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겸 | ||
독수리 오형제란 지난해 7월 초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던 이부영 이우재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을 일컫는 말. 이들 중 최근 정치활동이 뜸한 이우재 전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4인은 소수파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역량을 토대로 당내에서 무시못할 위상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우선 17대 총선 관문을 통과한 `재선 3인방’(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의원)은 각각 당 의장 비서실장과 정책라인의 핵심인 제2 정조위원장을 거치며 당내에서 `링커(Linker)’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오형제의 `좌장’격인 이부영 의장은 총선에서 낙선해 한동안 시련을 겪었지만 8월19일 신기남 전 의장의 급작스런 사퇴로 당 의장직을 물려 받으면서 일약 여당 대표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중 이 의장과 김부겸 안영근 의원은 최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여권 핵심부를 겨냥해 `자성론’을 펼쳐 당 안팎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김영춘 의원도 원내 핵심 당직(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탓에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진 않고 있지만 이들과 비슷한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성론 대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김부겸 의원. 그는 10월28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총리를 강도높게 비판해 파란을 불러왔다. 김 의원은 우선 노 대통령을 향해 “무엇보다 가급적 이념적 문제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났으면 좋겠다. 그것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현 정권의) 방향이 옳다고 하더라도 지금 중요한 건 형식이고 메시지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온화해야 한다. 모름지기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국민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의 ‘아픈 곳’을 찔렀다.
질문에서 실제 읽지는 않았지만 김 의원의 원고엔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자신이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자였지만 국보법 개폐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힌 것이 없었다”며 DJ에 빗대 노 대통령을 비판한 대목도 있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이 총리에 대한 질타도 했다. 김 의원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출타중 총리의 언표 또한 총리답지 않았다. 언론시장 역시 공정해야 한다는 정부의 원칙만 강조하면 충분하지, 뭣하러 특정신문이 역사의 반역자니 특정정당이 나쁘다니 하는 말을 했느냐”고 했다.
김 의원의 ‘폭탄 발언’에 대한 당내 파장은 상당했다. 노선 갈등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계파별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음도 물론이다. 우선 실용그룹에선 “구구절절 옳은 얘기”라며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보였다. 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청와대와 정부, 열린우리당의 누구도 말하길 꺼려하던 얘기를 김 의원이 했다. 민심이반의 근본원인을 정확하게 짚은 것으로 여권 핵심부가 가감없이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 안영근 | ||
일반 당원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당 홈페이지 게시판엔 “해찬 장군(이총리)이 차떼기 부대 1백32명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던 절체절명의 시간에 고문관 한 X이 우리부대 정신교육할 시간이라고 떠들다니… 자성은 집안에서 하고, 이적행위하지 말라”(ID 완산벌), “자기집(한나라당)으로 돌아가라. 왜 남의 집에 와서 재뿌리느냐”(ID 장병), “배은망덕한 X, 누구 덕에 금배지 달았는데, 주인의 등 뒤에다 칼을 꽂느냐? 딴나라 출신답다”(ID 벨라짱) 등의 비난 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을 놓고 찬반 양론이 극심하게 엇갈리는 상황에 대해 김 의원은 “평소 소신을 밝힌 것”이라며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 김 의원은 지난 9월 중순 여권내 영남권 인사들과의 회동에서 “이대로는 안된다. 조만간 내가 나서 ‘사고’ 한번 칠 테니 두고 보라”며 이번 사건을 예고했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은 당시 “여권이 난조를 겪는 것은 전략 없이 ‘개혁 강박증’에 휘둘린 아마추어리즘의 결과다. 특히 열린우리당 내엔 총선 이후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야 관계에서 원내 과반을 가진 ‘맏형’의 면모를 보여주기보다는 전략적 고려 없이 개혁 선명성만 내세운 나머지 ‘문제를 푸는 여당’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 수준으로 스스로를 격하시켰다”며 지도부와 일부 초선 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선 70년대 말 서울대 학생운동권의 대표 인물 중 한 명이었던 김 의원이 이번 사건을 통해 당내실용그룹의 ‘새로운 스타’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야 출신에 40대 나이(58년생), 영남 출신(경북 상주)이면서 지역구를 수도권(경기 군포)에 둔 김 의원의 장점이 새삼 당내외에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념적으로 유연한 김 의원의 평소 태도에 호감을 가져온 영남그룹 등 여권내 일각에서는 그를 차기 대선구도의 ‘잠룡’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일부에선 김 의원이 옛 ‘꼬마 민주당’ 시절 동고동락했던 동지로 최근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는 당내 분위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계동 고진화 의원과의 연대를 모색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의원이 실용그룹의 ‘뉴 페이스’인데 반해 안영근 의원은 일찌감치 당내 개혁그룹으로 “운동권 출신 보수 좌장”으로 ‘찍힌’ 인물이다. 안 의원은 실용그룹 인사들의 결사체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결성을 주도했고,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을 계기로 실용그룹의 대변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국보법 문제와 관련해 안 의원은 초기엔 개정론에, 노 대통령의 폐지 발언 이후엔 대체입법을 주장하며 개혁그룹과 맞서 왔다. 그는 당론으로 결국 ‘국보법 폐지-형법 보완’이 결정되자 “한나라당 반발이 뻔히 보이는 당론을 채택해 국보법은 한줄도 못 고치게 됐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뜻대로 됐으며 형법보완론자는 결국 국보법 고수론자로 김용갑의 스파이와 같다”고 일갈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 이부영 | ||
반면 실용그룹에선 안 의원을 “운동권 출신치고는 현실감각에 소신도 갖춘 훌륭한 인물”(초선 J 의원)이란 호의적 평가가 많다. 친노 그룹에서도 “안 의원은 안개모에 일종의 ‘위장취업’을 한 것이다. 안개모 등 실용그룹이 지나치게 보수화되는 것을 막는 소금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B 의원)는 해석도 나온다. 안 의원만큼 당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도 없지만 동시에 개혁-실용 양 진영의 갈등 해소를 중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이부영 의장의 최근 행보는 외형상으론 김-안 의원과 차이를 보인다. 당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만큼 직접적으로 노선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는 어려운 사정에서다. 그러나 독수리 오형제의 좌장답게 실질적으론 자성론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의장은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다음날인 10월22일 “혹시라도 우리들이 우리만 옳고 지난날 산업화를 위해 애쓰셨던 사람들은 옳지 않다는 독선에 빠져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바로 그런 독선과 아집 때문에 혹시라도 우리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친북반미로 몰아가는 게 아닌가, 그런 말을 들을 일은 하지 않았는지 반성도 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자성론의 물꼬를 터뜨렸다.
이 의장은 또 김부겸 의원이 노 대통령과 이 총리를 비판한 다음날(10월29일)에도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지금 우리에게 급선무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며, 반성할 점은 분명히 반성하고 시급히 전열을 정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때다. 우리가 그동안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없고 무언가 대단히 미숙했다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옳은데 지지해 주지 않느냐고 고집만 부리기에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며 자성론을 재차 강조해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낳은 바 있다.
여권내에선 ‘독수리 삼형제’의 이같은 행보와 관련, 내년 1~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세력구성상 소수일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 탈당파’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내 세력분포가 ‘개혁 대 실용’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후자의 편에서 향후 정치적 진로를 모색하려는 것이란 해석이다. 재야 출신으로 개혁성을 기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 갈수록 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실용그룹과 결합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란 나름대로의 계산도 가미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