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신원마을 양악천 다리 위. 태풍으로 물에 잠긴 다리는 난간이 없어 더 위험해 보인다. 연합뉴스 | ||
특히 이번 태풍으로 수해를 당한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가족까지 잃은 수재민 유가족들의 충격은 집이나 재산을 잃은 이들에 비할 바 아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지만 그때마다 같은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때문에 수해는 대부분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단 이런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이번 수해로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나 안일하게 재난을 대비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6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신월마을 양악천에서 발생한 기구한 사건은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정신지체 3급인 이상길 씨(24)는 마치 하늘에서 물대포를 쏘는 듯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생필품을 구입한 뒤 자전거를 타고 집을 향해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었다.
사건은 이날 밤 11시경 이 씨의 집 앞 하천 위에 놓인 다리에서 발생했다. 이 씨가 하천 앞에 도착했을 때 폭우로 급속히 불어난 하천 물은 다리 위까지 차올라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집으로 가기 위해 다리 위로 올랐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자전거로 이 다리를 건너던 이 씨는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자전거와 함께 급류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때 다리 맞은편에서 이런 이 씨를 보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씨의 어머니 김일색 씨(52)였다. 김 씨는 20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 다리 앞까지 마중을 나와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만 이 같은 광경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김 씨는 아들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사람 살려’를 외쳤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그렇게 떠내려간 이 씨는 17일 오전 9시 30분쯤 사고지점에서 4㎞ 떨어진 진안군 동향면 학산리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그는 “아이고, 이렇게 혼자 가면 어떻게 하냐. 내가 첫째를 잃고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몸도 불편한데 그 험한 저승길을 어찌 갈꼬. 이렇게 원통하게 죽을 수가 있냐”며 아들의 주검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도 빗줄기만큼이나 굵은 눈물을 떨구었다. 마을 사람들이 유난히 김 씨의 절규에 가슴 아파 하는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들 모자는 딱 두 가구만 있는 오지 신월마을에서 단둘이 살았다. 김 씨는 원래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22년 전 지병으로 먼저 숨졌다. 슬픔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김 씨에게 잇따라 불행이 이어졌다.
20년 전 당시 불과 일곱 살이던 큰 아들이 수재로 인해 급류에 휩쓸려 실종, 사망한 것이다. 남편도 없이 세 아들을 키워야 했던 김 씨의 고생은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 어린 아들마저 먼저 보낸 슬픔 속에서도 그는 남은 두 아들을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나마 막내아들은 몸이 성치 않은 정신지체 3급이었다.
고생의 여파는 그에게 중풍과 신경통이라는 질병까지 안겼다. 게다가 둘째 아들은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가출해 소식마저 끊겼던 상황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막내아들 상길 씨는 거동조차 불편한 어머니 김 씨를 극진히 돌보고 있던 효자였다.
마을 사람들이 더 가슴 아파한 것은 이번에 숨진 상길 씨의 사고 현장이 바로 20년 전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큰형이 숨진 바로 그 장소라는 것. 게다가 사고를 당한 정황 역시 똑같았다. 한 주민은 “아무리 이곳이 시골 오지라고 하지만 물난리가 날 때마다 사고가 날 것이 뻔한 데도 당국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바람에 똑같은 장소에서 물난리로 두 형제가 20년 간격을 두고 모두 숨졌다”고 비통해 했다.
사고가 난 다리는 폭 4m, 길이 40여m의 제법 큰 다리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이 다리에는 난간이 없다. 더군다나 비만 오면 물에 자주 잠겨 주민들이 ‘잠수교’라 부르는 등 사고의 위험이 상존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이 워낙 작은 데다 무주군과 장수군의 경계에 걸쳐있는 탓에 문제를 제기해도 두 군이 서로 떠넘기기 바빴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행정의 사각지대였던 것이다.
마을 이장인 서홍식 씨(38)는 “20년 전에도 당시 일곱 살 난 김 씨의 큰아들이 물이 불어난 이 다리를 건너다 휩쓸려 그만 변을 당했다”며 “난간만 있었다면 그런 변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까지 설치되지 않고 저 상태로 있다가 기구하게도 정확히 20년 만에 이제는 동생마저 앗아갔다”고 비통해 했다. 그는 “상습 수해지역이라 마을에서 대책을 요구해도 그때뿐이었다. 하다못해 난간만이라도 설치해 줬다면…”이라며 끝내 말 끝을 잇지 못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