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가출이 의아스러워 강씨는 큰딸을 찾아나섰다. 딸 친구들을 수소문한 끝에 큰딸을 찾아내긴 했지만 아이가 털어놓은 가출 동기는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집안 형편상 어릴 때부터 큰딸을 아는 집에 맡겨 키웠는데 이 집 할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
강씨는 지난 80년대 중반 같은 직장에 다니던 아내 박수정씨(가명·38)를 만나 결혼했다. 이듬해 큰딸을 낳았지만 맞벌이를 하느라 애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아내 박씨와 함께 근무하던 이진석씨(가명·38)의 부모가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나섰다. 집도 가깝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 고마워하는 마음이 컸다. 이후 강씨와 이씨는 ‘형님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냈고 아이들 역시 이씨 가족들과 한가족처럼 어울렸다.
그런데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무려 7년간 이씨의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해왔다는 것이다. 평소 큰딸이 “할아버지(이씨의 아버지)가 무섭다”는 말을 할 때도 강씨는 “그러면 못쓴다”며 타일러왔다.
‘대체 성추행이라니….’ 도저히 이 일을 믿을 수 없었던 강씨는 이씨의 아버지에게 따져 물었고 이씨의 아버지는 “잘못했다”며 사실을 시인했다. 너무나 화가 난 강씨는 이씨의 아버지와 큰딸을 경찰서로 데려가 고소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큰딸의 전화를 받고 온 아내 박씨가 “무슨 짓이냐”며 큰딸을 집으로 데려가 버린 것. 아내는 오히려 남편을 비난하며 이씨의 아버지와 합의할 것을 요청했다. 이 일로 강씨 부부의 사이는 벌어졌고 두 사람은 별거를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강씨는 우연히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자신의 아내와 둘째딸 그리고 이씨가 다정하게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큰딸을 성추행한 사람의 자식과 어떻게 저렇게 나란히 백화점을 다닐 수 있을까.’
강씨는 문득 누나의 말이 생각났다. “둘째딸이 이씨의 어머니를 꼭 닮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강씨는 그럴 때마다 ‘둘째딸이 그 집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이겠지’ 하며 넘어갔었다.
강씨가 백화점 목격담을 전하자 그의 누나는 “아무래도 이씨와 박씨의 사이가 수상하다. 둘째딸이 너의 핏줄이 맞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DNA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이상한 느낌이 든 강씨는 자신과 둘째딸의 유전자 검사를 전문기관에 의뢰했다.
DNA 조사 결과 역시 충격적이었다. 둘째딸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내를 추궁했지만 아내는 “무슨 소리냐. 당신의 아이가 맞다”며 발뺌을 했다. 이씨가 DNA 조사 보고서를 보여주자 아내는 그제서야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씨가 옛날에 부서 회식 때 술에 정신을 잃은 날 데려다주며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며 이씨와의 관계를 시인했다.
강씨로서는 두 딸과 아내 모두 이씨 부자에게 유린당한 셈이 된 것이다. 강씨는 아내에 대한 법적 처벌을 원했지만 간통죄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했다. 강씨는 대신 큰딸의 양육권과 양육비, 정신적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지난 8월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이런 강씨의 기막힌 사연은 지난 5일 언론을 통해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강씨의 기구한 결혼생활에 동정을 보내면서도 강씨의 아내 박씨에게는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렇다면 아내 박씨는 18년간 남편을 속이고 파렴치한 결혼생활을 해온 걸까. 박씨는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남편 강씨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먼저 큰딸의 가출과 성추행 합의에 관한 부분. 박씨는 지난해 큰딸이 가출하면서 이씨 부친의 성추행 사실이 밝혀진 뒤 자신이 합의를 종용한 것은 딸의 장래를 생각해서였지 이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성추행 사건을 고소할 경우 큰딸이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는 점이 몹시 마음 아팠다고 말한다. 박씨 또한 당시 큰딸이 털어놓은 사실에 너무 놀라 자리에 누울 정도로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당시 박씨에게 “이제부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손을 떼라”며 큰딸을 데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큰딸이 “엄마, 빨리 와. 지금 경찰서에 가고 있어”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
박씨로서는 딸의 미래가 걸린 문제고 더구나 성추행이란 점 때문에 주변에 소문나지 않도록 일을 조용히 처리하기를 바랐다. 게다가 딸이 불안해하는 기색이어서 급히 경찰서에서 딸을 데리고 온 뒤 이씨의 아버지와 조용히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
결국 이씨의 아버지와 1억원에 합의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남편 강씨는 “6천만원을 내 통장에 넣어주면 없던 일로 하겠다. 대신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등 몰상식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이씨와 백화점에서 다정하게 쇼핑을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박씨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지난 6월19일 토요일 둘째딸과 백화점에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던 중 마침 그곳을 지나던 이씨가 승용차를 세우고 이런저런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고 한다. 큰딸 일도 있고 해서 박씨는 애써 외면을 했지만 그날 비가 세차게 내렸고 딸도 얼른 비를 피하고 싶어해 차를 얻어 탔다는 것.
