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끔찍한 ‘공공의 적’
광주 광산경찰서는 잠자고 있던 노부모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양아무개씨(31)를 지난 15일 긴급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군 제대 후 특별한 직업도 없이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며 지내온 양씨는 사건 당일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용돈을 달라”고 했다가 아버지(61)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듣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진술에서 양씨는 “아버지에게 혼나고 밖에서 혼자 소주 1병을 마시고 들어와 집에 있는 망치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범행을 했다”고 말했다. 존속살인이라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에는 너무도 어이없는 범행동기였다.
당초 경찰은 지난 6월 양씨의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 점을 들어 양씨가 퇴직금이나 상속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한 수사 관계자는 “양씨의 아버지는 연금수령자여서 퇴직금 같은 큰돈은 없었다. 양씨의 진술대로 취중에 우발적으로 부모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부모에게만 의지하며 살아왔다. 부모의 등쌀에 마지못해 취직 자리를 알아보긴 했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반 백수’ 생활을 해오면서도 양씨의 씀씀이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고, 이는 빚으로 이어졌다. 양씨가 연체한 신용카드 대금 1천만원을 부모가 대신 갚아주면서 양씨는 자신의 카드와 통장 모두를 부모에게 ‘압수’당하고 만다. 졸지에 매일 집에서 용돈을 타 써야 하는 처지가 된 것. 이 과정에서 양씨는 부모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양씨의 이성문제도 잦은 불화의 또 다른 원인이었다. 어머니 박씨는 직업도 없는 아들이 바(bar)에 다니는 여자친구 A씨를 사귀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한번은 박씨가 양씨에게 걸려온 A씨의 전화를 받아 “내 아들이 직장이 없는 걸 알면서도 만나느냐”며 양씨의 평소 행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후 A씨는 양씨가 직장도 없으면서 회사원인 것처럼 속인 것에 실망해 한동안 양씨를 멀리하기도 했다. 양씨는 간신히 A씨의 마음을 돌려 다시 교제하게 됐지만 이때부터 어머니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품게 됐다.
사건 발생 후 장례를 치르면서 양씨는 어머니에 대한 이 같은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양씨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분향소를 따로 차린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분향소만을 지킨 채 어머니의 분향소에는 발길도 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발인(發靷) 날에도 아버지를 모신 영구차에 타고, 장지(葬地)에서도 아버지의 묘에만 흙을 뿌려주는 등 어머니 박씨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경찰은 부모와 함께 살던 큰아들 양씨의 사건 당일 행적을 수상히 여기고 장례식 후, 이를 추궁한 끝에 양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받았다. 수사 결과 양씨의 범행동기도 어이가 없었지만, 범행 후 그의 행동은 더욱 기가 찼다.
양씨는 사건 당일 새벽 3시께 잠자고 있던 부모님을 망치로 20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후 옷을 갈아입고 태연히 여자친구 A씨를 만나러 나갔다. 양씨는 A씨와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다시 새벽 6시께 집에 들어와 부모가 피를 흘리고 쓰러진 안방에서 옷장을 뒤져 아버지의 지갑을 들고 나왔다. 용돈 몇 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후 다시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모텔과 PC방을 전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수사관계자는 “용돈 몇 푼 때문에 부모를 살해한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범행 후 양씨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다. 장례식에서도 상주 노릇하며 그렇게 태연하고 담담하게 행동하다니…”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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