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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령범 안아무개씨가 전세로 얻은 아파트에 숨겨둔 돈 4억1천3백만원. 1만원권 현금으로 종이상자와 여행용 가방 등에 가득했다. 안씨는 당초 경찰에 검거된 뒤 8만1천원만 남았다고 거짓 진술했지만 하루 만에 들통이 났다. | ||
이 남자는 지난 8월 경남 마산의 한 재건축조합의 아파트 중도금 74억여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차량에 싣고 달아났던 재건축 시공사 직원 안아무개씨(39). 옆에는 김아무개씨(38여)가 앉아있었다. 김씨는 3년 전 부동산 문제로 우연히 안씨와 알게 돼 가깝게 지내며 도피생활을 도와주다 함께 붙잡혔다. 마산 중부경찰서는 안씨를 횡령혐의로 구속하고 동승했던 김씨를 장물취득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 사건은 평범한 회사직원이던 안씨가 허영에 들떠 분수에 넘친 호화생활을 하다 마침내 회사 돈을 횡령하는 파렴치범으로 변해 버린 전형적인 화이트 칼라 범죄였다. 사건 자체로는 안씨가 자금담당직원이라는 점을 이용해 74억을 인출해 달아난 원시적인 범행이었으나 단일 횡령사건으로는 최고 금액이라는 점에서 경찰이 총력 수사를 펴온 사건이었다. 사건 경위는 이렇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8월26일 오전 안씨는 회사 돈이 예치된 국민은행과 농협에 연락해 “추석을 앞두고 현장직원의 급여가 필요하다”며 74억 전액을 모두 1만원으로 바꿔 마산시 교방동에 있는 재건축 사무실로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승합차에서 운전석과 조수석만 남기고 모두 떼어내고 돈자루를 25개를 실었다. 이 돈자루의 무게만 1톤. 안씨는 이 돈자루 가운데 7자루(21억원)를 충주 처형집에, 서울 여동생 집에 7자루(21억원)를 전달했다. 이어 서울에 사는 손위 처남을 찾아가 돈자루 1개(3억원)를 전달하며 “그동안 소홀해서 미안했다”며 “집사람과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말은 남기고 나간 후 행방을 감췄다.
주위 사람들은 안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전부터 어렴풋이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안씨는 평소 입담도 좋고 허풍도 심해 주변 사람들은 안씨가 배경 좋고 부유한 집안의 자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2002년 대선자금 수사로 이름을 날렸던 대검찰청 고위간부를 거명하며 “우리 큰아버지다”라고 거짓말을 하며 허풍을 떨기도 했다. 또 수사팀 주변에서는 안씨의 친동생이 모 유력일간지 기자여서 이 점도 안씨가 허세를 부리는데 이용했다고 한다.
이런 허풍에 회사도 속아 넘어갔는지 직장에서도 신뢰를 받아 자금담당 실무를 맡았다. 경찰은 “안씨가 처신도 좋아 직장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회사로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었던 것이다.
안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기도 일산 자택에 대한 조사를 벌이던 경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중견건설사 차장이지만 봉급생활을 하던 회사원치고는 상상할 수 없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씨의 집은 일산신도시 중심지 주상복합아파트로 70평에 달했으며 안씨의 아내는 다이너스티와 그랜저XG 승용차를 몰고 다녔기 때문.
안씨의 직장 임원들도 이런 안씨가 정말로 대단한 인물인 줄 알고 스스럼없이 큰돈을 빌려줬다. 직장 상사들은 안씨가 “대부업을 하는 형이 있는데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5억원이나 빌려줬다.
그러나 안씨의 분수에 넘치는 호화생활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직장 동료나 상사들로부터 돈을 빌려 쓰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씨는 경찰에서 “채무관계로 인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다 돈 욕심 때문에 결국 회사 돈에 손을 댔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러나 범행 직후 친인척들에게 45억원이나 되는 돈을 나누어주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엉뚱한 행동을 한 부분에 대해 경찰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한 경찰은 “안씨가 복잡한 채무관계와 원만하지 못한 가정생활 등으로 고민하다 여기에 돈 욕심까지 보태져 이런 범행을 한 것 같다”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던 안씨가 마지막 이별 수순으로 친인척들에게 거액의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안씨는 횡령한 74억원 중 45억원은 친인척에게, 5억원은 채무자에게, 19억원은 주식 및 유가증권 구입에 사용하고 나머지 5억원은 도박과 경마, 도피자금으로 사용해 “남은 건 호주머니 속 8만1천원이 전부”라고 검거 당시 털어놨다. 그러나 경찰의 보강 수사 결과 도피자금으로 5억원을 사용했다고 한 것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안씨는 범행 전 미리 마련한 경기도 용인의 한 전세아파트에 현금 4억원을 숨겨뒀다가 들통 났다. 또 범행 후 해외로 도주하기 위해 위조 여권을 만들려다 사기를 당하고 수천만원만 날리기도 했다. 안씨가 횡령한 74억원 중 아직 회수되지 못한 돈은 1억원 남짓. 그러나 한 수사관계자는 “안씨가 워낙 입담이 좋고 거짓말을 잘해 안씨의 진술을 믿을 수가 없어 계속해서 수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해외도피가 어려워지자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쓰는 등 철저하게 변장한 채 주로 대중교통과 공중전화만을 이용, 김씨와 함께 경기도, 강원도 일대를 돌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려 왔으나 오랜 도피생활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검거 당시 승용차로 이동하다 덜미가 잡혔다. 분수를 모르는 한탕주의 인생의 말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