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품은 여심’ 연적밖에 안보였다
사건의 장본인은 전직 여교사인 김아무개씨(30). 비극은 김씨의 비정상적인 집착과 복수심, 그리고 상대 남성의 ‘양다리 연애’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온 A씨(30)가 돌연 헤어질 것을 통보한 후 장아무개씨(여·27)와 혼인신고를 하자 이에 격분, 인터넷 청부업자에게 9백만원을 주고 장씨의 살인을 청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남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사건의 뿌리는 5년여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서울 강남의 한 사립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김씨는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생인 A씨와 만나 교제를 시작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혼담이 오갔고 김씨는 A씨의 부모에게 인사도 드리며 곧 결혼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던 지난해 양가의 상견례를 앞두고 A씨가 돌연 김씨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해왔다. A씨는 김씨와 교제하면서 김씨 몰래 장씨와도 결혼을 약속하고 교제중이었던 것. 결국 파혼당한 김씨는 충격으로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두고 A씨 주변을 맴돌며 장씨와 헤어질 것을 종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김씨가 동료교사들에게 곧 결혼한다고 발표까지 한 마당에 A씨에게 파혼당하고 학교 주변에 소문까지 나자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인 김씨는 인터넷에서 ‘연적’인 장씨의 미니홈피를 찾아내 심한 욕설과 인신공격성 글을 남겼다. 또한 이메일을 통해 “A씨는 내 남자다”라며 헤어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씨는 장씨만 없으면 A씨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한번은 김씨와 장씨, A씨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장씨와 A씨로부터 “우리는 곧 결혼할 것이니 다 잊어버리라”는 말을 듣고도 김씨는 더욱 더 A씨에 매달리며 집착했다. 그러던 지난 3월 A씨는 장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동거에 들어갔다. 올 10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두 사람이 사실상 부부관계를 시작한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안 김씨는 그만 ‘몹쓸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수사관은 “김씨가 A씨에 대한 배신감을 장씨에게 모두 쏟아부었다. 김씨는 장씨가 죽으면 A씨와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전했다.
마침내 김씨는 장씨를 죽이려고 결심하고 지난 5월 한 인터넷 청부업자에게 1천만원을 건네며 살인을 청부했다. 그러나 이 청부업자는 김씨의 돈만 가로채고 도망가 버렸다.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지만 김씨의 청부는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6월4일 다시 인터넷에서 ‘청부업자1’이라는 카페를 찾아내 현아무개씨(33·특수절도 3범)에게 장씨의 살해를 부탁했다.
김씨는 먼저 현씨에게 착수금 3백만원을 건네며 장씨의 인적사항과 주소,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다. 나머지 6백만원은 ‘일’이 끝난 후 주기로 약속했다. 이에 현씨는 장씨를 미행하며 김씨에게 “미행중 놓쳤다” “주소지에 잠복하러 간다” “주차장을 확인했다”는 등 수시로 상황을 보고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지난 6월24일 오전 8시께 장씨가 출근을 하기 위해 집 근처 공영주차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장씨가 자신의 승용차에 오르려는 순간 다가간 현씨는 흉기를 수십 차례 휘둘러 장씨를 살해하고 만다. 범행 후 현씨는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장씨의 지갑을 훔쳐오기도 했다.
뉴스 등을 통해 장씨가 살해된 것을 확인한 김씨는 ‘잔금’ 6백만원을 택배로 현씨에게 보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용의주도하게 행동했던 것.
그러나 수사 초기부터 김씨는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흉기로 난자한 살해 수법으로 보아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숨진 장씨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와 장씨가 A씨를 사이에 두고 심하게 다툰 사실을 밝혀내고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주목했던 것.
또 다른 단서도 하나둘씩 확인됐다. 김씨가 정체가 불분명한 특정 계좌에 거액을 송금한 흔적이 발견됐고, 근래 들어 김씨가 자주 통화한 휴대폰이 외국인 명의의 이른바 ‘대포폰’(남의 명의를 도용해 개설한 휴대전화)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경찰은 애초 김씨가 직접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으나 이런 단서들을 통해 ‘청부살해’ 쪽으로 수사 방향을 틀게 됐다.
결국 경찰은 김씨가 현씨의 인터넷 청부카페에 접속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확보하고, 3백만원을 현씨가 보유한 ‘대포통장’으로 입금한 사실을 밝혀내 지난달 10일 김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김씨는 당시 청부업자 현씨가 검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혼내달라고 했을 뿐 죽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라고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한 수사관계자는 “김씨가 부인하고 있지만 청부업자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 이메일을 확보했다”며 “단지 혼내 달라고 1천만원을 주는(1차 청부 시도) 사람이 어딨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마침내 도피중이던 현씨가 경찰의 IP추적으로 지난 8일 검거됐고, 현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경찰은 현씨의 집에서 숨진 장씨의 지갑과 장씨의 주소와 휴대폰 번호 등 인적사항이 적힌 메모를 압수했다.
김씨는 청부업자들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깨는 등 자신이 교사와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알뜰히 모은 돈 모두를 날려버려 지금은 빈털터리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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