박씨가 백화점에 내려 “고맙다”며 짧게 얘기하고 헤어지려고 했지만 이씨 자신도 살 게 있다며 따라 내렸다고 한다. 애초 이씨와는 따로 1층에서 물건을 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 이씨도 1층 매장으로 들어온 것뿐이라고.
‘둘째딸이 남편과의 친자가 아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박씨 자신도 난감할 따름이라는 입장이다. 자신도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이씨에게 숨기는 것이 있으면 모두 얘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씨는 박씨가 회식 때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박씨를 데려다 주는 길에 몰래 성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했다는 것.
한발 더 나아가 오히려 아내 박씨는 결혼생활의 피해자는 자신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가정이 파탄난 근본적인 이유는 남편이 가정을 돌보지 않은 탓이지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 박씨측이 털어놓은 사연은 이렇다.
남편 강씨는 아내 박씨가 결혼 후부터 자신을 무시하고 집안일도 하지 않아 자신이 모든 일을 떠맡고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씨가 ‘문제 아내’였음을 지적한 셈이다. 그러나 박씨는 남편이 바깥으로 나돌며 집안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그 탓에 시댁 일까지 자신이 도맡아야 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결혼 후 시댁의 큰동서가 이혼한 뒤에는 자신이 제사, 명절 준비 등의 대소사를 도맡아서 했고 시어머니와 큰조카의 부양까지 떠맡았다는 것. 게다가 당시 자신의 월급 13만원 중 7만원을 매달 시어머니의 곗돈으로 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줬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기 전에도 1년간 집에서 병수발을 했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박씨가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기 위해 거론한 사례는 또 있다. 시동생이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난 여자가 임신을 하자 한동안 박씨의 집으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 여자의 집 식구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릴 때도 남편은 이에 무관심했고 결국 박씨가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박씨는 둘째딸 문제로 이씨와의 ‘관계’가 부각된 때문인지 남편 강씨의 바람기도 가정 파탄의 한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편 강씨가 업무 중에 알게 된 여자들과 잦은 외도를 했다는 게 아내 박씨의 주장. 강씨는 1998년 만났던 여자와는 수영장도 함께 다니고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박씨가 이 사실을 눈치채고 “그만두라”고 요구했으나 이후로도 계속 그 여자와 만남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 박씨는 2003년에는 강씨가 43세의 학원 원장과도 외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새벽 2, 3시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아예 외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베란다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척하면서 여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박씨측에 따르면 올해 4월에도 남편이 어느 대형할인점에서 집에서나 입는 편안한 복장으로 어떤 여자와 다정히 쇼핑을 하는 모습이 이들 부부의 지인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남편 강씨와 아내 박씨는 ‘재산 문제’를 두고서도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강씨 명의의 재산은 총 1천3백만원, 박씨 명의의 재산은 1억9천5백만원이다. 박씨의 재산 중 1억원은 이씨 아버지로부터 받은 합의금.
강씨는 아내 박씨에게 위자료(5천만원)와 재산분할금(3천9백만원)으로 모두 8천9백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큰딸의 양육권을 자신에게 주고 양육비로 향후 3년간 박씨가 매달 50만원을 지급할 것도 청구한 상태다. 아내 박씨에게 가정을 파탄낸 책임이 있는 만큼 이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씨는 결혼생활 18년간 자신이 직장 생활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며 재테크를 해 알뜰하게 살았던 반면 남편 강씨는 술에 취해 새벽에 귀가하는 등 가정에 소홀했고 오히려 남편의 빚을 자신이 대신 갚아주기까지 했다며 남편 강씨는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남편 강씨측은 아내의 답변서 내용을 재반박하는 준비서면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들 부부에게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벌써부터 세상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