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휴가를 25번이나 내는 사람도 봤다.”
A 기관에 입사한 지 3년차인 ㄱ 씨는 같은 팀 차장의 휴가 ‘릴레이’에 숨 돌릴 틈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휴가를 쓰는 통에 업무 지원을 하느라 정작 본인의 업무는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ㄱ 씨는 “입사 초반에는 ‘도대체 이곳은 연차를 며칠이나 주는 건가’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비밀은 대휴에 있었다”고 말했다.
A 기관은 주말근무 수당이 없는 대신 대휴신청을 할 수 있다. ㄱ 씨 팀의 차장은 별 일도 없는 주말에 나와 한 시간 남짓 근무를 하고 대휴를 챙겨왔던 것. 이렇게 늘어난 휴가가 25일이나 됐다. “여름휴가를 제외하고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꼬박꼬박 쉬니, 누군가는 그만큼 더 일해서 팀 업무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ㄱ 씨는 토로했다.
이런 상황은 B 기관도 마찬가지였다. ㄴ 씨는 “물론 주어진 휴가가 있으면 다 쓰는 게 맞다. 하지만 계획도 없이 써대니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ㄴ 씨는 “프로젝트 마감일인데 휴가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마감일엔 문의전화가 몰리기 마련인데 ‘담당자가 휴가다’라는 대답을 하니 나도, 전화건 사람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라고 털어놨다. C 기관에서 일하는 ㄷ 씨 역시 “심하면 ‘날이 궂어서 못 나오겠다’며 아침에 휴가를 쓴 사람도 있었다. 일반 기업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고 털어놨다.
느슨한 근태 분위기가 만연한 기관도 있다. D 기관에서 일하는 ㄹ 씨는 “오후 다 돼서 출근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그리고 근무시간엔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떤다. 심지어 헬스장에서 목격한 사람도 있다. 사무실에선 담당자 찾느라 전화에 불이 나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도대체 다들 일 안하고 어디 갔어?’라고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부 공공기관에선 낮술 분위기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E 기관에서 일하는 ㅁ 씨는 때때로 이어지는 낮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분이 점심식사 자리에 끼면 어김없이 소주를 시킨다. 특히 국밥집에 가는 날은 여지없다. 술을 즐기지 않는 터라 그날 점심메뉴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ㄷ 씨는 “간단하게 술 마시고 오후 업무를 잘 하면 사실 크게 문제 삼을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업무 지장을 줄 정도로 과음하고 오후 내내 사우나로 도망가 버리면 사무실에 남아있는 직원들은 정말 답 없다”고 말했다. F 기관에서 일하는 ㅂ 씨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관장에 따라 근무 분위기가 바뀌는 탓에 요즘은 낮술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물론 근무태만은 각 기관 중에서도 극히 일부 직원의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근무태만을 일삼는 직원이 한 명이 됐든, 두 명이 됐든 회사 차원에서 제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팀제로 돌아가는 업무 특성상 누군가는 꼭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앞서의 ㄴ 씨는 “승진에 관심 없는 사람은 어떻게 근무해도 ‘언터처블’이다. 성과급도, 승진도 관심이 없는데 무슨 수로 동기부여를 하겠느냐”며 근무환경에 대해 꼬집었다. 또 “조직 특성상 피해를 보는 건 막내 직원들이다. 일은 가장 많이 하면서 근무평가도 제일 못 받게 된다. 아무리 일을 안 해도 인정상 매번 하위등급을 주진 않기 때문에 만만한 막내 직원에게 낮은 평가를 돌린다”고 털어놨다.
이런 근무환경에도 ‘2진 아웃제’를 반기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앞서의 ㄹ 씨는 “향후 부장급 이하로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잘리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ㄹ 씨는 “근무평가는 상향평가, 하향평가 모두 이뤄지지만, 부장 이상의 간부급 직원이 직권으로 점수를 조정할 수 있는 비율이 있기 때문에 직원 평가에서 2년 연속 D를 받게 되더라도 간부급에서 점수를 바꾸면 그만이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ㄴ 씨 역시 2진 아웃제 도입에는 회의적이었다. “물론 마음 같아선 진짜 잘렸으면 하는 직원도 분명 있다. 하지만 지금의 근무 평가방식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이대로 2진 아웃제가 도입된다면 불공정한 심사가 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현재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업무 평가 방식은 어떤 성과를 냈느냐를 집중적으로 본다. 하지만 기관 특성상 돈만 잘 버는 게 목표가 아닌데도, 평가는 수익 위주로 보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게 ㄴ 씨의 설명이었다.
