안 나온다. 한때는 6~7이닝을 기본으로 막던 선발투수가 어느새 5회도 간신히 채우게 된다.
G 야구인은 “사실 어느 하나가 문제라기보다는 몸이 여기저기 안 좋아지면서 상대방과 싸울 자신감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 번 다치면 잘 낫지 않고, 그러면 그 이유로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그러면서 상대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며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공격을 당해도 예전 같은 ‘반격’의 의지가 꺾인다. 나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수모를 느끼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1년이라도 더 그라운드를 지키려면, 젊은 후배들보다 몇 배는 더 철저한 몸 관리가 필요하다. 앞서의 A 선수는 “나도 내로라하는 애주가였지만, 언젠가부터 시즌 중에는 술을 아예 안 마시거나 맥주 한두 잔 정도로 자제하고 있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끄떡없던 몸이 이제는 하루하루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며 “비 활동기간인 12월 한 달만 지인들과 술자리를 즐기고, 그 외에는 경기와 훈련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고 귀띔했다.
#은퇴는 미련과 아쉬움의 또 다른 이름
한국 야구가 낳은 ‘국보’ 투수 선동열은 1999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만 36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당시 소속팀 주니치와 친청팀 해태가 금전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자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있는 기회도 포기하고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당시 선동열은 여전히 정상급 투수였다. 앞으로도 수십억 원은 더 벌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시즌에 잦은 부상과 체력적인 한계로 고생하는 동안 단호하게 마음을 굳혔다. “더 이상 구차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했고, 번복 없이 그 말을 실제로 지켰다. 한국과 일본 야구계가 모두 경탄했던 은퇴 선언이었다.
1997년 주니치 시절 선동열 모습. 그는 1999년 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은퇴는 늘 최고의 자리에만 머물렀던 투수 선동열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선수에게 은퇴는 늘 미련과 아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즌을 치를 때는 당장 “끝!”을 외치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겨울이 오면 “지금 다시 열심히 몸을 만들면 한 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현역에서 물러난 지 10여 년이 지난 H 코치는 “여전히 은퇴할 때를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든다.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했는데도, 그때 다른 팀에서라도 1~2년 더 선수 생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며 “나처럼 떠밀리듯 은퇴한 선수들은 아마도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야수들은 투수들에 비해 더 장수하기 어렵다. 투수는 선발, 중간, 마무리로 보직이 세분화돼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다. 자신의 주특기 하나만 잘 살리면 꽤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은퇴한 LG 류택현은 좌완 스페셜리스트라는 특장점 덕분에 만 42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야수는 지명타자를 제외한 여덟 개 포지션에 대부분 주전이 정해져 있다. 베테랑 선수는 조금만 몸이 둔해져도 ‘세대교체’라는 이름의 희생양이 돼야 한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서럽다. 구단은 몸값이 높고 경험이 많은 ‘현재’의 베테랑들보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미래’의 유망주를 더 원한다.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니 아름답게 이별하기도 참 어렵다. 이럴 때 은퇴의 뒤안길이 더 쓸쓸해진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은퇴식 전문 구단 한화 영구결번 3인방 등번호 숫자만큼 은인초청 이벤트 야구 관계자들은 우스갯소리로 한화를 ‘은퇴식 전문 구단’이라고 부른다. 유독 레전드를 많이 배출했고, 그만큼 성대한 은퇴식도 많이 열어봤기 때문이다. 1997년 8월 31일 대전 현대전에서 열린 이강돈의 은퇴식을 시작으로 이상군(2001년 5월31일 대전 롯데전), 한용덕(2005년 4월5일 대전 두산전), 장종훈(2005년 9월15일 대전 KIA전), 정민철(2009년 9월12일 대전 히어로즈전), 구대성(2010년 9월3일 대전 삼성전) 등 쟁쟁한 선수들의 은퇴식이 대전구장을 수놓았다. 특 한화 영구결번 3인방인 장종훈·정민철·송진우(위부터 시계방향으로)의 은퇴식 모습. 연합뉴스 이뿐만 아니다. 또 다른 레전드인 구대성의 은퇴경기 때는 선수단 전체가 이름 대신 ‘대성불패(臺晟不敗)’가 새겨진 기념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다. 다른 팀 은퇴식과 은퇴경기의 모티브가 됐던 장면이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은퇴식이 끝난 뒤 선수들이 구단 관계자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을 정도”라며 “이후에 레전드의 은퇴식을 준비하는 다른 구단들이 여러 차례 비결을 문의해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은] |
메이저리그 은퇴문화 데릭 지터 미국 전역 돌며 1년 내내 ‘은퇴투어’ 데릭 지터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팀 뉴욕 양키스에서만 20년을 뛰었다.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최고의 팀을 빛낸 최고의 유격수이자 최고의 캡틴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1년은 그 20년 가운데서도 가히 최고의 순간이라 할 만했다. 9월 8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진짜 은퇴행사 경기는 더 열기가 뜨거웠다. 행사 일정이 발표된 뒤 입장권 가격이 평균 139.24달러(약 14만 원) 정도에서 497.98달러(약 51만 원)까지 올랐다. 심지어 양키스 공식 기념품 업체인 스테이너 스포츠는 지터가 뛰었던 양키스타디움 내야 흙을 담은 캡슐을 19.99달러(약 2만 6000원)에 팔았다. 양키스 팬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지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최고의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한 해 앞선 2013년에는 양키스의 전설적인 소방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같은 영광을 누렸다. 보스턴에서 치른 마지막 원정경기에서는 평생 양키스에 이를 갈며 살아온 라이벌 팀의 극성 관중들조차 기립박수를 쳤다. 은퇴식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비운 채 오직 리베라 한 명만 마운드에 섰다. 메이저리그 연속경기 출장의 신화를 썼던 칼 립켄 주니어도 2001년 은퇴 당시 미국 전역을 돌며 1년 내내 은퇴 경기를 했다.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유니폼을 벗었다. 팬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선수가 ‘우리 야구장’에서 뛰는 마지막 기회를 기쁘게 누렸다. 아쉽게도 한국은 다르다. 선수의 은퇴는 대부분 구단이나 감독과의 마찰로 얼룩진다. 2009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직후 “내년 시즌까지만 뛰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김재현(당시 SK)과 같은 사례는 극히 보기 드물다. 팀은 기량이 떨어진 베테랑 선수를 부담스러워 하고, 선수는 ‘난 아직 뛸 수 있다. 건재하다’고 여긴다. 서로 충분한 이유가 있기에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그러나 어쨌든 모양새가 좋지 않은 이별은 안타까운 은퇴의 아쉬움을 더 깊어지게 한다. 새 시즌의 시작을 앞두고 마지못해 유니폼을 벗었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당시 KIA)이 딱 그랬다. 지난해 7월 은퇴선언 1년 반 만에 열린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은퇴식.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는 2012시즌을 끝으로 한국에서 은퇴했다. 시즌이 끝난 뒤 은퇴 소식이 전해졌고, 은퇴식은 1년도 더 지난 2014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열렸다. 한국팬들은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 투수가 한국의 마운드에서 마지막 공을 던지는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한 야구인은 “가장 영광스럽고 벅차야 할 마지막 1년을 우리 선수들은 구단과 싸우고 자신과 싸우느라 가장 불행하고 힘겹게 보내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라며 “우리에게도 좀 더 아름다운 은퇴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