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강도살인 및 사체 훼손 피의자 박아무개씨가 천안 살인사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천안사건에서 ‘시간’은 없었다. | ||
전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5일 강도살인 및 사체훼손 혐의로 박아무개씨(26)를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강도, 강간 및 특수절도 5범으로 지난 3월 출소하자마자 먼저 출소한 교도소 동기 이아무개씨(22·절도 14범)와 함께 충청·전라지역에서 1백여 차례에 걸쳐 절도행각을 벌여왔다. 이 와중에 박씨는 혼자서 강도살인을 두 차례 저지르고 시체에 몹쓸 짓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체 박씨는 왜 이 같이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4월8일. 이날 새벽 4시께 밖에서 소주 1병을 마시고 귀가하던 박씨는 익산 시내 주택가를 지나가던 중 ‘직업 본능’이 발동했다. 한 2층집에서 부부가 새벽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집이 비었을 것으로 여겨 털기로 결심한 것.
그러나 당시 이 집에는 이아무개씨(여·23)가 잠을 자고 있었다. 집 안에 침입한 박씨는 부엌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부엌칼을 꺼내 쥐고는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낯선 인기척에 이씨가 잠에서 깨어나자 박씨는 다급히 흉기를 들이댔다. 더욱 놀란 이씨는 강하게 저항했고 결국 박씨는 이씨의 가슴과 옆구리 등을 무참히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이씨가 어찌나 반항하던지 그냥 찔러버렸다”고 태연히 말했다.
범행 과정에서 자신의 옷에 피가 많이 묻게 되자 박씨는 먼저 이씨 집에 있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곤 자신의 옷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현장에서 도주하려 했다.
그러나 숨진 이씨를 보고 돌연 성욕을 느꼈다고 한다. 박씨는 “성폭행할 생각은 없었는데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이씨를 보고 욕정을 느껴 범행을 하게 됐다”며 “술을 마시면 가끔씩 욕정을 느끼는데 한번 발동하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다”라고 털어놨다(아래 기사 참조).
욕정이 발동한 박씨는 숨진 이씨를 이불에 싸서 살해 현장에서 20m가량 떨어진 이웃 2층집 옥상으로 옮겼다.집안에서 성폭행을 하면 이씨 가족들에게 들킬까봐 염려됐기 때문이었다.
그뒤 박씨는 사체를 상대로 자신의 변태적인 성욕을 채웠다. 사건 현장에서 도망가던 중 이씨의 집에 범행에 사용한 부엌칼을 두고온 사실을 떠올린 박씨는 다시 이씨의 집에 들어가 부엌칼을 수거했다. 그리곤 자신의 피 묻은 옷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이씨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쓰레기통에 버린 뒤 태연히 택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박씨는 “소주 1병을 마시고 우발적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일련의 범행 과정은 너무나 침착하고 대담했다.
▲ 마스크로 얼굴 가린 살인 피의자. | ||
그러나 박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이씨의 사체가 발견돼 동네 주민들과 출동한 경찰들로 온통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박씨는 혹시 뒤따를지 모를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익산 집을 떠나 충남 천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뒤 천안에서 건설 현장을 떠돌던 박씨는 익산 사건 한 달 후인 지난 5월5일 새벽 천안시 신부동에서 두 번째 살인을 저질렀다. 이때도 박씨는 소주 1병을 마신 상태였다.
당시 박씨는 한 원룸 주택에 침입해 혼자 자고 있던 신아무개씨(여·20)의 눈과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손발을 결박한 뒤 미리 준비한 과도로 신씨를 찔러 숨지게 했다. 이 범행으로 박씨가 손에 쥔 것은 단돈 5만원뿐이었다.
박씨는 천안 사건에서는 시간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박씨는 “신씨를 성폭행할 생각은 없었고, 단지 돈이 필요해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다르게 보고 있다. 한 수사관은 “단돈 5만원을 빼앗으려고 피해여성을 완전히 제압한 후에 흉기로 죽였겠나. 익산 사건에서처럼 사체를 성폭행을 하려다가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씨가 익산 사건에서 자신의 정액을 통해 이미 DNA가 검출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추적망이 천안까지 좁혀질 것을 우려해 두 번째 살인에서는 차마 시간을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천안 사건 후 박씨는 경찰의 추적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미 범인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확보한 상태였다. 익산과 천안 살인사건 현장에서 동일한 형태의 족적을 찾아냈고, 두 사건의 범행수법에서 유사점을 발견해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 쪽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던 것.
또한 경찰은 익산 사건의 경우 범행 당일 행적으로 보아 △범인은 이 지역에 상당한 지리감이 있는 사람이며, △특히 범행의 잔인함으로 보아 분명 살인이나 강간 전과가 있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수사망을 좁혀나갔다.
충청·전라 지역의 동일 수법 전과자와 최근 출소자들 중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2만5천 명을 정밀 분석해 하나하나 용의선상에서 지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또한 익산 사건 현장 인근에 버려진 범인의 옷에서 ‘○지○○’이라는 세탁 라벨을 발견해, ‘○지’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전국 세탁소와 숙박시설, 원룸 등 2만여 개를 대상으로 탐문수사도 진행됐다.
그러던 중 경찰은 박씨가 출소 후 자동차를 훔쳐 절도행각을 벌이고 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박씨의 익산 고향집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박씨의 최근 행적과 전력은 경찰이 그려놓은 범인의 밑그림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이즈음 서울에서 막노동을 하며 숨어 지내던 박씨는 일거리가 떨어지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익산과 전주 등지를 배회하다 결국 경찰에 검거됐다. 한 수사 관계자는 “박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병적일 정도로 성(性)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신감정을 의뢰해야 할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성도착 정도가 심하다 할지라도 흉기에 난자돼 피로 범벅된 사체를 보며 과연 성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박씨는 “한번 생각나면 나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다. 두렵기도 했지만 그냥 (시간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기자와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 주위를 더욱 놀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