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진 교주의 사체가 발견된 건물 전경. | ||
지난 12월14일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경기도 용인시 ○○면의 A사회복지법인 건물 지하에서 종교집단 교주 송아무개씨(99년 당시 49세)의 시신을 발굴하고 그간 사체를 숨겨온 신도 4명을 체포했다. 수사대는 이들 중 2명을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하고 살해 여부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이날 공개된 미로 같은 지하실의 내부. 이 지하실은 외부인의 손길이 전혀 닿을 수 없도록 철저하게 감춰진 ‘비밀의 성지’였다. 특히 교주의 시체가 발견된 지하 예배당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중 삼중의 비밀문과 철문, 그리고 어둡고 긴 복도를 지나야만 했다. 도대체 왜 이들은 이같이 은밀한 지하실을 만들었던 걸까. 또 교주의 죽음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 사건의 현장을 찾아 이런 의문점들을 파헤쳐 보았다.
교주 송씨가 이끌던 종교집단은 과거 송씨 자신의 이름을 따 ‘송○○의 유일신교’라 불렸다. 송씨를 ‘능력자’로 섬긴 이 종교의 교리는 기독교와 불교를 혼합해 만든 것이었다. 실제로 지하 예배당에 있는 ‘교주의 자리’에선 각종 성경책 6권과 불경 1권, 반야심경이 새겨진 석판이 발견됐다.
송씨는 죽기 전까지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정도 A법인의 복지시설에 들러 밤을 새워 신도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예배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한창 때엔 신도들이 매일 아침과 저녁에 줄을 지어 예배를 보러 다녔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 한 20대 여성은 송씨의 수발을 들고 밥을 지어주며 가까이서 모시기도 했다고 한다.
송씨는 이 건물 지하에 위치한 자신의 밀실에서 신도들을 상대로 특이한 ‘기치료’를 베풀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도들의 배에다 ‘안티프라민’ 등의 소염진통제를 바른 뒤 손으로 문질러 뱃가죽 색깔이 검게 변하면서 병이 낫도록 하는 시술을 펼쳤다는 것. 송씨의 신도들은 대부분 송씨의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교주를 지내기 이전 송씨의 과거사는 거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주변에 알려진 바로는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따서 한때 교단에 섰다고 하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송씨의 동생은 경찰 조사에서 “(형이) 본처와 후처 사이에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집안일과 자식은 나몰라라 하고 팽개치고 다녔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과거 송씨는 기치료 능력으로 입소문을 탔고 이와 관련해 사기죄로 구속된 전력도 있다고 한다.
‘절대자’로 군림하던 송씨의 모습이 문제의 복지법인 주변에서 사라진 것은 지난 99년 10월 하순부터. 신도들 사이에선 송씨가 부활과 영생을 시험하기 위해 긴 잠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뒤에 송씨는 마치 미이라와 같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지하 밀실에 숨겨졌던 송씨의 주검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사건의 무대가 된 A사회복지법인의 복잡한 내부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 사회복지법인 전체가 송씨의 교리를 따르는 신도들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 신도의 수는 10여 명으로 법인 운영권을 높고 그간 신도들과 비신도들 간에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갈등의 뿌리는 A사회복지법인이 세워질 때로 거스러올라간다. A사회복지법인이 장애인 보호시설로 허가를 받고 건물 공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87년부터. 당시 설립자는 이아무개씨(56) 부부 등 총 9명으로 모두가 교주 송씨를 따르는 신도들이었다.
하지만 이씨 등은 곧 자금난에 봉착했고 이내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자 송씨는 자신에게 기치료를 받아 알게 된 현재의 대표이사 손아무개씨(여·57)에게 복지시설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 송씨 사체가 발견된 방. 구속된 신자들에 따르면 송씨가 부활 후에 침대 옆의 전화로 연락을 약속했다고 한다. | ||
그러나 뒤늦게 시설의 대표이사로 들어온 손씨가 운영권을 장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손씨는 “그간 저들(신도들)과 싸우면서 시설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손씨에 따르면 현재의 시설 규모로 보아 좀더 손질하면 장애아동 1백 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이씨 등의 반대로 시설 수리와 리모델링을 하지 못해 더 많은 인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초기 설립자인 이씨 쪽에서 자신의 대표이사 해임을 요구하는 소송을 해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맞소송을 하는 등 내부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상태라는 것.
이처럼 손씨와 이씨 양측이 첨예한 대립을 하는 와중에 교주 송씨의 ‘석연치 않은 증발’에 대한 얘기가 외부로 흘러나왔고, 경찰 또한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교주 송씨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풀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과연 송씨는 자연사 후에 암매장당한 걸까, 아니면 타살당한 걸까.
대표이사 손씨측은 송씨가 타살당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복지시설을 종교 및 생활 방편으로 삼으려던 이씨 등이 교주 송씨가 점차 신망을 잃어 종교집단이 와해위기에 처하자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송씨를 제거하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려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장애인 복지시설은 정부에서 운영 지원금을 받는 데다가 연말에 성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충분히 종교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 현재 A사회복지법인은 용인시로부터 매달 5천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손씨측은 이씨 등이 교주 송씨를 내세워 기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시설에 대한 투자를 권유했고, 또 시설 내부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직원들을 포섭하기 위해 송씨를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송씨의 기치료가 점점 효험을 잃어가고 신도들에게도 불만이 쌓이게 되자 이씨 등이 송씨를 살해하고 난 후 ‘영생과 부활을 시험하기 위해 잠에 들었다’며 송씨의 죽음을 신비화해 다른 신도들의 불만을 잠재웠다는 것이 손씨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신도 이씨 등은 살인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자신들은 송씨가 죽기 직전에 영생과 부활을 예언했기 때문에 유언대로 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실에 시체를 방치한 것은 순수하게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것이지 살해할 이유나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살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송씨가 죽은 지 너무 오래 돼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다만 보통의 시신에서는 위 속의 내용물이 발견되는데 반해 송씨의 위에서는 아무런 내용물이 발견되지 않아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 등이 송씨를 지하에 가두어둔 채 굶어죽도록 한 것이 아닌가 보고 수사를 진행중이나 지하 밀실의 냉장고에 음료수와 음식이 남아 있던 점 등으로 보아 다른 경우의 수도 고려하고 있다. 또 밀실의 내부 온도가 섭씨 18도, 습도는 80%를 넘는데도 시신의 부패가 덜한 것으로 보아 송씨가 다른 곳에서 죽은 후 이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씨 등이 너무 강력하게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시체은닉 혐의로 이씨와 신아무개씨를 지난 16일 구속했다. 이들은 송씨 죽음 이후 교주로 행세해 오고 있었다. 상해치사 혐의로 함께 체포되었던 이들의 부인 임아무개씨와 장아무개씨는 현재 불구속으로 풀려나온 상태다.
과연 송씨는 생매장돼 굶어죽거나 다른 곳에서 피살된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자연사가 엉뚱하게 포장되고 있는 걸까. 향후 경찰이 내놓을 결론이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