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아산에서 모 대학 경리부장의 사체가 발견된 수로.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둘은 이 외에도 많은 살인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보여 충격을 더하고 있다. | ||
지난해 말 유력한 용의자 2명 가운데 먼저 구속됐던 김아무개씨(43)는 연쇄살인의 가능성에 대해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공범으로 추정됐던 나아무개씨(43)가 도피 3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히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일어난 2건의 강도 사건 용의자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 ‘제2의 유영철’이 아니냐는 <일요신문>의 우려가 결국 현실화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아산 모 대학 경리부장 김아무개씨(52)가 실종된 지 40일 만에 아산시 배방면 한 수로에서 발견됐다.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됐던 김씨는 친구인 나씨가 경리부장을 살해한 뒤 아산시 배방면에 있는 한 하천에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당초 범행을 부인했었다. 그러나 김씨와 용의자의 지문이 일치하고 경리부장의 신용카드와 범행에 쓴 휴대전화 사용자가 김씨로 밝혀지면서 그는 경찰에 구속됐고 친구인 나씨가 공범자로 수배됐었다.
당시 친구 사이인 김씨와 나씨가 지난해 발생한 연쇄 납치 살해 사건의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지냈던 서울의 거처와 버려진 나씨의 차량에서 경찰관 허리띠, 검문용 플래시봉, 케이블 타이, 차량 번호판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과 3월 발생한 천안시 백석동 이아무개씨 살인 사건과 쌍용동 민아무개씨 살인미수 사건,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발생한 최아무개씨 살인사건이 모두 고급 승용차 운전자를 노린 동일한 수법의 납치 살인 사건이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외제나 국산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었고, 늦은 밤 귀가 길에 범행을 당했다는 점, 사체가 제3의 장소에 유기됐다는 점도 일치했다. 또 백석동에서 살해당한 이씨와 청원군 오창면에서 사체로 발견된 최씨의 경우 손목을 묶은 끈이 용의자들의 집에서 압수한 증거물과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지난 15일 밤 경기도 안산의 한 원룸에서 도피 3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힌 나씨는 이들 납치 살해 사건의 대부분을 자백했다.
연쇄 살인 행각은 청원군 오창면 최씨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나씨가 경찰에서 자백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3월 김씨와 함께 청주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중 최씨가 운영하는 스포츠 매장 옆에 외제 승용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 소유자인 최씨가 가게 문을 닫고 귀가하자 뒤를 쫓았고 이들은 접촉 사고를 가장해 최씨를 차 밖으로 유인한 뒤 흉기로 위협, 외진 곳으로 납치해 목 졸라 살해했다. 그런데 이 범행 수법은 지난해 3월 쌍용동 살인 미수 사건의 피해자인 민씨가 증언한 범행 수법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1백만원 상당의 금품과 신용카드를 빼앗은 이들은 현금 인출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남겼다. 현금인출기 CCTV에 찍힌 용의자의 손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먼저 구속된 김씨의 손등과 일치한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범행은 천안 일대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김씨의 손등은 지난해 7월 1일 발생한 서울 성북구 이아무개씨(45) 강도상해 사건, 같은 달 12일 서울 송파구 최아무개씨(58) 살인 사건 용의자의 손등과도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
당시 김씨와 나씨는 주부들이 혼자 있는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가스 검침원으로 가장, 현금과 신용카드를 빼앗았고 이불을 덮어 씌운 뒤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성북구 이씨의 경우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 후유증으로 현재 정신 이상을 보이고 있고 송파구 최씨의 경우는 사망했다. 이들은 최씨의 현금카드로 4백90만원을 인출해 달아났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나씨를 상대로 이들이 물색했던 범행 대상은 물론 범행 수법, 도구 등이 유사하며 같은 시기인 지난해 2월 발생한 천안시 백석동 이아무개씨 살인 사건과 당진군 송산면 김아무개씨(53)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나씨가 이 사건들에 대해서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나씨가 아닌 김씨의 단독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김씨를 상대로 추가 수사를 벌일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구속된 이후 “공범인 나씨가 붙잡히기 전에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던 김씨는 나씨가 범행을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모든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월 12일 발생한 천안 20대 여성 연쇄살인 사건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용의자들 중 한 명의 몽타주를 작성, 전국에 배포하며 곧 범인이 잡힐 것으로 자신했으나 아직까지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3명 가운데 1명은 키가 크고 잘생긴 얼굴에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있는 40∼50대 남성으로 충청도 말씨를 사용하고 나머지 2명은 30대로 한 명은 키가 작고 날렵한 몸매이며, 다른 한 명은 170cm의 키에 보통 체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들은 1월 12일 용의자들이 생활정보지에 낸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나갔다가 일주일 간격으로 천안시 풍세면 신설도로 공사현장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김·나씨 혐의 일지]
2005년 2월 천안 백석동 살인 사건
2005년 3월 천안 쌍용동 살인 미수
2005년 3월 충북 청원군 살인사건
2005년 7월 서울 성북구 강도상해 사건
2005년 7월 서울 송파구 살인 사건
2005년 12월 아산 경리부장 살인사건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