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주인공은 김아무개씨(45). 김씨가 마약판매혐의로 수사기관에 검거된 것만 8차례. 그동안은 김씨도 말기 암 환자라는 이유에서 모두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관용을 비웃는 듯한 김씨의 범죄행각에 검찰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법원도 지난달 21일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에 따르면 김씨는 2003년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며 결혼해 자식도 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러나 2003년 간암 선고를 받고 회사를 그만둔 후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약판매에 나선 것이다.
검찰은 김씨가 이때부터 작정을 하고 마약판매상으로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2003년 처음 붙잡혀 재판을 받던 김씨가 법원에 간암 진단서를 제출했고 법원에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전했다.
암 환자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더라도 법원이 기각하는 게 보통이다. 또한 김씨와 같은 말기 암 환자는 구속되더라도 확정판결 이전에 숨질 가능성이 높아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김씨가 두 번째로 붙잡힌 것은 지난 4월1일. 그때도 대구지검에 의해 마약판매혐의로 구속 기소됐지만 다음날 법원의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당시 김씨는 대구의 한 병원으로 거주지가 제한됐지만 여기서도 마약판매를 멈추지 않았다. 김씨는 입원 중임에도 소포를 이용해 필로폰을 팔아왔던 것이다. 김씨는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는 어려우니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고 퇴원했지만 다시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약을 팔아왔다.
그 후로 6개월 동안 김씨는 검찰과 경찰에 6번이나 붙잡혔다. 매달 한 번씩 검거된 셈. 그러나 김씨는 수사기관에 붙잡힐 때마다 수사에는 거의 응하지 않은 채 품속에 지니고 있던 간암말기 진단서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때마다 김씨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풀려났다.
두 번이나 김씨를 검거했던 서울 중앙지검의 수사관은 “지난 9월 경북 추풍령휴게소에서 김씨를 검거했을 때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척 보아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처럼 보였고 혼자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당시 아무 사정도 모르는 김씨의 아들이 옆에서 김씨를 부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 담당의사로부터 “살 수 있는 날이 길어야 8개월”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풀어주며 “또 다시 마약을 팔다 걸리면 그때는 구속해서 정식재판을 받게 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그러나 한 달 후 김씨는 다시 서울 중앙지검에 검거됐던 것이다. 검찰은 “김씨에게 여러 차례 기회를 줬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관용을 베풀었지만 재범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전했다.
김씨를 검거한 수사관은 “처음 검거했을 때보다 김씨의 건강상태가 많이 호전돼 보였다. 얼굴 색깔도 좋아보였고 혼자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한 달 전에 수술을 받아 좋아진 것이라고 하더라”며 “수술한 지 한 달도 안 돼 또 다시 이런 일을 하고 다니는 김씨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마약은 팔아왔지만 마약복용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말기 암 환자라면 마약의 유혹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검거 당시 20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던 김씨는 이것을 5백만원에 공급받아 6백만원에 판매하려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런 거래라면 2003년부터 김씨가 집중적으로 마약을 판매해 온 점을 고려할 때 상당한 돈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검찰은 김씨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혼자 마약을 팔아 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씨가 간암 말기 환자라 붙잡히더라도 바로 풀려난다는 것을 잘 아는 공급책이 ‘안전한’ 김씨에게 상당한 물량을 집중 공급해 줬을 것”이라며 김씨 배후에 전문적인 마약조직이 있음을 암시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마약공급책들은 판매상이 검거되더라도 자신들을 보호해 줄 정도로 신뢰가 가는 사람을 고르는데 김씨가 제격이었던 셈. 붙잡히더라도 바로 풀려나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라 수사기관에서도 강도 높은 수사를 못해 김씨가 자신의 배후를 밝힐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이용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인면수심의 범죄 조직이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담당 검사는 “일단 구속기소는 했지만 김씨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법원이 구속집행정지로 다시 김씨를 풀어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며 김씨의 앞날을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