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연녀가 경찰에 자수하는 바람에 남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뒤늦게 ‘마누라 죽이기’의 전모를 알게 된 아내는 충격과 배신감에 빠져 치를 떨고 있다. 내연녀의 뒤늦은 변심이 없었더라면 자칫 진실은 영원히 묻힌 채 결국 언젠가는 자신이 남편 손에 살해당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 왜 이런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그 내막을 추적해 봤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지난 15일 자신의 아내 명의로 가입한 종신보험금 1억 원을 타기 위해 아내를 무려 네 차례에 걸쳐 살해하려 한 남편 김 아무개 씨(35)와 공범인 김 씨의 내연녀 이 아무개 씨(40)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북부경찰서 이근영 경감은 “내연녀 이 씨가 비록 자수를 해오기는 했지만 네 번이나 살인을 시도하는 등 죄질이 극히 나빠 김 씨와 이 씨 모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04년 6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씨는 오랜만에 경북 경산의 A 초등학교 앞에서 풀빵장사를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들게 된다. 그 인연은 바로 친구의 풀빵 수레 바로 옆에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속칭 ‘뽑기’ 장사를 하고 있는 이 씨와의 만남이었다. 이 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뽑기’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 씨는 그날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 이 씨도 함께했다. 비록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김 씨는 이 씨에게 호감을 가졌다. 이날의 술자리에서 눈이 맞은 두 사람은 이후 내연 관계로 급속히 발전했다.
평소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 씨는 내연녀까지 생기자 더욱 아내를 멀리하게 됐고 그럴수록 부부 간의 다툼은 점점 더 잦아졌다. 김 씨는 아내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탓에 부부관계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첫아이를 가진 후로는 아예 무늬만 부부였지 사실상 남남이나 다름없는 소위 ‘섹스리스’ 부부였던 것이다.
지난해부터 아내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된 김 씨는 마침내 ‘마누라 죽이기 계획’을 세우고 이를 내연녀 이 씨에게 알렸다. 김 씨의 말을 들은 이 씨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씨가 보험금 1억 원을 타낼 수 있다며 같이 아내를 죽이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찰조사에서 드러난 살해 동기에 대해 두 사람의 진술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이 씨는 “김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이자고 했다”고 진술했지만 범행 당사자인 김 씨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아 증오심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 이 경감은 “그저 돈이 욕심나서 아내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보기에는 액수가 조금 적다. 아마도 평소 아내에 대한 악감정과 돈, 그리고 내연녀에 대한 욕심이 범행동기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와 그의 아내는 3개월 전부터 아예 별거생활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김 씨는 선뜻 범행에 동참하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이 씨에게 큰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핑크빛 미래를 제시했다. 김 씨의 계속되는 설득에 결국 제안을 받아들인 이 씨도 본격적으로 엽기적인 ‘마누라 죽이기’ 계획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살해를 시도한 것은 지난해 2월 초. 김 씨는 아내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유인한 뒤 경북 군위에서 대구로 오는 인적이 드문 국도변에서 돌멩이로 부인을 살해하고 이를 교통사고로 위장하려고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경찰조사에서 김 씨는 “아내를 살해한 뒤에 교통사고로 위장하고 나는 뒤쫓아오던 이 씨의 차량으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당시 아내가 두살배기 아들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범행을 그만뒀다”며 고개를 떨궜다.
첫 계획을 실패한 뒤 초조해진 김 씨는 더욱 확실한 방법을 모색했다. 지난해 7월 그는 아예 한 공업사에 의뢰해 차량장착용 둔기까지 특별 제작한 것. 그는 둔기를 이 씨의 차량 뒷좌석에 설치했다. 밖으로 굵은 쇠막대기가 튀어나오도록 한 구조였다. 이 차의 튀어나온 둔기를 이용해 차량 옆을 지나가는 아내를 쳐서 살해한다는 계획이었다.
김 씨는 아내에게 “차에 놔두고 온 지갑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아내가 지갑을 가지러 갈 때 이 씨가 둔기를 장착시킨 차로 친다는 계획이었으나, 아내가 뛰어가는 바람에 멀리서 차를 세우고 기다리던 이 씨는 타이밍을 놓쳐 또 실패하고 말았다.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중순쯤 이들은 세 번째 계획을 세웠다.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로 계획을 짜고 미리 사전답사까지 하며 장소를 물색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 씨는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실제 부산 사상구 신라대 부근에서 김 씨는 주차돼 있던 대형버스 뒤에 일부러 부딪쳤다. 조수석 부분이 정확히 버스와 부딪혀 아내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큰 사고였지만 하늘의 뜻인지 아내는 가벼운 상처만 입는 데 그쳤다.
이어 두 달 뒤인 지난해 10월 중순쯤 네 번째 계획이 또 실행에 옮겨졌다. 김 씨 부부는 경북 청도군의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 아내는 남편 김 씨의 심부름으로 휴대폰을 가지러 가던 중 갑자기 달려드는 프라이드 차량에 치었다. 내연녀 이 씨가 운전하는 차량이었다. 다행히 정면충돌을 했지만 전치 3주의 상처를 입는 데 그쳤다.
두 달 사이에 잇따라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김 씨의 아내는 그것이 남편의 의도된 살인 계획이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이 씨의 자수로 남편의 짓이었음을 알게 된 후 그녀는 현재 충격에 빠져 있다.
한편 경찰은 “김 씨의 아내를 차로 친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수를 했다”는 이 씨의 자수 배경에 대해서도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의 준비된 살해 계획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김 씨와 내연녀 이 씨 두 사람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것. 급기야 두 사람은 얼마 전 상당히 악화된 감정 상태에서 헤어진 것으로 밝혀져 경찰은 이 씨가 이 과정에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