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김 씨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여성은 현재까지 세 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시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고 있는 점은 바로 연쇄살인범으로 구속된 김 씨의 실체 때문. 그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의 회사원이었다. 범죄 전문가들은 김 씨를 ‘21세기 신세대형 연쇄살인마’의 전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쇄살인범까지 이제 새로운 트렌드가 창출되는 충격적인 현실인 셈이다. 20대 청년 김 씨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연쇄살인범과는 전혀 달리 김 씨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가정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한 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유지해온 회사원이었다. 그는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여성들과 하룻밤을 즐긴 소위 ‘야타족’이었다. 그가 살인을 계속했던 것 또한 여성에 대한 관심과 과도한 카드 사용에 따른 빚 부담이 컸던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회에 대한 적대감이나 부적응으로 범죄를 저지른 일반적인 연쇄살인범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프로파일러 전문가인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연쇄살인범의 특징으로 △일정한 직업이 없는 미혼 혹은 이혼남 △학대 등 충격적 경험을 당한 불우한 가정환경 △내성적 성격의 외톨이 성향 △지나친 이성 집착 △순간적인 폭력성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검거된 김 씨는 위의 특징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다. 그는 최근 문란해진 성 세태를 반영하는 신세대족의 성향을 갖고 있다. 살인 과정과 그후 사체 처리 수법으로 볼때 그는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마니아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했지만 신용카드 과도 사용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따라서 범죄전문가들은 “김 씨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아닌 2006년 현재 우리 사회가 정면으로 직면한 문제점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개념의 연쇄살인범”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세 명의 여성을 납치, 살해한 뒤 사체유기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김 아무개 씨가 근무 하던 직장 동료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있었다. 컴퓨터 부품 유통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 중이던 김 씨를 직장 동료들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한 관계자는 “평소 동료들과도 잘 어울렸고 업무도 성실하게 수행해왔다”고 전했다.
긴급 체포 당시 혐의 사실을 일체 부인하던 김 씨는 관련 증거가 속속 발견되면서 범행 일체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군포경찰서 서상귀 수사과장은 “성폭행 여부나 사체를 불에 태운 것 등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인하고 있지만 대체적인 혐의 사실은 자백한 상황”이라며 “특히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얘기한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김 씨는 앞선 두 건의 살해 사건은 우발적이었고 세 번째 살인 사건만 계획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김 씨의 진술은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가 범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첫 번째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윤 아무개 씨(여·22)였다. 윤 씨는 지난 5월 15일 밤 11시 50분경 회식을 마친 뒤 술에 취해 홀로 귀가하다 행방불명돼 닷새 뒤 사체가 심하게 불에 탄 상태로 발견됐다.
▲ 김 씨가 세 번째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했던 장소. CCTV에 찍혀 검거됐다. | ||
그런데 김 씨의 주장과 상치되는 부분은 윤 씨의 통화기록이다. 김 씨의 쏘렌토 승용차에 강제로 타게 된 윤 씨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경찰서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김 씨 몰래 경찰서에 신고 전화를 시도하다 실패한 것으로 볼 때 서로 원해 성관계를 가졌다는 김 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경찰 측 입장이다.
두 번째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김 아무개 양(여·20) 역시 홀로 귀가하다 변을 당했다. 김 양은 술에 취하진 않았지만 인적이 드문 길을 걷다 김 씨와 마주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김 씨는 “김 양이 먼저 차비가 없다며 태워달라고 부탁했는데 귀엽고 싹싹해 보여 드라이브 가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며 “청계산으로 드라이브를 갔는데 집에 가야 한다고 칭얼대 홧김에 죽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성관계는 갖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사체에선 성폭행 흔적이 나타나 경찰이 확인 중이다.
김 씨의 살해 및 사체 유기 방식을 보아도 우발적 범행으로 보기 힘들다. 알몸 상태로 양손을 비닐 끈으로 묶고 입에 팬티를 물린 상황에서 테이프를 얼굴에 감아 질식사시킨 것. 이런 잔혹한 수법으로 볼 때 현실과 영화를 혼동할 만큼 심각한 연쇄살인 관련 영화 마니아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어떻게 비밀번호를 알았는지 여부도 미심쩍다. 김 씨는 윤 씨가 자발적으로 비밀번호를 알려줬다고 진술했는데 서로 원해 성관계를 맺은 뒤 말다툼 도중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진술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첫 번째 희생자인 윤 씨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모두 284만 원을 인출한 김 씨는 두 번째 희생자인 김 양을 살해할 당시 그가 갖고 있던 디지털카메라가 욕심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살인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은 김 씨는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오자 의도적인 살인을 계획하게 됐고, 그 피해자가 바로 세 번째 희생자인 허 아무개 씨(여·26)였다. 세 번째 사건은 김 씨가 연쇄살인의 단계로 접어드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범행 동기가 여성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가 돈으로 변하고 있다.
경제적인 능력을 고려했기 때문에 앞선 두 희생자에 비해 허 씨의 나이가 가장 많다. 앞서와는 달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성들을 목표로 삼은 김 씨는 골목길 모퉁이에서 기다리다 허 씨를 강제로 납치, 차에 태워 강간 살해했다. 알몸 상태로 입에 팬티를 물리고 질식시킨 수법은 앞선 희생자와 같다. 이렇게 해서 얻은 허 씨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김 씨의 모습이 CCTV에 잡혀 결국 검거된 것이다. 김 씨는 “카드빚 1000만 원을 갚기 위해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만약 CCTV에 김 씨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돈과 여성을 목적으로 한 김 씨의 악마적인 행위가 계속되었을 수도 있다는 데에 시민들은 분노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