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 ||
관광객들은 입소문을 통해 미리 이런 사실을 알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현지에 가서 우연히 접하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마약의 검은 손은 평범한 관광객들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서울 마포경찰서는 3개월간의 공조 수사 끝에 지난달 19일 중국에서 마약 및 섹스 관광을 해온 관광객들을 검거하는 한편, 중국 공안 당국과 함께 마약 관광을 알선해온 현지 브로커를 쫓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엔 검거된 사람들 중에는 치과 의사 박아무개씨(44), 전직 국회의원 아들 김아무개씨(35)등 상류층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놀라움을 더해 주고 있다. 이들은 당초에는 단순히 부동산 투자 및 골프 관광을 위해 중국을 찾았지만 유흥업소에서 마약을 접한 뒤 중독됐으며 나중에는 마약을 국내에까지 반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이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마약 밀매 정황을 입수하고 조사에 나선 것은 지난 2003년. 지난달 19일 검거된 부유층 인사들 역시 이때부터 국정원의 감시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마약을 투약하는 경우 입국할 때쯤이면 이미 배출돼 약물 검사로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검거하는 데는 신중함이 따랐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이들의 꼬리가 잡힌 것은 지난해 11월 14일. 이들이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자 국가정보원과 서울 마포경찰서는 공조 수사를 펼쳐 3개월 동안 이들을 추적, 증거를 수집한 후 입국하던 이들을 검거했다.
이들이 최초로 마약을 접하게 된 것은 2004년 10월 중국 칭다오의 한 유흥주점에서였다.
현지에서 부동산 컨설팅을 하고 있는 신아무개씨(45)가 1백억원 상당의 부동산 매물을 이들 일행에게 소개하고 접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약을 권유했던 것. 검거된 일당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피로회복제 같은 것이라고 해서 마셨다”고 진술했지만 구속된 일행 중 일부는 처음부터 ‘마약’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들과 함께 마약을 투약한 사실은 있으나 불구속 입건된 나머지 3명 중에는 대학 휴학생 배아무개씨(21), 의상 디자이너 박아무개씨(22) 등 여성도 포함돼 있었다. 이 두 여성은 이들 일행을 따라 지난해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했다. 처음 중국 관광 시에는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최음제 정도로만 알고 술에 탄 마약을 마셨지만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마약임을 알고도 대마초를 함께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국정원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몇 년간 적발된 중국 마약 관광 사범은 모두 10여 건. 적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상습범이지만 상당수는 한 번도 마약에 손을 대본 적이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어서 심각함이 더하다고 말한다. 국정원은 이러한 심각함을 느끼고 지난 몇년간 경찰과 공조해 대대적인 수사를 펼쳐왔다. 그러나 마약 관광은 이미 상당히 널리 퍼져 있고 또 은밀히 벌어져 수사가 어렵다고 말한다.
중국 관광객들이 쉽게 마약에 손을 대는 것은 국내와는 달리 자유스러운 해외 분위기에 휩쓸려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지난 10년간 마약 수사를 해 온 국정원 관계자의 말이다. 또한 술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듯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는 데다 일행은 물론 유흥업소 종업원들과 단체로 즐기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상류층의 경우 술집이나 파티 장소에서 대마초 등을 피우는 분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익숙해져 있어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수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다른 국가와는 달리 필로폰을 불에 태워 연기를 흡입하거나 직접 가루를 흡입해 초보자도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마약의 비용도 대개 술값에 포함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담을 느끼지 못한다. 중국 내 마약 가격은 필로폰의 경우 1g당 한화 15만원에서 20만원, 엑스터시의 경우 1정당 1만5천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관광객들의 마약 투약 장소가 되고 있는 유흥업소는 중국인이나 조선족 명의로 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수사를 담당했던 국정원 관계자는 그 배후에는 조직폭력배들이 있으며 그들의 보호 없이는 실질적인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전했다.
이들 유흥업소는 현지에서 체류중인 한국인 마약 조직원들에게서 마약을 공급받고 있다. 의리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며 이합집산 하는 ‘점조직’ 형태지만 사실상 중국과 국내 마약 조직이 연결돼 있고 그 중간에서 마약을 유통시키는 집단이다.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직원들만 1백50여 명. 이들은 국내에서 수배중이거나 교도소에서 출소한 조직폭력배들 또는 불법 체류자들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최근 한국 관광객들의 마약 수요가 늘자 중국과 국내 인맥을 총동원, 중국 현지는 물론 국내 판매망까지 늘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 중국 내에서 마약 생산이 어려워지자 동남아 또는 북한에서 밀매되는 마약을 들여와 유통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헤로인, 필로폰 등을 30g 이상 소지하거나 밀수, 제조한 자가 사형된다. 그러나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도 돈을 벌 목적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조직원들이 곳곳에 분포돼 있다”고 밝혔다.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