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A 씨의 혐의는 ‘특수강도 예비’. 인터넷 범죄 카페에서 강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 이들을 통해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 B 씨(45)를 납치해 돈을 강취하려다 집에 미리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공모자가 검거되면서 함께 수갑을 찼던 것이다.
범행 대상이 남편이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 경찰 관계자들은 A 씨를 조사하면서 다시 한번 놀랐다. 남편과의 교제, 결혼식, 그리고 결혼생활 모두가 거짓의 연속선상에 있었던 것. 그간 남편 B 씨가 보고 들은 A 씨의 말과 행동은 대부분 거짓이었고, A 씨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 역시 ‘가상의 인물’이었다. 도대체 A 씨는 무슨 이유로 끝없는 거짓말을 해왔던 것일까.
경찰 관계자들은 도대체 왜 A 씨가 남편을 속이면서 결국 ‘칼’까지 들이대게 됐는지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수사 과정에서 A 씨가 자신의 개인생활과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경찰은 A 씨가 결혼 전 사치 등으로 큰 빚을 지고 있었고 이것이 결혼 사기극과 남편을 상대로 한 범행의 발단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다.
H 대학 C 학과를 졸업한 A 씨는 누가 봐도 평범한 여성이었다. 이런 A 씨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하고 만 것은 지난 98년경. A 씨는 당시 돈 씀씀이가 커지면서 차츰 빚이 늘어났고 이 문제로 부모와 불화를 겪으며 집을 나왔다고 한다.
이후 독립 생활을 시작한 A 씨는 직장을 구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급기야 사채까지 끌어 쓰는 처지가 됐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A 씨는 결국 몇몇 사채업자들에게 사기로 고소를 당했고 법원에서 벌금형까지 받은 것으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수년간 빚에 쫓기던 중 A 씨는 학교 후배를 통해 중소기업 대표였던 남편 B 씨를 소개 받게 된다. 당시 A 씨로서는 재력 있는 B 씨가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줄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직업도 없고 집에서 나왔으며 게다가 큰 빚까지 지고 있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는 어려운 노릇. A 씨는 B 씨를 붙잡기 위해 자신을 과대 포장하고 전력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A 씨의 거짓말은 결국 희대의 사기극으로 이어지고 만다.
A 씨는 B 씨 앞에서 자신이 일본 국적을 갖고 있으며 한의사 자격증도 보유한 것처럼 행세했다. 혹시라도 남편 지인들 중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가명을 썼다. 몇 차례 전화 통화와 만남이 있고 난 후 B 씨가 자신에게 조금씩 호감을 보이자 A 씨는 아예 인터넷 역할 대행업체에 돈을 주고 자신의 가족 역할을 해줄 도우미들까지 동원하기 시작했다. 특히 B 씨의 호감을 얻기 위해 ‘짝퉁’ 삼촌은 검사로, 가짜 이모부는 의사로 둔갑시켜 B 씨를 만날 장소에 한 번씩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A 씨를 만나기 전까지 100번 넘게 선을 봤다는 B 씨도 A 씨의 미모와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이 끌렸고 결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B 씨는 차츰 A 씨를 신뢰하게 됐고 마침내 지난 2003년 12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A 씨의 거짓말은 결혼식 당일에도 계속됐다. 자신의 부모 및 가족, 친구들을 모조리 역할 대행업체에서 동원된 사람들도 채운 것. 이들의 연극이 그럴듯해서인지 남편의 가족들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A 씨는 혹시 공항 출입국 과정에서 신원과 국적이 들통날까봐 신혼여행지도 국내로 선택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남편 B 씨가 혼인신고를 하라고 할 때면 아직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다며 신고를 미뤄왔다. 사실상 두 사람은 결혼식만 올렸지 호적상의 부부가 아니었던 것.
결혼 이후에도 거짓말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면 여지없이 역할 도우미들을 동원했다. 행여 문제라도 생길까봐 부모, 동생 등 결혼식 때 참석했던 ‘주요 친정 가족’들은 늘 동일 역할을 했던 인물들로 챙겼다. 경찰 수사 결과 정작 A 씨의 진짜 가족들은 그녀가 결혼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A 씨는 남편에게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할 때도 모두 역할 도우미를 활용했다. 심지어 남편이 한의사 자격이 있다는 A 씨의 말을 믿고 차려 준 한의원의 개업식에도 40~50대 역할 도우미들을 K 대 한의대 학장과 교수 등으로 포장시켜 대거 동원했다.
이 같은 사기극과 사치 행위가 거듭되면서 빚 또한 점점 늘어갔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결혼 직전에 빚이 2억 원이었는데 결혼 이후 빚이 더 크게 증가한 것으로 전했다. 기존 사채에 원금과 이자, 그리고 한 명당 1일 10만~20만 원에 육박하는 역할 대행비가 점점 쌓여왔던 것.
그럼에도 A 씨는 각종 명목으로 남편의 통장에서 돈을 빼냈으며 자신이 도용한 한의사 명의로 수천만 원대의 사채까지 빌려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결국 A 씨의 거짓말은 이 과정에서 남편 B 씨에게 들통나게 됐다. 피해를 입은 한의사가 A 씨를 뒷조사하면서 모든 게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
그래도 그간의 정 때문이었는지 남편 B씨는 A 씨를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A 씨가 남동생 명의로 사채를 빌려 쓰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별거를 요구했다. 남편 집에서 나온 A 씨는 보름간 찜질방을 전전하다 돈이 궁해지자 남편의 재산을 강취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인터넷 카페에 강도 공모자를 물색했다.
A 씨는 곧바로 연락을 취해온 두 명의 공범에게 각각 2000여 만 원을 주기로 한 뒤 강도 범행을 지시했다. 그러나 범행 전날 공범 한 명이 경찰에 자수해왔고 범행 당일 다른 한 명이 남편 B 씨 집에 잠입, B 씨를 납치하려다 미리 잠복해 있던 경찰에 체포되면서 A 씨의 범행 전말이 드러나게 됐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된 A 씨는 아직 사채 등을 통해 빼돌린 돈을 어디에다 썼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상태. 경찰은 일단 A 씨가 진 빚을 남편 B씨가 거의 다 갚은 것으로 전했다. 남편은 약 10억 원을, A 씨 본인은 3억 원 정도의 빚을 갚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구체적인 변제 액수에 대해선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3년 가까이 한 이불을 덮은 정 때문에 이미 한 차례 부인을 용서했던 남편 B 씨는 이번 일로 상당한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은 B 씨가 재판 과정에서 또 다시 A 씨에게 손을 내밀어줄지 두고 볼 일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