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12월 13일 실종된 여대생의 유골이 발견된 화성 보통리 현장에서 경찰이 조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
일명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수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됐지만 한 여대생의 갑작스런 실종과 뒤늦게 발견된 그녀의 주검에 얽힌 미스터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대체 누가 왜 그녀를 해친 것일까. 시침을 2년 전으로 되돌려 사건 속으로 들어가봤다.
지난 2004년 10월 27일 화성시 와우리공단 인근에서 한 여대생이 실종됐다. 실종자는 화성시 봉담읍에 살던 여대생 노 아무개 씨(당시 21세). 그녀는 평소 다니던 태안읍 화성복지관 수영장에서 강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깜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실종 46일 만에 인근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또 하나의 화성발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노씨의 실종 당일 행적부터 살펴보자.
노 씨가 실종된 27일은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일찌감치 귀가한 그녀는 두 동생과 집에서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 6시쯤 시험공부 때문에 며칠 쉬었던 수영강습을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 노 씨는 어머니의 승용차를 타고 수영장을 오가곤 했지만 그날따라 어머니는 외출한 상황이었다.
수영강습을 마친 노 씨는 집에 가기 위해 화성복지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녀가 34번 버스에 오른 시각은 오후 8시 25분께. 버스에 탄 노 씨는 남동생에게 ‘누나 곧 갈게’라며 전화를 걸었고 곧이어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8시 35분쯤 노 씨가 와우리공단 정류장에서 내리는 모습이 버스 CCTV에 잡혔다. 그것이 노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노 씨가 내린 버스 정류장은 집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으로 평소대로라면 노 씨는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안에 집에 도착해야 했다. 택시를 타는 곳은 버스정류장 바로 옆. 하지만 곧 도착한다던 노 씨는 밤 9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노 씨의 어머니가 9시 10분쯤 노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은 꺼진 상태였다. 노 씨는 평소 자신의 행적을 수시로 보고할 만큼 착실한 딸이었다. 집으로 간다고 해놓고 연락도 없이 다른 곳에 들를 리가 없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밤늦게까지 노 씨를 찾아 지역 일대를 뒤졌다. 그러나 노 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가족들은 불안한 마음에 밤새 수없이 전화를 걸어봤지만 허사였다. 노 씨의 휴대폰과 연결이 된 것은 다음날 오전 7시 40분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노 씨가 아니라 중년 남성이었다. 신문배달원이 우연히 노 씨의 휴대폰을 주워 통화가 이뤄진 것이었다. 그가 노 씨의 휴대전화를 발견한 곳은 수영장에서 4.2㎞ 떨어진 협성대학교 인근의 한 식당 실외 커피자판기 앞. 버스정류장을 기준으로 노 씨의 집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노 씨 스스로 식당 근처에 갔을 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그녀가 내린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서 갈 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게 분명했다. 노 씨는 평소 화성지역을 표시하는 번호 ‘57’이 표기된 택시만 골라 탈 만큼 신중한 성격이었다. 노 씨의 성격으로 미루어 낯선 사람의 차량에 그냥 올라탔을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사건은 단순 실종에서 납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즉 노 씨가 얼굴을 아는 사람의 차에 탔다가 변고를 당했을 경우나 강제로 납치됐을 경우 중 하나로 여겨졌던 것.
▲ 노 씨 실종 당시 수배 전단. | ||
노 씨의 유류품을 살펴보던 경찰은 옷가지에 주름조개풀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풀이 서식하는 인근 야산을 수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700명 이상의 경찰 병력과 군견까지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였음에도 노 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주목한 것은 노 씨의 청바지에 묻어 있던 정액. 막막하기만 했던 수사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도 했다. 경찰은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노 씨의 주변인물과 지역 택시기사, 인근 불량배 및 전과자 등 4600여 명에 달하는 화성 일대 성인남자의 DNA 샘플을 채취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하지만 노 씨의 청바지에 묻어 있는 정액과 일치하는 DNA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
또 경찰은 현장 주변의 기지국을 거친 휴대전화 통화 18만 909건을 추려내 조사를 하는 한편 노 씨를 찾기 위해 헬기까지 띄워 저수지 일대를 항공촬영까지 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11월 1일 급기야 경찰은 30명의 잠수부까지 동원, 노 씨의 유류품들이 발견된 저수지에 대해 수색에 들어갔다. 이틀에 걸쳐 저수지의 물을 빼는 작업까지 실시했지만 노 씨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급해진 경찰은 목격자 확보에 사할을 걸고 매달렸다. 일단 버스 CCTV 화면으로 보아 노 씨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이후에 실종된 것이 확실했다. 또 실종 추정 지역 역시 버스 정류장 인근으로 압축됐다. 하지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노 씨가 내린 와우리공단 버스정류장 일대는 상가가 많은 번화가로 행인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또 노 씨가 버스에서 내린 오후 8시 35분께에는 어둡기는 했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납치를 당할 가능성이 적었다.
노 씨는 큰 키에 긴 생머리,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어 눈에 쉽게 띄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봤다는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11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경찰은 사건당일 노 씨가 탔던 버스 운전사와 버스에서 노 씨와 같은 곳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된 여대생을 상대로 최면수사까지 실시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경찰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노 씨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애초 납치 쪽에 무게를 두고 범인 검거에 자신감을 보였던 경찰은 수사가 답보 상태에 빠지자 노 씨의 생존 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2월 12일 화성시 정남면 보동리의 한 야산에서 반 백골 상태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노 씨가 실종된 지 46일 만의 일이었다. 사체가 발견된 곳은 노 씨가 실종된 곳으로 추정되는 와우리 버스정류장과는 5㎞ 정도, 노 씨의 유류품이 발견된 보통리 저수지와는 1㎞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발견 당시 사체는 상체에만 약간의 살점이 남아 있을 뿐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경찰은 사체의 머리카락이 35㎝ 정도로 길다는 점, 신장이 노 씨의 신장인 173㎝와 비슷한 172㎝ 정도라는 점 등으로 보아 노 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노 씨의 과거 치과치료 기록에 나타난 치아의 모양 및 치열 등을 사체의 치아와 비교분석한 결과 사체는 노 씨로 확인됐다. 납치·실종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급반전되는 순간이었다.