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재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이 한나라당 대권주자들간의 경쟁에 불을 붙였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명박 시장, 박근혜 대표, 손학규 지사. | ||
헌재 위헌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 및 여당이 타격을 입게 되면서 반사적으로 야권의 권력투쟁을 낳고 있는 셈이다. 특히 위헌 결정이 나오기까지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쟁을 해왔다는 점에서 투쟁의 과실을 따먹기 위한 경쟁심리가 녹아있다. 마치 잘 지내던 형제가 먹을 게 생기면서 틈을 벌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은 위헌 결정으로 얻은 과실을 놓고 서로 빨리 먹기위한 치열한 물밑 승부를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일반적으로 이명박 서울시장이 위헌 결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시장은 헌재 결정 이후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시장은 지난 6월 행정수도 논란이 재연된 직후부터 당내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울 수장’이란 간판을 내세워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강하게 주장해왔다. 이 시장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운동에 시예산을 전용하고 구청에 반대집회 참여를 독려했다는 이른바 ‘관제 데모’ 의혹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이 시장은 국감에서 여당 의원들이 공격성 질문을 던지자 “관제데모가 아니라 민제데모”라고 받아쳤다.
이 시장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투쟁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권주자로서 크게 부각받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끝낸 뒤 박근혜 대표 위주로 급속히 편성됐고, 이 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는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었다.
하지만 수도이전 반대투쟁을 계기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 시장이 워낙 적극적으로 투쟁하면서 여론이 이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열린우리당과의 공방을 통해 이 시장은 더욱 부각됐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박근혜 대표의 지도력에 회의감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 시장 캠프를 노크하는 경우가 늘었다. 실제 최근 서울지역 한 원외위원장은 박 대표의 제의를 거부하고, 이시장 캠프행을 결심했다.
이 시장이 강하게 기쁨을 표명하는 것과 달리 박 대표와 손 지사는 신중하게 처신했다.
박 대표는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은 한나라당이 다수당일 때 통과시킨 법안”이라면서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우선 맞다”고 주장, 기쁨에 들떠 있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 대표는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해서도 “특별법이 통과된 데 대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거듭 사과했다.
박 대표의 이 같은 스탠스는 당내에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다. 충청권의 반발을 무마시켜야 하고, 국론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후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손 지사 역시 수도이전 반대투쟁에는 이 시장과 함께했으나, 헌재 결정 이후 결별 수순을 밟았다. 손 지사는 당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수도이전반대집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으며, “더이상 수도이전 문제를 공론화하지 말고 일상생활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손 지사측의 한 관계자는 “같이 투쟁을 벌여도 과실은 서울시장인 이 시장이 다 따먹게 돼있는 구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장의 득의양양한 모습이 결국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사람으로서 전국적인 균형감각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는 논리다.
이 같은 이해득실 논란은 <월간조선> 사장인 조갑제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박근혜 대표를 비판하고 이명박 시장을 옹호함으로써 기름을 끼얹었다.
조 사장은 “헌법을 고쳐서 해야 할 수도 이전을 간단히 동의해준 한나라당은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는데서도 꾸물꾸물하다가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라며 “오히려 월간조선,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시, 서울시의회, 그리고 이명박 시장이 단호하게 노 정부의 헌법위반적 행위에 맞서 국익을 지켜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근혜의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서울시가 매우 대조적”이라면서 “지도자는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역사를 굴러가도록 만드는 사람”이라고 박 대표를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은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 ‘이명박이냐, 박근혜냐’의 선택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보수층을 분열시키는 것이고, 한나라당 내부의 대권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갑제씨의 글은 실제 한나라당 지지층 사이에 격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지지자는 강력한 투쟁력을 높이 사고, 박근혜 지지자는 대안을 마련한 뒤 책임있게 대처해 온게 안정감을 높여주었다고 옹호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큰 타격을 안겼지만,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내분을 유도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