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한 직업 없이 생활고에 찌들려 살아 온 황 씨가 PC방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인 것은 지난해 3~4월경. 그는 경찰의 눈을 피해 다니던 중 지난해 7월 로또 1등 당첨의 믿기지 않은 ‘대박’을 맞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 역전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강도짓은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8개월 동안의 초호화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강도에서 ‘대박’으로, 대박에서 다시 철창 신세로 이어진 황 씨의 기가 막힌 인생 역정의 뒷얘기는 더 드라마틱했다.
지난 5일 경찰은 1년여 동안 끈질긴 추적을 벌인 끝에 강도 용의자 황 씨를 경남 진주시 본성동 모 주점 앞에서 마침내 붙잡았다. 사건을 수사한 마산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황 씨는 지난해 3월 초순경 경남 마산시 양덕동에 있는 한 PC방에 들어가 종업원 A 군(19)을 마구 폭행한 뒤 현금 20여만 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조사를 위해 황 씨와 마주 앉은 경찰 담당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주거지도 없는 오랜 도피 생활로 그 행색이 무척 초라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앞에 앉은 황 씨의 모습은 재벌 2세 뺨칠 정도였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4월경 황 씨의 주소지를 찾아갔는데, 그는 마산의 극빈층 임대아파트에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매우 궁핍한 처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할머니의 말처럼 황 씨는 거주지 불명에 가까운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는 인물이었는데 막상 잡혀온 황 씨는 부유층 자제 같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황 씨의 추가 범죄를 의심했다. ‘부잣집을 털어 거액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처음에 입을 잘 열지 않던 황 씨는 경찰의 계속되는 추궁에 결국 입을 열었다.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경찰은 어안이 벙벙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가 전한 바에 따르면 황 씨는 지난해 7월 초 마산시 월영동 해운초교 인근에서 구입한 로또 복권이 1등에 당첨돼 무려 19억 원이라는 대박을 맞았다는 것. 이 가운데 세금을 제외하더라도 황 씨의 손에 떨어진 돈은 13억9천8백만 원이나 됐다.
이후 황 씨는 강도행각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무직’ 생활을 접고 청년실업가로 거듭났다. 황 씨는 자동차 없는 설움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5000CC급 벤츠를 1억 4천만 원에 구입하는가 하면 늘 갖고 싶었던 PC방과 호프집을 인수했다. ‘백수 황 씨’가 순식간에 ‘황 사장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황 씨는 할머니가 있는 마산의 임대아파트에도 발길을 끊었다. 대신 자신의 고향이자 주 활동무대인 진주에 거처를 마련했다. 고급 옷으로 치장하고 비싼 술집에서 질펀한 유흥을 즐기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향유한 그는 누가 봐도 돈 많은 집 자제와 같은 ‘청년 실업가’였다.
뿐만 아니었다. 황 씨는 진주에서 만난 여성 B씨와 달콤한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역전에 성공해 꿈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황 씨에게도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다름 아닌 경찰의 추적이었다.
어느 날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황 씨에게 진주시내에서 PC방을 운영하던 지인 K씨로부터 “경찰이 너를 찾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하니 몸조심해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3~4월경 진주의 한 PC방에서 강도행각을 벌인 것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황 씨는 꼭 그것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을 거듭하다 경찰에 전화해서 왜 자신을 찾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짐작대로 “진주에서 발생한 PC방 강도사건의 용의자로 당신이 지목됐으니 경찰에 나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말이었다.
황 씨는 고민하다 이 사실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털어놓고 사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아직도 통장에 있는 10억 이상의 돈으로 뭔가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수를 권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황 씨가 어느 날 경찰에 전화를 걸어와서 ‘도대체 나를 찾는 이유가 뭐냐’고 묻길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며 자수를 권유했는데 고민해보겠다고 하더니 이후 그대로 잠적해 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얼마 후에 황 씨는 본인 대신 아버지를 경찰에 보내 형사입건 외에 다른 방향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시도하기도 했다”며 “황 씨는 부산 등지에서도 PC방 강도를 저지른 적이 있는데 경찰의 추적을 접하고는 자신이 직접 피해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모두 합의를 보는 등 나름대로 돈으로 해결해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심지어 자동차 문제로 벌금 300만 원 밀린 것도 이때 부랴부랴 다 완납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강도범 황 씨에 대한 조사에서 그의 남은 재산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당첨금 가운데 지금까지 외제차 구입과 유흥비 지출, PC방과 호프집 인수 등에 모두 3억여 원을 사용했으며 현재 자신의 계좌에 10억 원 가량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일부 언론에서는 황 씨가 흥청망청 돈을 다 탕진한 것으로 비춰졌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며 “자동차 구입비용으로 많은 돈을 썼을 뿐 탕진한 액수가 많지도 않다. 지금은 나름대로 돈을 잘 관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황 씨는 지난 13일 마산교도소로 이감돼 수감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박의 주인공답게 1200만 원의 수임료를 주고 일류 변호사를 고용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착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진주=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