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종군 사망사건 목격자를 찾는 전단지. | ||
유가족은 연종이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경찰에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누군가 연종이를 유괴한 뒤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견해는 다르다. 경찰은 연종이가 추위 속에 오랜 시간 노출돼 저체온사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족들은 경찰이 사건을 단순사고사로 대충 마무리하려 한다며 분노하고 있다. “목격자가 나타났는데도 그 증언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반면 경찰은 “무작정 경찰을 못 믿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유가족을 탓하고 있다. 과연 연종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11월28일 연종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연종이를 돌보던 외할머니가 잠깐 은행에 다녀온 사이 아이는 갑자기 사라졌다. 이 아이를 본 목격자도 없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구조상 다섯 살 난 아이가 혼자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나서 연종이를 찾았지만 오간데 없었다. 만약 연종이가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갔다면 누군가 연종이를 데려갔을 가능성이 컸다. 이는 유괴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유괴를 확신하고 불안감으로 하룻밤을 넘긴 유가족은 이튿날 오후 3시경, 집에서 20여 분 거리에 떨어진 농로 위에서 싸늘하게 숨져있는 연종이를 발견하고 오열했다.
그러나 유가족은 어린 연종이가 왜 그곳에 갔고 어떻게 하다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유가족은 연종이가 스스로 그 농로로 갔을 리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에 따르면 연종이는 그 농로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쪽으로 가는 길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찰은 아이가 호기심에 멀리까지 놀러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저체온사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연종이 어머니 박선영씨는 경찰의 견해에 대해 강한 의문과 함께 불만을 표시했다.
박씨는 “농로로 가기 위해서는 어른도 가기 힘든 방죽을 지나야 하는데, 아이가 어떻게 그곳을 가겠는가”라며 “경찰은 유괴나 타살흔적이 없다고 하지만 아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서 거기까지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경찰이 수사에 대해 전혀 의욕이 없어 보인다”며 “오히려 우리가 발품 팔아가며 조사한 내용이 더 많다”고 경찰 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박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연종이의 죽음을 타살로 추정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연종이의 사체가 발견됐을 당시 사체에는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는데, 이마에 멍이 들어 있었고 콧잔등이 누군가에게 가격당한 듯 심하게 부어올라 코피까지 흘렀다는 것이다. 또 오른쪽 어깨에도 멍이 있었을 뿐 아니라 아이의 사체가 마치 누군가 일부러 눕혀 놓은 듯 반듯하게 누워있었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박씨는 “그런데도 경찰은 상처에 대해 아이가 혼자 놀다가 다친 것 같다고 말했다”며 “어디서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또 “연종이의 사체는 농로 위에서 발견됐는데, 경찰은 아이가 실족으로 농수로에 빠져 부상당한 뒤 농로위로 기어 올라와 그 자리에서 저체온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기막혀 했다.
박씨를 비롯한 유가족이 누군가 연종이를 숨지게 하고 농로 위에 내버렸을 가능성에 집착하는 데에는 또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연종이가 실종되던 날 교통사고를 목격한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한 여학생의 증언이다.
박씨는 “이 여학생이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아이가 검은색 차량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목격했는데, 이 여학생이 전하는 아이의 복장이 연종이와 비슷했다”며 “여학생은 당시 차량 운전자가 쓰러진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가기에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여학생은 이후 경찰에 전화 제보를 통해 운전자가 검은색 모자를 쓴 사람이었다고까지 구체적인 진술을 했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했다”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경찰은 이런 단서들을 모두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경찰에서는 오히려 나를 정신이 이상한 여자로 취급하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본 것이 있고 내가 들은 것이 있다”며 “아이가 발견될 당시 아이의 옷과 신발은 모두 깨끗한 상태였다. 그런데 부검 후에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옷과 신발은 진흙탕에 범벅이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씨에 따르면 연종이의 사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발견 당시 아이의 옷이 깨끗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끗하던 아이의 옷이 경찰의 손을 거치면서 더러워졌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 박씨는 “아이가 혼자 농수로에서 뒹군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경찰이 흙을 일부러 묻힌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만약 최초 발견자의 말대로 발견 당시 아이의 옷이 깨끗했다면 이는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명백한 증거”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은 박씨의 이 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전주북부경찰서 형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사건을 은폐 축소시킬 이유가 뭐가 있나”라며 “우리는 수사방침에 따라 철저히 수사중이다. 사체 부검을 통해 과학적인 결과를 얻은 상태다. 과학수사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간혹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해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부검결과 아이에게 난 상처들 중에 직접 사인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이는 타살혐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교통사고를 목격했다는 여학생의 증언에 대해서도 “그 여학생은 중3이긴 하지만 실제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는 한마디로 저능아다. 이는 동네 주민들이 다 아는 사실”이라며 증언 자체에 신빙성을 얻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유가족의 주장과 달리 계속 수사를 하고 있으며 목격자와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모두 마친 상태라고 전하면서 “우리는 사인이 어떤 사건과 특별한 연관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것은 연종이가 도대체 왜 그곳에서 숨져 있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