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현장에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
경찰은 현재 단순 강도 살인을 의심하고 있다. 사체 발견 당시 반지 케이스가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는 것. 손님을 가장한 범인이 물건을 보는 척하면서 가게 주인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금품 가운데 일부도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단순 강도 사건으로 보기에는 범행이 너무나도 대담하고 끔찍하다는 점에서 많은 의문점을 내포하고 있다. 목격자도 증거도 안 남긴 채 범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이번 사건이 자칫 미궁으로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살해된 이 아무개 씨(55)는 대전에서 20여 년간 금은방을 운영해온 인물이다. 이 씨는 사건 당일인 5월 30일 오전 9시 30분경 집을 나섰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가게에 도착한 뒤 셔터 문을 올린 시각이 9시 40분경. 가게 문을 연 지 얼마 안 있어 평소 안면이 있던 시장 손님이 찾아왔다. 이 씨는 근처 다방에 커피를 시켜 10시 30분경 다방 종업원이 배달해온 커피를 함께 마셨다. 두 사람은 가게 안에서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손님이 먼저 시장에 볼 일이 있다며 가게를 나섰다. 이때부터 이 씨는 가게에 혼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약 40~50분 후인 오전 11시 40분경. 수금이 하러온 새마을금고 직원이 이 씨의 사체를 발견했다. 당시 이 씨는 목과 몸통 등 스무 군데가 넘는 곳이 예리한 흉기에 찔려 진열대 안쪽에 쓰러져 있었다. 팔과 손도 온통 피범벅인 것으로 보아 범인과 상당히 치열하게 난투극을 벌인 듯했다.
사건 현장은 도로에 바로 접해 있는 상가 건물 1층. 인근 가게들도 모두 영업을 하고 있었다. 흔히 금은방 업소가 그렇듯 길가와 투명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목격자도 전혀 없고, 인근 가게에서도 다투는 소리나 비명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근 상인은 “옆 가게라 하더라도 가게 바로 앞 도로의 소음에 묻혀 비명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투명한 유리창이라고 해도 빛 반사가 심해 자세하게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해도 범인의 행각은 너무나 대담하다. 비록 작동되진 않았지만 가게 안에는 보안용 CCTV도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단순 강도 살인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현장이 금은방이 밀집해 있는 곳인 만큼 평소 한탕을 노리던 강도가 주변을 물색한 끝에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이 씨를 계획적으로 노렸을 것이라는 점이다. 손님으로 가장한 강도가 물건을 고르는 척하다가 이 씨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금품을 훔쳐갔을 거라는 설명이다. 발견 당시 진열대 위에 놓여 있던 반지 케이스와 이 씨가 쓰러져 있던 장소 등을 보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연 강도가 대낮에 이런 무모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대낮의 미스터리 살인 사건은 이 지역에서 여러 가지 흉흉한 소문을 낳고 있다. 금전 문제 등으로 인한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대낮이라 언제 사람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20여 차례에 걸쳐 잔인하게 흉기를 휘둘렀고, 가게 안의 금품을 싹쓸이해 가지도 않은 점 등으로 봐서 범인이 작정하고 독기를 품었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주변의 상인들은 평소 이 씨와 거래하던 업자들 사이에서 이 씨의 돈거래 태도와 관련해 불평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전했다. ‘금전 문제에 있어서 끝맺음이 확실치 못했다’는 것. 더불어 이 씨가 부채관계가 좀 있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하지만 평소 이 씨의 대인관계가 원만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청부살인 얘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건 당일 시내 모처에서 20~30대로 추정되는 키 180cm 정도의 젊은 남자가 피 묻은 옷가지를 들고 황급히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제보도 있다.
이 남자에 대한 얘기는 인근 상인에게도 들을 수 있었다. 사건 이틀 전, 금은방 일대에 한 남자가 동냥을 하러 들어왔는데 이 남자의 인상착의가 앞서 제보자가 말한 남자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
현재 경찰은 인근 금은방들의 폐쇄회로 TV 테이프를 수거해 조사 중이다. 이 남자가 테이프 안에서 식별될 경우 목격자 진술과 더불어 수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최윤지 프리랜서 woxl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