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등으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한순정씨(가명·여·33). 한씨는 2002년 6월 중순 호기심으로 한번 하게 된 폰팅을 통해 정무기씨(가명·28)를 만나게 됐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작은 공장에 다니고 있던 한씨에게 정씨는 유일한 말벗이자 안식처였다. 정씨 또한 외롭게 자란 한씨를 살갑게 대했고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특히 한씨는 정씨의 “사랑한다. 함께 살자”는 말에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씨는 한씨를 이용하려는 속셈뿐, 진심으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정씨의 직업은 성북구 하월곡동의 소위 ‘미아리 텍사스’에서 성매매 여성을 관리하는 ‘삼촌’. 한씨를 만나던 당시에는 유부남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성매매 업소에 또 다른 애인까지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씨는 사랑을 빙자해 한씨를 속이고 금품을 뜯어냈다. 정씨는 한씨에게 “내게 목걸이와 금반지를 사주면 당신 생일날 내가 같은 걸 사 주겠다”며 3백여만원 상당의 선물을 받는 등 모두 열두 차례에 걸쳐 9백여만원의 금품을 뜯었다. 한번은 자신이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으로 교도소에 가게 되자 정씨는 한씨에게 “여기서(교도소) 나가면 함께 살자”며 “영치금 좀 넣어 달라”고 뻔뻔스러운 부탁까지 했다.
하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듯이, 정씨는 돈이 필요할 때면 한씨에게 연락해 갖은 말로 유혹하다가도 한씨에게서 돈을 받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매몰차게 돌아섰다. 그런데도 한씨는 정씨만을 바라보며 정씨의 마음이 자신에게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던 2002년 11월 정씨는 한씨에게 상식적으론 ‘사랑하는 이에게 거론할 수조차 없는’ 일을 부탁해왔다. “미아리 업소에 내가 아는 여자가 있는데 잠시 동안만 그 사람 대신해서 일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얘기였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산 정씨는 ‘미아리 업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더욱이 정씨가 잘 안다는 여자도 정씨의 또 다른 애인이라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정씨는 자신의 또 다른 애인을 빼내오기 위해 한씨의 ‘순애보’를 이용했던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던 한씨는 ‘미아리 업소’를 정씨의 말대로 “그냥 술 파는 가게” 정도로 생각하고 ‘텍사스촌’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 그러나 한씨는 거기서 ‘지옥’을 경험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들과 매일 살을 비벼대야 하는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후일 한씨는 검찰에서 “그 곳이 성매매 업소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당시 생활이 너무 힘들어 떠올리기도 싫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씨는 일주일여 만에 미아리 텍사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가닥 양심 때문인지 정씨가 한씨의 ‘구조 요청’ 전화를 받고 그녀를 다시 빼냈던 것. 그러나 그후 한씨는 자신의 처지를 절망해 자살을 기도하는 등 심한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그때로부터 2년이 흐른 지난 11월4일 한씨는 순애보를 바쳤던 대상인 정씨를 의정부지검에 고소했다. 현재 정씨는 사기 및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한씨는 대체 왜 2년이 지난 후에야 정씨를 고소했을까.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씨가 자신이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나서도 정씨의 마음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이 한순간 증오로 바뀌면서 결국 고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씨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피해자 진술을 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미 필요한 절차는 다 밟았기 때문에 피해자 한씨의 추가 진술 없이도 사건을 처리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정씨는 한씨를 몇 번 만난 적밖에 없고 한씨를 미아리 텍사스로 데려가 성매매를 시킨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이 미아리 텍사스를 관할하고 있는 파출소의 성매매 업소 종사자 출입명부를 확인한 결과 한씨의 진술대로 2002년 11월 한씨가 정씨의 관리업소에서 성매매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정씨는 적반하장 격으로 검찰 조사에서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검찰 진술에서 “한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여러 번 노력했지만 한씨가 집요하게 매달려 헤어질 수 없었다. 한씨는 내가 유부남이고 한씨 말고도 다른 애인이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직업이 뭔지도 알고 있었다”며 “오히려 한씨 때문에 내가 이혼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씨가 스토커처럼 달라붙어 자신이 오히려 피해를 봤다는 정씨의 주장. 하지만 그 주장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정씨는 성매매 알선행위에 대해선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오랜 객지생활과 외로움에 지친 한씨가 정씨에게 많이 매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성매매까지 시킨 사람인데 한씨는 그후에도 정씨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썼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한씨는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휴대폰도 요금을 내지 못해 정지된 상태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모아 모두 정씨에게 대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탓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한씨가 외로움에 지쳐 자신에게 상처만 준 정씨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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