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눈. 아래는 유영철의 눈.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특히 범죄 심리학 전문가들은 정 씨의 심리 상태를 설명함에 있어서 지난 2004년 노인과 여성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된 ‘희대의 살인범’ 유영철을 모델로 비교 분석하고 있다. 유영철에 대해서는 그가 검거된 후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그의 심리를 과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분석,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 담당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일요신문>이 654호(2004년 11월 28일자)에 단독 입수해 보도한 ‘유영철 심리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경찰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정 씨의 진술 및 범행 수법 등과 심리 상태를 유영철과 비교했다.
“살인은 나의 직업이고 경찰 사칭으로 금품을 갈취한 것은 부업이었다. 난 단지 좋아서 살인했다.” 당시 유영철의 진술이다. 연쇄 살인범들의 심리 분석에서는 우선 살인범들의 성장 과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유영철과 정 씨의 경우 유사점을 갖는 부분도 상당하다.
유영철은 70년생이며 정 씨는 69년생으로 두 사람은 모두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인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는 청소년기에 부모로부터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행동 ‘모델’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두 사람은 청소년기를 지난 직후 스스로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절도 등을 일삼다 전과자가 됐다. 정 씨는 고교 졸업 이듬해인 89년 특수강도죄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고 이후 절도와 야간주거침입절도, 강제추행죄 등으로 실형을 살며 나락으로 빠졌다.
유영철 역시 91년 특수절도죄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것을 시작으로 93, 95, 98년 절도와 공무원사칭,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2000년에는 폭력, 공무원 사칭, 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처럼 전과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두 사람은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됐다. 여기서 오는 소외감과 열등감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으로 발전하고 결국 유일한 탈출구를 강력 범죄에서 찾는 연쇄살인범들의 수순을 이들도 자연스럽게 답습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쇄살인범들의 심리적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반사회성과 편집증 증세가 유난히 강하다는 점이다. 유영철의 경우에도 심리 평가에서 반사회성과 편집증 수치가 상당히 높게 평가됐었다.
정 씨는 조사 과정에서 경찰 수사관들에게 사회적인 규율이나 관습을 자기가 처한 상황과 연결시키고 강한 적개심과 분노를 드러낸 만큼 반사회성과 편집증이 강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근거로 유영철에게 했던 정신병적 테스트 분석 결과를 정 씨에게 적용할 경우, 정 씨 역시 높은 수준의 정신병질자(사이코패스, Psychopath)로 예상된다. 현실 검증력이 유지되지 않고 사고 장애가 나타나는 정신병적인 상태가 아니라 오직 살인에 대해서만 특별한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영철이 이 테스트에서 “피해자의 시체를 매장하고 나면 하루 일을 보람 있게 끝낸 것 같은 만족감을 느낀다”고 진술했던 것처럼 정 씨도 검거 직후 “범죄 당시에도 큰 죄책감은 느끼지 못했고 범행 이후 만족감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타인을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한 대상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사이코패스의 특징과 거의 일치하는 부분이다.
자신을 완벽하다고 보는 것도 동일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유영철이 “자신이 자백하지 않았으면 대부분의 사건이 완전범죄로 묻힐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은 치밀했다”고 자랑했듯이 정 씨도 “신이 나를 버렸기 때문에 완전 범죄가 실패로 돌아갔다”며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경찰 수사에서 나타난 정 씨의 범행 수법과 과정, 그리고 각종 진술에서 나타난 심리 상태는 정 씨가 유영철의 심리 상태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라는 게 범죄 심리학자들이나 강력 사건을 접한 법조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 씨가 여러 모로 유영철의 모습과 유사함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범행 수법 등을 볼 때 유영철과 같은 기준에서 비교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 씨의 경우는 아직 유영철과 같은 극심한 정신적 공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선 치밀함을 가장한 소심함의 모습을 보인다. △범행 지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CCTV에 발각될 것을 우려, 적개심을 갖고 있던 부유층이 몰려 있는 강남 지역을 포기한 점 △범행 시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하고 새벽 시간만을 노려 자신의 집처럼 담이 낮은 단독 주택으로만 잠입한 점 △무려 13건의 사건을 저질렀지만 사망자는 5명에 불과했던 점 등은 정 씨가 유영철처럼 직업을 살인으로 여기는 심리적 상태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져다주는 대목이다.
지난 2004년 유영철에 대한 심리 조사를 통해 그가 100명을 살해할 목표를 가졌고 스스로 30대에 죽을 운명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정 씨는 살인까지는 이르지 않는 폭행이 목적이었으며 자신의 신변 안전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여러 군데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대담해지고 잔혹해지는 면이 엿보이는 점에서 보강 수사와 함께 심리 분석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