ㄱ 씨 역시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평가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2진 아웃제 도입을 반대했다. ㄱ 씨가 반대하는 이유도 평가방식에 있었다. 공공기관은 본인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정리만 해서 다른 사람이 진행하도록 넘겨주는 경우도 있고, 수익을 내는 건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성과의 기여도 측정이 어려운 구조다. 때문에 매년 인사평가에서도 기관 내부에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취재 과정 중 만난 직원들의 공통된 대답은 하나였다. 치명적인 비위를 저지른 사람부터 제대로 자를 수 있어도 환경이 많이 변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ㄹ 씨는 “얼마 전 성추문을 저질러서 크게 문제가 됐던 사람이 있었다. 근데 이번 인사이동에서 오히려 영전했다. ‘라인’을 잘 탔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런 직원부터 확실히 잘라낼 방법을 고민해야지 제대로 실행도 안 될 2진 아웃제 맨날 얘기만 하면 뭐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황당 공무원 사례 “우리 딸 결혼합니다” 축의금 사기극도 공직사회 2진 아웃제 도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에는 3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2진 아웃제가 도입된 바 있다. 이번에 도입되는 제도와 마찬가지로 두 차례 이상 최하위 등급을 받으면 자동으로 면직되는 제도였다. 또 정부 출연 연구소는 3년 연속 최저 등급자를 퇴출하는 제도를 10년 넘게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앞선 모든 제도가 도입됐음에도 2진 또는 3진 아웃으로 퇴출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불특정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한 협박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황당한 것은 실제로 이 협박범에게 돈을 보낸 공무원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려 6명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협박범이 알려준 계좌로 총 2600만 원의 돈을 보냈다. 민원인과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는 공무원도 많다. 2011년에는 법원 공무원이 민원인의 전화를 응대하다가 ‘또라이’라고 막말을 던져 한바탕 온라인이 떠들썩해졌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시의회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 여직원들에게 “XX년, 한 번 줄래”, “내 물건은 수도꼭지 기능밖에 못 한다” 등의 언어폭력을 해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전 국민이 세월호 사건으로 비탄에 빠져 있을 때도 업무시간에 불륜을 저지르고, 골프 접대를 받은 공무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경상남도 창녕군의 일부 고위 공무원이 직무관련 업자들과 골프 동호회를 통해 지난해 4월에서 5월 사이에 수차례 접대를 받은 사실이 포착됐다. 또 경남 진주시청 간부인 공무원은 지난해 4월 16일 오후 근무지를 이탈해 내연녀를 만나 모텔을 가고, 쇼핑을 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직위를 이용해 황당한 소동을 벌인 공무원도 있었다. 지난해 5월 전남 여수시청 50대 공무원은 딸을 결혼시킨다며 동료들과 업무 관련자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고 계좌번호까지 안내해 축의금으로 수백만 원을 챙겼다. 알고 보니 결혼한다는 딸은 이혼한 전 부인과 재혼한 남편 사이에 낳은 딸로, 해당 공무원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세금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부당하게 가로챈 공무원의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2013년 부산에서도 수억 원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횡령한 공무원이 적발됐다. 회계 관리를 하던 공무원이 직원 보수 총액을 부풀려 차액을 자신의 가족 명의의 계좌로 입금했다. 이 직원은 1년에 약 1억 원씩 뒷돈을 챙기며 범행을 3년이나 이어갔지만 발각되기 전까지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지난 2012년 10월에는 전남 여수시 공무원이 무려 76억 원의 공금을 횡령하고 적발되자 정신병자 행세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 공무원은 횡령이 발각된 후 자살을 시도했으나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구했다. 이후 공무원의 이상행동은 시작됐다. 조사를 나온 경찰에게 횡설수설하며 이상행동을 했으나 자작극이었음이 들통 났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